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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부산민주할매'로 불린 정정수 여사는 1935년 창녕에서 태어나 2021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고 장례는 부산 민주시민단체 주관으로 민주시민장으로 엄수되었다. 이 글은 지난 1일 추도의 밤 행사 때 낭독되었다. [편집자말]
1992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교사대회에서 연설하는 정정수 여사
 1992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교사대회에서 연설하는 정정수 여사
ⓒ 고 정정수 여사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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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생각타가 어머님, 어머니라 불러 봅니다. '욕쟁이 할매'는 따뜻하고 정겨워서 좋고, '민주투사', '민주할매'는 정말 그렇게 사셔서 마땅히 좋고, '정정수 여사'는 고결하게 느껴져서 좋지만, 그래도 오늘 저는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요. 이제야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저 전교조 부산지부 해직교사 윤지형입니다. 1989년 서른세 살에 해직되고 지금은 정년 퇴임을 한 지도 3년이 되어 가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는 늘 서른세 살 전교조 해직교사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안아 주고, 먹여 주고 싶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인 전교조 해직교사 말입니다.

7년 전 사상 르네상스 호텔 뷔페에서 열린 어머니의 팔순 잔치 때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팔순을 맞아 전교조 선생님들을 잔치에 꼭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잔치상을 차리고 초대해도 열 번 스무 번은 해야 할 터인데 당신은 팔순이 되어서도 이젠 배고플 까닭이 없는 우리를 불러 먹이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그때 축하와 감사의 인사말을 쓰다가 생각해보니 제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우리는 온천장역 부근 막썰어 횟집에서 만났지요. 저는 거기서 처음으로 눈물 없인 듣기 힘든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교조가 창립된 1989년 봄에 처음 뵌 후로 25년 만에야 말입니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어머니와 가족의 역사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혼란, 친일파들이 장악한 정부의 성립, 좌우 대립과 6·25 한국전쟁,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6.25를 전후로 닥친 어머니의 부모님과 두 오빠의 이른 죽음이 바로 그러했지요. 그때 어머니는 '보도연맹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또 결혼 3년 만에 첫 딸을 낳은 지 20일도 채 안 된 1960년 3.15 부정 선거 규탄 시위 중 중학생 김주열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마산으로 달려가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그때 후로 4·19 기념행사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고 거기서 민가협 어머니들을 만났으며 민주화운동 하다 감옥에 간 젊은이들, 노동자들 옥바라지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고도 하셨지요.

그제야 나는 우리 욕쟁이 할매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사의 고비마다 거리에서 살다시피하며 김밥이며 떡이며 음료수를 부지런히 싸가지고 나타나 시위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이유를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는 걸

어머니, 당신은 1989년 봄 전교조가 결성되고 여름날 부산에서도 일흔두 명의 교사가 해직이 되었을 때도 양정동 건물 지하의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실로 수박과 빵과 음료수를 한 아름 싸 가지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더랬습니다. 1992년 해직교사 박순보 선생님이 연제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민자당 최형우와 맞붙었을 때는 선거사무실에 솥을 걸어놓고 밥을 해서 청년 운동원들을 먹이셨고요.

어머니. 당신을 생각하면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불의한 권력에 고초를 당한 사람들에게 정성껏 밥을 해 먹이는 장면부터 떠오릅니다. 눈물겨운 밥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는 걸 오늘 비로소 가슴 벅차게 깨닫습니다.

그날 온천장 부근 횟집에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한없이 풀어내다가도 전교조 얘기를 할 때면 유독 눈물을 보이신 욕쟁이 할매, 우리 어머니. 하지만 당신이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전교조 교사만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4·19 유족회를 비롯하여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사람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사람들, 5·18기념재단 사람들, 장기수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이 나라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국가 폭력에 저항하며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당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머니. 팔순 잔치를 며칠 앞둔 그날 당신이 제게 헤어지며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는 것 같습니다.

"내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두 동생 키운다고 욕도 많이 봤고요. 밥을 굶진 않았지만 마음고생, 말로 다 못합니다. 그래도 남에게 못된 짓 한 적 없고 내 양심대로 살았습니다."

팔순 잔치 하던 날 저는 어머니의 이 말씀을 생각하며 쓴 축하와 감사와 사랑의 글을 어머니께 바쳤더랬습니다. 오늘도 바로 그 글을 어머니께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새처럼 자유롭게 평화롭게 가시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민주투사 욕쟁이 할매는 애연가시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민주투사 욕쟁이 할매는 애연가시기도 했다.
ⓒ 고 정정수 여사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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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매, 우리의 할머니
오랜 세월 전도(顚倒)된 우리 역사 속
당신의 신산했던 삶을 떠올려 봅니다.

그 역사 속, 당신의 욕은
불의한 권력과 반인간의 자본과 저 무수한 폭력을 향한
매서운 죽비요 통쾌한 사자후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이 자나 깨나 꿈꾸어 온
더불어 사는 세상, 민주주의의 세상, 인간의 세상, 참교육의 세상을 위해
싸워온 많은 이들에게는
든든한 비빌 언덕, 가없는 사랑의 노랫소리였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을 반듯하고 뜨거운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당신의 팔순 잔치는
쏟아지는 햇살처럼 빛납니다.
넘실대는 바다처럼 푸르디푸릅니다.
그리하여 오늘 당신은 이팔청춘 꽃다운 아가씨입니다.

소리 높여 외쳐 봅니다.
욕쟁이 할매, 온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정정수 할머니,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의 할머니, 당신의 삶과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내 강건하고 평안하소서.

영원한 나의 어머니, 오늘도 꼭 같은 마음입니다.
영원한 우리들의 어머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먼 길, 부디 새처럼 자유롭게 평화롭게 가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태그:#정정수 여사, #욕쟁이 할매, #전교조 ,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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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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