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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40대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검색했다. 내가 사는 곳은 주변이 산이라 상가가 없다.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헬스장이 하나 있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좀 규모 있는 곳을 찾으니 차를 가지고 10여분 정도를 이동해야 했다.

자고로 운동은 가까운 곳에서 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까운 헬스장에 전화해서 회원권과 개인 PT를 문의했다. 여자 트레이너가 있느냐고 물었다. 여자트레이너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너는 단 한 명이고 남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트레이너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뭐, 남자면 어때. 제대로 관리만 해주면 되지.'

처음 만난 트레이너, 예상이 마구 빗나갔다
 
PT가 아름다운 고문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조금 무서웠다. 나이가 들어도 힘들고 무서운 건 싫었다
 PT가 아름다운 고문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조금 무서웠다. 나이가 들어도 힘들고 무서운 건 싫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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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지역 카페에서 정보를 입수했다. 동네에서 유일한 헬스장이지만 시설도 괜찮고 트레이너도 잘한다고 했다. 나는 소심하게 10회를 등록했다. 20회, 30회 등록할수록 비용은 쌌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PT가 아름다운 고문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조금 무서웠다. 나이가 들어도 힘들고 무서운 건 싫었다. 혹시 힘들면 10회만 하고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PT를 받기 전, 내가 상상했던 트레이너는 우람한 체격에 울룩불룩한 팔뚝을 가졌으며, 나시티를 입고, 넓은 어깨와 역삼각형을 강조하듯 쫄바지 차림일 것이라 상상했다. 나이는 20대 혹은 30대 초반, 나와는 10살 혹은 20살 이상 차이날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라도 너무 가혹하게 훈련시키면, '적당히 하자고', '내 나이 되면 다 이래요'라고 핑계를 댈 참이었다.

첫 수업에서 대면한 트레이너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키는 180cm 정도에 적당히 마른 체격이었다. 다만, 트레이너답게 몸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고, 나시티와 쫄바지는 입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운동복 딱 그거였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30대였다.

나보다 어려 보였지만, 나이를 핑계로 적당히 하겠다는 말은 하기 힘들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40대 중반이었고, 내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으며, 나와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았다. 뭔가 내 예상이 마구 빗나가고 있었다.

첫 수업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고문이라고 표현했던 '빡센' 강도는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 견딜 만했다. 트레이너는 내가 더는 못하겠다는 느낌에서 "두 개만 더!"를 외쳤다. 그러면 나는 괴력의 힘을 발휘해 두 개를 더 해내곤 했다.

PT를 몇 번 받으면서 이 트레이너가 '일 좀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생활 연륜이 좀 쌓이다 보니 오는 느낌인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특히 그랬다. 트레이너에게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내 몸에 맞게 잘 가르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운동하면서 딴 생각하면 트레이너는 귀신같이 알아챘다. "집중하세요"라는 말이 날아왔다. 뭔가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해부학 수준으로 근육을 설명해주는데, 막힘이 없었다. 전달하는 언어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건 스스로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체득했을 때 나올 수 있는 태도였다. 자신의 근육을 내보이거나 옷차림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오랜 경험이 쌓은 태도

"트레이너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8년째예요."


18년째라는 말을 듣고 나서 내가 본능적으로 물어본 말은 "지겹지 않으세요?"였다. 올해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까지 지겨움보다는 재미와 보람이 커요. 처음엔 오랫동안 일할 생각이 특별히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사람들 돕는 게 재미있었어요.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기쁘고요."

"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프로그램도 많고 다양하지만, 백인백색 사람이 다 틀리고, 그 사람한테 맞는 운동 방법과 속도, 하중을 그때그때 파악해야 하니까요. 18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 만나는 고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해요. 책도 보고 의학 유튜브 채널도 챙겨 보고 다양하게 공부하죠."

그는 이 분야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분야이고,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걸 풀어가는 성취감도 있다고 했다. 어떤 문제에는 동료, 고객, 매출 및 운영,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 몸이 엄청 마른 체격이었어요. 아버지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직업을 구하는데, 이쪽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했고, 가고 싶은 회사가 눈에 띄었어요. 헬스 트레이너계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대기업이 있는데,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 일의 시작이었어요. 그곳에서 팀을 이끌고 운영했었어요.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가장 매출을 높게 찍기도 했고, 많은 후배들을 배출하기도 했고요. 제가 많이 배우기도 했던 기간이었어요."

트레이너와 이야기하면서 '일 좀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았다. 무언가를 미친 듯이 해본 사람, 온 몸을 던져 일해 본 사람만이 풍겨내는 향기 같은 거였다.

