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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은 허리를 깊이 숙이고 큰절도 자주 한다. 유권자 앞에 납작 엎드려 네 발로 기기라도 할 기세다. 이름하여 '선거트랄로피테쿠스'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목에 힘이 들어가며 두 발 보행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돌아갈 것이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 올수록 모든 이슈가 '대선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모양새다. 후보들은 코로나 위기 극복, 4차 산업혁명 미래를 선도할 대전환의 위기에 자신이 적임자라고 선택을 호소한다.

유권자는 저마다의 정치적 지향으로 어떤 후보를 지지하고 또 어떤 후보를 반대하기도 한다. 3월 9일이 지나면 우리는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난제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 줄 새로운 정치 권력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권자, 정치인에게 동서양의 고전, 예술작품, 영화 등을 빌어 때로 비유와 상징으로 때로 풍자와 유머로 우리 사회가 어떤 정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조언하며 독자를 정치에로 초대한다.
  
정치의 계절이다. 김영민교수는 독자들을 정치에로 초대한다.
▲ 인간으로 사는 것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정치의 계절이다. 김영민교수는 독자들을 정치에로 초대한다.
ⓒ 어크로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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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 허구로서의 국민주권
 
"아침에 일어나 정치로 세수하고 정치로 밥 말아 먹고 정치로 배설하고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 현실이다." - 23쪽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정치학>에 나오는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본성상 홀로 살 수 없기에, 일정한 집단을 이루어 공적인 일에 종사하게끔 되어 있는 존재다. 게다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저자는 국민주권설은 국민 개개인 모두를 통치자로 만들기 위한 마법이 아니라 소수의 통치자가 국민 전체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자임하기 위한 허구라고 말한다. 번식에 필요한 성욕에 사랑이라는 허구를, 비루한 세속에 신성이라는 픽션을 만들어냈듯이 국민주권은 통치의 필요가 만들어낸 믿음의 대상, 즉 또 다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낱 사적 개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해 줄 국가라는 권력체를 만들어냈다. 사적 개인은 이제 정치적 인간으로 공동체를 이뤘지만 국민들의 정치적 열망과 에너지는 제도화 된 정치적 실천으로 번역되지 못한다. 많은 정치인은 공적 가치를 수호하기보다는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부패한 기득권을 질타하며 집권한 세력 역시 적지 않게 부패했음이 드러난다.

정치적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을, 영원히 유예될 운명의 산물일까. 저자는 시간은 인간 편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권력은 부패하며, 권력자는 나태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패와 나태를 부르는 시간과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정치가 있다고.

정치인에게 던지는 충고
 
"아름다운 정치가 무엇인지 아무도 확고하게 말할 수 없을 때 정치인들이 일단 의지해볼 수 있는 것은 심미적인 과정이다. 품위를 갖춘 스타일과 행동과 발화의 누적을 통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이 더럽지 않은 정치라고 보는 것이다. 예식을 통해 혁명을 달성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를 살짝 고양할 수는 있을 것이다." - 278쪽
 
저자는 정치인은 잘 생기기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또 곧 있을 후보 간 TV토론을 염두에 둔 것처럼 궁극의 달변가는 달변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어눌하게 말하면, 진정한 달변이란 눌변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달변의 정의가 바뀌기 때문이라고.

연설은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연극적 상황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질문을 받았을 때는 유머를 섞거나 질문을 재창조할 필요가 있는데 관건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유권자를 향한 조언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수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쓰는 일이다. (중략) '타성에 젖는 맹렬한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고 능동태 문장으로 된 자서전을 쓸 때 새로운 공동체는 시작될 것이다." - 291쪽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 298쪽
 
저자는 '낳음을 당해서' 살아가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존재 같지만 사실 인생에서 진정한 선택은 많지 않다고 전제한다.

특정 정치지형에 자신도 모르게 편입되어 무비판적으로, 수동태의 형식으로 그 정치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어 자신이 속한 계급을 배신하는 정치 지향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또 저자는 독자들에게 특정 정치인에 대해 열광하는 마음은 식히고 그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해 보려는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권한다.

정치의 계절이다. 정책과 비전은 없고 "나만 망가질 수 없으니 너도 망가져 봐라"가 시대정신처럼 횡횡한다. 권력을 냉소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권력이 진짜 없는 자는 냉소하기도, 무관심하기도 어렵다. 내 삶의 현실적 고양과 미학적 고양을 가져다줄 정치인을 두 눈 부릅뜨고 물색해보는 수밖에.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은이), 어크로스(2021)


태그:#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것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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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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