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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전 일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이 한창일 때 국제소농연대기구인 '비아깜파시아' 지도부가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었다. 칸쿤에서 '농업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결한 이경해 열사의 투쟁을 익히 알고 있던 비아깜파시아 집행부는 한국의 농민들이 대단한 투쟁력을 갖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저것 우리나라의 농업, 농민 현실에 대해 자세히 질문하였다.

그중 한국 농민들의 농업소득률이 매우 낮고 소득분위별 격차가 7~8배에 이른다고 하자 '그 정도 심각한 소득 격차면 폭동이 일어날 만도 한데 왜 이리 조용하느냐'라고 반문을 하였다. 그동안 세계화·개방화를 농업 농민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규정하고 투쟁을 해온 입장에서 농민의 소득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고민을 안겨주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 만에 상위 20% 농가 소득과 하위 20% 농가 소득 격차가 10.9배로 높아졌다. 농가 소득에서 농업 소득은 평균 1026만 1000원(2019년 농가경제조사)으로 정체되고 중위소득 기준으로는 6백여만 원에 머물러 있고 오히려 농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넘어서고 있다.

사실 지금 논란이 되는 모든 농업·농민·농촌 문제는 농가소득 하락과 소득 양극화에서 기인하고 있다. 8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농업의 개방화·전업화·상업화는 대농 위주의 생산체계를 고착시키면서 전통적인 가족농을 해체하고 농촌공동체를 소멸시켜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는 '지방 소멸'이라는 하나의 유령이 전국의 모든 농산어촌을 떠돌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모든 농민단체들이 정책공약을 제안하고 각 당 후보들은 화려한 농촌 유토피아 청사진을 밝히고 있지만 아쉽게도 농민층 내 소득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구조를 해소할 대안은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농민의 입장에서는 '국민총행복을 위한 농산어촌 대개벽'(관련기사: 이대로는 도시도 공멸... 농촌살리기 3강5략을 제시한다 http://omn.kr/1v0ow)보다는 열심히 땀 흘려 농사 지어 가정을 꾸리고 사회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며 살 수 있는 삶터·일터·쉼터로써 농업·농촌이 더 절박하다.

소위 '규모화의 역설'이라고 하는 빚잔치(규모화가 농가 부채를 낳고 농가부채 해결을 위해 경작 면적을 늘리는)에서 벗어날 수 있고, 좁은 농경지에서 최고의 수익을 얻기 위해 선진국(OECD) 최고 수준의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자원수탈형 농업에서 생태친화적인 농업으로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농민기본소득은 바로 규모화·상업화·단작화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농업 생산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반복되는 소득불평등의 질곡에서 농민들을 구제하는 소중한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농촌과 농민에 맞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농촌과 농민에 맞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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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기본소득,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

필자는 몇 년 전에 우연히 마을 근처 골프장에서 새벽 시간에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새벽에 출근하여 아침 9시 이전에 퇴근하니 주업인 농사일을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 일로 매월 일정 금액의 수입이 생기자 그동안 부분적으로 시도해왔던 친환경농사를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전면 도입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그 이유는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면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 소득 감소를 벌충할 수 있는 가외 소득(농외 소득)이 있으니 걱정없이 도전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주변의 많은 농민들은 나의 경험처럼 '일정한 수입이 고정적으로 보장이 되면 농약 덜 쓰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겠다'라고 말한다. 내가 농민기본소득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기본소득이 부여하는 실질적 자유, 당면한 농업·농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자신한다.

사실 농업·농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농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농업의 현실이 농민 양극화를 심화·확대하고 절대 다수의 소농들과 고령농들은 농외소득(이전소득)에 의존해야만 삶이 영위되는 비정상을 바로 잡아야만 면 단 위에 농자재 가게도 문을 열고 미장원과 중국집도 활기를 띨 것이며 자연스럽게 돈의 흐름이 형성되어 농촌이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박진도 교수가 농민기본소득을 사실상 반대(박 교수는 기본소득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기본소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하며 주장하는 '위장 농민의 불법수령', '농지임차료 급증 및 농지유동성 저하', '비농민과의 갈등 유발' 등은 농업·농민 문제의 근본을 비껴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관련기사: 이재명·도올 대담 못다 한 이야기 http://omn.kr/1wtru).

박 교수께서 주장하는 논거들은 이미 공익형직불제 도입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속적인 제도 보완을 통해 문제점을 최소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제도 자체를 위협할 만한 요소가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부정적 요소를 극대화하여 청년들이나 은퇴한 국민들이 농업·농민으로 진입하는 장벽을 높이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설 뿐이다.

박진도 교수는 농민기본소득 대신 공익기여직불금과 농촌주민수당( 소멸위험지역주민수당)을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농업소득 보전정책은 철저하게 규모화·전업화 된 대농 위주로 설계되어 왔고 그로 인해 직불금 단가가 인상될수록 농민층 내 소득 격차는 확대되는 문제를 양산해왔다.

지난해 지급된 공익형직불금 2조 4천억 원 중 43만 가구(가구당 2.2명 기준 94만6천 명)에 소농 직불금은 5162억 원, 면적직불금은 69만 명에 1조 7607억 원이 지급된 사실에서 증명된다.

이 때문에 박진도 교수의 주장처럼 공익기여 정도에 따라 직불금 수령의 차등을 두는 방식과 직불금 단가인상으로는 지금의 면적직불금 중심 체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소농직불금을 농민기본소득으로 재구성하고 면적직불과 선택형직불을 같은 수준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공익직불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마뜩잖은 지방소멸론

한편 박진도 교수는 여러 차례 농촌주민수당이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으로 같은 농촌지역 내 주민중에서도 '국토·환경·문화·지역'을 지키기 위한 기여 정도에 따라 선별하여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위 오마이뉴스 기고에서는 농촌주민수당을 '소멸위험지역주민수당'으로 더 구체화하고 있다.

지역 소멸 문제는 이미 농업의 영역을 떠난 국토균형발전과 연동된 사회문제다. 물론 농업·농민의 현실이 응축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지방소멸론은 농촌 난개발을 위한 바람잡이 논리로 들릴 때가 있다. 농촌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오고 있는 내부자의 눈으로 봤을 때 농업이 지역사회 재생산의 원동력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가 투영된 것일 뿐, 있는 땅덩어리가 없어지거나 강산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므로 뭔가 또 한탕하려는 구색 맞추기로 보인다. 이 때문에 솔직히 나는 '지방소멸론'이 마뜩잖다.

그래서 박진도 교수의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이 '소멸 위험지역 수당'으로 역진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고 각 당 후보별로 농·어업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다. 여당 후보의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확신, 진보정당 후보의 명쾌한 농민기본소득 방향이 매화꽃 만발한 3월, 파종을 서두르는 농심을 모을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동되길 기대한다.

- 농민기본소득 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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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에서 농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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