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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시인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표지.
 김륭 시인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표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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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어머니 이름을 새겨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쓴 시가 아니라 어머니 박정임 여사가 불러준 시편들이에요."

김륭 시인이 펴낸 새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인의 어머니(박정임)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집을 넘길 때마다 '사랑'과 '눈물' 이 가슴에 맺히는 것 같고, 그런 느낌에 계속 빠져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시인의 말"(아래)에서 "엄마"하고 불러보았다.
 
식물 합시다.

죽어서도 뛸 수 있는 문장 위로
박정임 여사를 옮기고 있다.
요양병원 화단에 앉아 있던 맨드라미가
엄마, 하고 불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륭 시인은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와 동시를 함께 짓는 재주 많은 시인인 셈이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천양희·정호승 시인은 그의 작품에 대해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새 15년이 지난 심사평을 꺼내 읽는 배경은 김륭 시인의 시적 매력이 그의 출발점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의 시적 발상은 독특하고 상상력은 발랄하다. 아마도 동시(童詩)를 병행하고 있는 시인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와 동시의 특성이 조화롭게 만나 펼쳐진다.

이번 시집은 특히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과 연애의 실패가 시인에게 원천적인 상실의 불안을 안겨주는 풍경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이경수 교수(중앙대)는 해설에서 "김륭의 시는 마음을 유배 보내고 그 둘레에 가시 돋친 탱자나무를 두고 있다"며 "김륭의 시는 자신의 마음을 상처 내기 위해 도사리고 있는 시처럼 읽힌다"고 했다.

김륭 시인은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2013년), 지리산문학상(2014년), 경남아동문학상(2019년), 동주문학상(2020년), 시와경계문학상(2021년)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가 있고,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 온다>, <별에 다녀 오겠습니다>, <엄마의 법칙>,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앵무새 시집>과 동시평론집 <고양이 수염에 붙은 시는 먹지마세요>가 있다.
 
비단잉어

비단잉어에게 비단을 빌려
당신에게 간다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바람은 글을 쓸 수 없어서 못 다한
인생에 피와 살을 더할 수 없고
당신은 누워 있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만 있다
떠날 수 있게 하려면 물에 젖지 않는
종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죽어서도 뛰게 할 당신의 심장을
고민하고 있고, 당신은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반짝인다 비단잉어에게 빌린
비단을 들고 서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허공에 고양이수염을 붙여주러 온
미친 비행기인양,
내가 낳았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걱정 마, 엄마는
지금 엄마 배 속에
있으니까
 

태그:#김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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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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