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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피디 유골함
 이재학 피디 유골함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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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건 그 과정에서 어느 곳에서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14년간 청주방송에서 연출은 물론 행정업무까지 담당하며, 때로는 '공짜노동'까지 감내해야 했던 이재학 PD였다. 그런 그의 임금은 16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재학 PD는 본인의 '처우'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상황을 더욱더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14년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임금인상' 요구를 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해고 통보. 그 후, 방송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 명의 노동자를 떠나보냈다.

이재학 PD의 뜻을 따르는 이들은 늘어났다

고 이재학 PD의 사망 2주기다. 그 사이 2심법원(2021년 5월)은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이재학 PD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사망한 지 1년 3개월 만의 일이다. CJB청주방송은 상고를 포기했고, 법원의 결정은 확정됐다. 이재학 PD가 '노동자'로 인정받기까지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남은 사람들의 몫은 언제나 고인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고 이재학 PD가 꿈꿨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그 중심에 방송작가들이 있다.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에게 해고는 성립하지 않는다"라던 CJB청주방송 측의 주장을 보기 좋게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무너뜨린 뒤 방송계 비정규직 싸움의 전면에 섰다. MBC <뉴스투데이> 등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작가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싸움에 나섰다.

그들의 노력으로 조금의 변화들도 있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노위 결정을 뒤엎고 작가들의 손을 들어줬다. KBS전주총국에서 일했던 작가 또한 전북지노위로부터 노동자성 및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KBS와 MBC·SBS에서 보도 및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152명의 노동자성을 확인해줬다. 이제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은 부정할 수 없는 추세로 흐르게 됐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MBC <뉴스투데이> 작가도 KBS전주에서 부당해고가 인정된 작가도 다시 방송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MBC는 되려 <뉴스외전> 작가 3명에 대해 다시 계약종료를 이유로 해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KBS 또한 지노위의 복직 권고에 불복해 재심을 요청했다.

고 이재학 PD의 사망 2주기를 맞으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분명히 달라진 부분이 있다. 이재학 PD 때보다도 함께 싸우는 이들이 늘어났다. 노동위원회는 방송 프리랜서의 노동자성과 관련해 전향적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도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분명해졌다. 그러니, 달라지지 않은 것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바로 '방송사'들이다.

방송사의 인식과 태도는 그대로였다

언론 운동의 역사는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심이 돼 왔다. 그 외압은 대체로 정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몇 년째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바뀌지 않으면서 현재도 숙제로 남아 있다.

KBS의 예를 들면 분명하다. KBS 사장은 11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된다. 그 이사회의 구성 권한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그 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3대2로 구성돼 있다. 그 구도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현재 KBS이사회가 여야 7대4 비율로 구성된 이유다.

KBS만의 일도 아니다. MBC와 EBS 등도 유사한 지배구조로 돼 있다.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여전히 언론 운동의 시대적 소명으로 남아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방송의 독립에는 함께 따라와야 하는 질문이 있다. 견제 장치와 관련한 물음이 그것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자정 시스템이다.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이사회는 물론 시청자위원회를 법정기구로 두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재학 PD 사망 2주기에 필자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2021년 4월, 중앙노동위원회가 MBC <뉴스투데이> 해고 작가의 '노동자성 인정' 결정 이후의 일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신인수 이사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땜질 처방하기엔 시대적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라며 "MBC가 대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도인 이사는 "MBC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대외적 명분 때문에 이 사람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유기철 이사도 "방송작가들은 독립적 일을 한 것"이라며 MBC 경영진 편에 섰다. 그 후, MBC는 중노위 결정에 불복했다. 참고로, 유기철 이사와 김도인 이사는 MBC 경영진 출신이다. 그리고 유기철 이사는 여권, 김도인 이사는 야권으로 분류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디어스>에 따르면, 최근 정수경 MBC 전 시청자위원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토론회에서 "과거 MBC 시청자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발언했는데 시청자위원 권한을 넘어서는 부분이라 말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라며 작심하고 비판했다.

MBC의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는 사내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경영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시청자위원회에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

KBS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KBS이사회의 2021년도 속기록을 살펴보면, 상반기에는 KBS 수신료 인상안으로, 하반기에는 KBS 신임 사장 선출로 바빴던 걸 확인할 수 있다. 그 1년 동안 KBS 비정규직 관련 안건이 상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4월, KBS 본관 앞에서 'KBS가 제작하는 드라마의 스태프들이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자회견이 열렸음에도. 6월, KBS 시사교양 작가들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며 회사 차원의 비협조와 방해 논란이 벌어졌음에도. 또한 9월, KBS전주총국에서 작가가 해고돼 언론 보도가 됐음에도 말이다.

방송법 제46조는 "공사(KBS)는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이사회의 기능으로 △공사가 행하는 방송의 기본운영계획, △예산·자금계획, △공사의 경영평가 및 공표, △사장·감사의 임명제청 및 부사장 임명동의 등을 심의·의결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KBS이사회만 가진 권한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듯, 이사회 본연의 역할을 생각하면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에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가진 책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KBS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황우섭 이사는 되려 'KBS가 자회사 직고용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인건비 상승"을 걱정하는 의견들을 쏟아냈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방송사 내 이사회는 왜 존재하는가. 단순히, 이사회가 사장 뽑는 곳은 아니지 않나. 왜 이사회는 해고된 작가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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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보도]<공영방송 이사회는 해고 된 방송작가 논의 왜 못하나> 관련

본보는 지난 2022년 2월 10일자 사회면에 <공영방송 이사회는 해고 된 방송작가 논의 왜 못하나>라는 제목 하에, KBS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황우섭 이사는 되려 'KBS가 자회사 직고용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인건비 상승"을 걱정하는 의견을 쏟아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황우섭 이사는 "'인건비 상승' 발언은 KBS 경영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임직원이 고통 분담을 하려는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중장기적인 인력운용계획을 수립한 다음에 효과적으로 추진해야한다는 취지이고, 방송 작가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발언이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태그:#이재학, #CJB청주방송, #방송작가, #해고, #특별근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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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그냥 내킬 때 내키는 글'만' 쓴다. 개인적으로 자랑할 건 동거묘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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