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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위를 들었습니다.
 결국 가위를 들었습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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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카락은 물론 다른 사람 머리카락도 잘라본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는요. 처음에는 미용실에 가지 않고 버텼어요. 하지만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가위를 들었죠. 연세 많으신 엄마가 미용실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도 고등학교 이후 다시 엄마한테 머리를 맡기게 되었지요.

엄마의 조언을 듣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모의 연습을 했습니다. '음, 왼손 둘째, 셋째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을 조금 쥐고 손목을 비틀어 올려 커트! 오케이.' 그렇게 연습한 덕분인지 엄마는 나름 괜찮다며 좋아하셨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보면 많이 엉성하지만요.

코로나 때문에 개업한 '베란다 미용실'

준비물은 집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먼저 베란다로 쏟아지는 햇빛에 실눈을 뜨고 은박 돗자리를 깔지요. 그 위에 고객용 플라스틱 의자와 거울을 세울 튼튼한 식탁 의자를 갖다 놓고요. 핀셋, 하얀색 손잡이 가위, 꼬리빗도 챙깁니다. 

분무기와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낼 스펀지, 머리카락이 잘 모이게 만든 우주선 모양의 커트 보, 일회용 비옷(옷에 머리카락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위에 핀셋, 빗, 가위 등을 잠깐씩 꽂아 둘,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조끼까지 입으면 준비 끝!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작합니다. 분무기를 사용해 머리 전체에 물을 뿌리고 뒷머리부터 시작하지요. 맨 아랫부분을 조심조심 자르고 삐쭉거리는 머리카락을 일자로 정리합니다. 바로 위 라인으로 올라가면 귀 옆머리는 핀셋으로 집어두고 가운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금씩(소심하게) 커트해 나갑니다.

옆머리는 뺨 쪽으로 넘겨 둔 머리와 커트가 끝난 뒷머리가 만나는 지점의 머리카락을 함께 쥐고 선이 연결되도록 잘라요. 앞에서 보면 옆 머리카락이 귀를 지나서 뒤로 갈수록 점점 올라가며 사선이 되도록. 왼쪽도 똑같이. 자, 옆머리도 끝났습니다.

마지막 앞머리. 엄마는 앞머리를 자를 때 조금 불안한 눈빛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자르던 날 엄마를 '몽실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레고 머리라고 하면 알까요?). 짧은 일자 앞머리를 한 팔순의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죠. 그 뒤로 앞머리를 자를 때면 엄마는 랩 하듯 말씀하십니다. "쪼매만(조금만), 쪼매만(조금만), 쪼매만(조금만)".

이제 마무리합니다. 큰 브러시로 뒤쪽 머리를 모두 쓸어와 얼굴로 쏟아 내립니다. 옆머리는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김숙이 했던 '따귀 소녀'처럼 만들어요. 전체적으로 빠르게 쓱 보며 다듬습니다. 다시 앞머리를 영화 <나 홀로 집에> 주인공 케빈처럼 올백으로 넘겨 한 번 더 봅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머리끝 선을 살짝살짝, 비스듬히 잘라 숱을 치고 스펀지로 머리카락을 털어내면 끝이 납니다.

셀프 미용 3년차에 깨닫게 된 것들
 
새로 산 커트 보 말고는 모두 집에 있던 것들이다. 금방 끝날 거라고 대충 준비했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 베란다 미용실 준비물 새로 산 커트 보 말고는 모두 집에 있던 것들이다. 금방 끝날 거라고 대충 준비했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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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3년째 하며 새삼 알게 된 것이 있어요. 바로 '조금만 더 손질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하는 그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 초반에는 적당한 때에 그만두지 못해 늘 데드라인을 넘겼고 엄마 머리는 자꾸만 짧아졌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알면 좋은데 그게 안 돼서 '넘치면 모자란 만 못한' 상황을 꼭 보게 되더라고요. 그만해야 되는데 양쪽 길이 맞춘다고 더 하면 전체 머리가 너무 짧아져 당황하고, 이쯤에서 숟가락을 놔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고, 그때 팔았어야 했던 주식은 욕심부리다 파랗게, 파랗게 사라져가죠.

또 하나, 머리끝 선을 정리할 때는 위에서 내려보며 하지 말고 눈높이를 맞춰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리를 구부리면서 정리하면 서서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렇지만 편하게 하려다 결국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게 됩니다. 베란다를 다 치웠는데 '메롱, 나 아직 있는데' 하며 삐죽 나온 머리카락을 보게 되거든요.

무릎을 구부려 매너 다리를 하고 눈높이를 맞추면 내려다보는 것과 다른, 그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위에서 볼 때는 말끔해 보이던 머리끝 선에 삐져나와 있던 머리카락처럼요.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같아요. 눈높이를 맞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더라고요.

예전엔 잘 맞던 엄마와 저도 같이 살게 되면서 마음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섭섭한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럴 기미가 보이려고 할 때 재빨리 생각을 바꾸지요. "엄마가 되어서 생각해 보자"라고요. 그렇게 눈높이를 맞추다 보니 우리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여린 점을 알게 되고 이해의 폭도 점점 넓혀가지요.

"엄마, 머리 잘라야겠네. 그새 많이 길었다. 새로 난 머리는 염색도 하고."
"슨생님, 이번에는 뒷머리를 쪼매만(조금만) 더 짧게 해주이소."
"안 됩니더, 고객님. 지난번에 그래해 가(그렇게 해서) 뒤가 뭉툭하다고, 보기 싫다고 했잖아예."
"맞네. 그랬네. 자꾸 이자뿌서(잊어버려서) 크닐이다(큰일이다)." 
"그럴 수도 있지예. 자기 뒷머리는 자주 못 보니까 기억이 잘 안나예."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위해 베란다 미용실은 영업을 계속할 것 같아요. 어쩌면 '절찬리 영업 중' 팻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서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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