트레이너는 수업 할 때 이외에도 필요할 땐 와서 자세를 다시 교정해주곤 했다. 그의 태도는 모든 고객들에게 친절했지만, 과하지 않았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그것이 고객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오랜 경험이 쌓은 태도일 것이다.

헬스장은 대표적인 다중이용시설이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이 걸릴 뿐만 아니라, 운동 후 샤워를 할 수 없다. 이런 점은 헬스장 운영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궁금했다.

"신규로 들어오는 회원은 없었지만, 다행히 기존 고객님들의 이탈이 없었어요. 주로 재등록한 회원님들이었는데, 그분들 덕분에 기본적인 매출은 나왔어요. 트레이너 일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재등록이거든요. 그만큼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일에 대한 인정을 받는 일이니까요. 만약 신규고객만 있고, 재등록 고객이 없다면 지도하는 스타일이나 지식을 점검해봐야 해요."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것도 불편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회원님들이 불편하기도 하셨겠지만, 지도하는 입장에서도 불편해요. 운동할 때 호흡 조절이 필요한데요. 회원님들의 자세와 호흡을 보면서 운동 횟수, 쉬는 시간, 중량을 파악하거든요. 전에는 회원님 체력의 100%를 쓰도록 지도했다면, 지금은 자세와 귀에 들리는 숨소리만으로 가늠하기 때문에 70%정도만 쓰도록 하는 것 같아요. 무리하다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의 몸에 새겨진 역사
 
내가 상상한 트레이너는 이런 모습이었다.
 내가 상상한 트레이너는 이런 모습이었다.
ⓒ lukaszdylka,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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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을 시작하는 나이는 20대 혹은 30대 초반이다. 40대에도 같은 분야의 일을 한다는 건 10년 이상 그 분야에서 일을 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했다고 해서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40대에 몸에 새겨진 역사가 달라진다. 일을 하는 사소한 습관이 태도로 쌓이고, 그 태도가 나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일에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요?"
"회원분이 처음 올 때 상담을 하는데요. 여기 저기 아프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운동하면서 아프다는 말이 줄어드는 동시에 긍정적으로 변하시는 거예요. 아플 때는 사실 부정적인 말들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 분들이 몸도 변하면서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걸 보면 뿌듯해요.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고요. 또 하나는 가끔 후배들한테 연락 올 때가 있어요. 같이 일할 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엄청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지겹도록 잔소리를 했는데,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사람은 결국 공부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후배들이 간혹 연락 와서 고맙다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도 엄청 뿌듯해요."

"공부라고 하면 왠지 재미없게 느껴져요."
"억지로 하는 공부는 재미없겠지만, 내가 궁금해서 찾아보는 공부는 재미있어요. 스스로 동기 부여가 돼서 하는 공부니까요. 재미있을 수밖에요."


트레이너의 몸에 새겨진 역사는 보람과 재미였다. 트레이너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은 몇 번 바꾸었지만, 직업은 바꾸지 않은 인생이었다. 앞으로 센터 운영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지금 하는 일의 연장선이고, 그는 지금 일을 기반으로 꿈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40대의 안정적인 모습이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을 그의 미래가 그려졌다. 그런 그가 조금은 부러웠다.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몸에 새겨진 일의 역사를 떠올렸다. 20년간 일에 대한 태도 말이다.

내 몸에 새겨진 일의 역사
 
다음 일이 나에게 남겨줄 역사를 상상한다.
 다음 일이 나에게 남겨줄 역사를 상상한다.
ⓒ geralt,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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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좋았다. 회사도 성장하는 시기였고, 내가 속한 부서도 확대될 때였다. 배울 만한 선배도 많았고, 동료들도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섞여서 일하는 게 재미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떠나갔고, 내가 속한 사업부는 점점 축소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회사를 '돈 버는 곳' 이외에 다른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나는 직장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몰랐다. 돈 버는 곳 이외에 다른 정의가 없으니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을 찾지 못했다. 방황의 시기가 이어졌다.

회사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도 했지만,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돈은 무척 중요했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게다가 돈을 생각한다면 직장만큼 불안정한 곳이 없었다. 직장을 좀 더 오래 다니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퇴사 버튼을 눌렀다.

프로그래머로 20년간 일했던 나는 퇴사 후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글쓰기 프리랜서와 마케팅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직업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것보다 현재 하는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았다. 내 몸에 새겨진 일의 역사는 성장과 배움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크지만, 모르는 분야를 알아가는 재미가 현재 하는 일의 만족도를 올려 주었다.

일을 만들어가는 곳에서 일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지금,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향기가 나려나.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일 좀 하는 사람'의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트레이너, #인터뷰, #인터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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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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