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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북미, 유럽, 동남아 국가에서는 비건 옵션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북미, 유럽, 동남아 국가에서는 비건 옵션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unsplash(juno-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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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 - 서정주 시인 '자화상' 중에서

내 요리실력을 키운 건 구할이 '대한민국 육식문화'다. 2년 6개월 전 처음으로 채식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터득한 요리법의 수가 육식주의자였던 근 30년 동안 터득한 요리법 수보다 10배는 많을 것이다. 

채식 식당도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여전히 채식주의자가 외식하기에는 쉽지 않다. 출근하는 대학교 연구실 근처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근처에 채식을 지향하는 종교 재단의 병원이 있다. 덕분에 걸어서 15분 거리 내에 10개가 좀 안 되는 비건 옵션 식당이 있다. 만 명이 넘는 대학교 근처에 갈 수 있는 식당이 10개가 안 된다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다른 학교와 비교해보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금 사는 동네로 오면 더욱 울적해진다. 동네 근처에는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비건 비빔밥, 햄버거, 샌드위치, 죽이 전부다. 한식과 양식이 사이좋게 절반씩 있지만 채식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다. 바야흐로 채식인은 먹고살기 힘든 시대다.

해외는 어떨까? 북미를 비롯해 유럽, 동남아 국가에서는 비건 옵션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채식 지향인이 많고 채식 메뉴가 잘 팔리기 때문일 테다. 그렇다면 비교적으로 채식 수요가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채식 인구가 늘어날 때까지 손 벌리고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외 사례와 필자의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정책 제안을 해볼까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두 가지 정책 
 
주저앉은 얼룩소의 모습
 주저앉은 얼룩소의 모습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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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제안할 정책은 공공기관 식당에서만큼은 채식 옵션 메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채식 인구는 1%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7년 11월 '채식주의자의 선택권을 위해 공공기관 식당에서 의무적으로 채식 메뉴를 제공할 것'을 법으로 제정하였다. 권장하는 것을 넘어서 법령에 '식품경제안전당국(ASAE)에서 법률 준수 여부를 검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국내에선 채식 옵션 메뉴 제공을 일반음식점에 강제할 수 없다. 많은 반발이 예상되지만 적어도 공공기관 식당에서만큼은 채식 옵션 메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은 실행해 볼만하며 선택권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김재연, 심상정, 이재명 후보가 공공기관 채식에 관해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두 번째로 제안할 정책은 '공교육에서의 동물권 교육 실시'다. 각 산업에서 동물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또 현재 동물권 실태는 어떠한지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다. 일례로 밥 먹듯 먹는 축산 동물에 관한 교육이 시급하다. 이 정책을 제안하는 이유는 교육이 부재한 사회에서 내가 느꼈던 배신감과 환멸 때문이다.

건강, 종교 등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채식을 지향하게 된 계기와 지속하는 이유는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나는 고기를 '식탁 위 음식'으로만 인식했다. 물론 정육점에서 동물들의 빨간 살과 뼈들을 보았고,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읍내를 벗어나면 가끔은 살아있는 닭과 소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살아있는 동물들이 정육점을 거쳐 식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연결 지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리보기 이미지가 소 얼굴인 다큐멘터리 <도미니언>(dominion)을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피칠갑 장면과 뇌를 강하게 때리는 소리의 연속이었다. 내 눈과 귀는 오래 버티지 못했고 이내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여러 날에 걸쳐서야 다큐멘터리를 다 볼 수 있었고 동물이 농장에서 운송 트럭, 도살장까지 이동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른바 '고기'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공교육에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동물 이야기
 
도살장에 온 트럭에 돼지가 빽빽이 실려 있다.
 도살장에 온 트럭에 돼지가 빽빽이 실려 있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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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울애니멀세이브 동물권 단체에서 진행하는 비질(vigil, 도살장 등에 찾아가 폭력의 증인이 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행위)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그때 영상으로 봤던 동물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트럭에 실린 소들은 대부분 주저앉아 있었다. 평생 우유를 생산하다가 뼈가 부러지거나 젖이 나오지 않아 도살장으로 온 것이었다. 돼지는 한 차에 몇 명(命)이 실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의 몸이 뒤엉켜 있다. 겨울이 되면 트럭은 입김을 내듯 하는데, 돼지의 몸에서 나는 열이다. 여름에는 얼마나 뜨겁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며 소리를 내지른다. 그렇게 소와 돼지들은 도살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났던 동물 중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그게 바로 내가 봤던 소, 돼지, 닭의 현실이었다.

극도로 불편한 진실이다. 단 한 번도 동물의 피를 손에 묻힌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큐멘터리 시청 이후 나와 사회의 폭력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는 구호는 과장이 아니었다.

초·중·고 도합 12년의 공교육 기간 동안 동물의 사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올라오는지 알 수 없었다. 속았던 것이다. 만약 고기가 어떻게 식탁에 오는지 학교에서 교육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큐멘터리 <도미니언>을 10분만 보여줘도 대다수 학생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영상을 보고도 동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적지 않은 교사들이 <도미니언>의 내용이 극도로 잔혹하다는 이유로, 유해하다는 이유로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다. 학교뿐이겠는가. 예상컨대 다큐를 시청한 부모는 그 누구도 미성년인 자녀에게 쉽게 영상을 권할 수 없을 것이다. 이토록 끔찍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 육류를 매일 먹는 것만한 모순이 있을까?

생산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없다면 먹지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지만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여러모로 쉽지 않아 보인다. 차선책으로 먹거리에 관한 정보를 글이나 그림을 통해 제공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웨덴 말뫼 시는 인류의 먹거리 소비와 기후변화를 연결지어 쓴 어린이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축산농장, 동물원, 동물실험에 관한 내용의 아동 도서 <어린이를 위한 동물복지 이야기>가 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런 내용을 담은 어린이 책이나 교과서를 만들고 공교육에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  

태그:#채식공약, #동물권공약, #채식, #동물권,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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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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