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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2018년 11월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난다!" 아쉽다. 이걸 이제 알다니.
▲ 김영하 작가의 명언 2018년 11월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난다!" 아쉽다. 이걸 이제 알다니.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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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알쓸신잡3>에서 김영하 작가가 하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절대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다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60~70%만 써야 된다, 절대 최선을 다해선 안 된다는 게 제 모토였어요. 남겨놔야 된다 능력을.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라든가 체력을 남겨둬야 합니다. 집에서는 대체로 누워 있어요. 함부로 앉아있지 않아요."

아...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이 말에 다 들어 있었다. 나는 내 능력치를 모르고 무조건 '영끌'해 쓰면서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가'를 고민했다. 무리한 계획을 세워 조바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번아웃과 가족 같은 사이로 살았다.

대학 때는 3곳의 동아리활동과 아르바이트 2개를 병행하느라 한때 아침마다 '모닝코피'를 쏟으며 기상했다. 약골인 주제에 100이 아닌 200, 300을 하려 하니 몸 여기저기 말썽이 늘었다. 내 '활동성'이란 게 참으로 징글징글한 녀석이다. 하루에 많은 활동을 하기 어렵게 된 지금까지도 이런 성향 자체는 큰 변화가 없으니. 

제발 적당히 좀 하자, 깡다구야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어진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어머니가 돌리시던 석간신문을 나눠 돌리던 게 재밌어서, 중학교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교과서보다 <교차로>를 훨씬 꼼꼼히 읽었다. 눈에 띄는 카페에 전화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열심히 물었다. 사장님들은 내 나이를 듣고 실소를 흘렸다. 욕하지 않고 좋은 말로 끊어주셨지만 어린 나는 분했다.

그렇게 의욕만 쌓아가던 고1 때 매력적인 일을 알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올라가서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날쌔게 종이를 붙이는 동작의 반복. 전단지 배포는 중독성이 있었다. 다다다 달려서 신나는데 돈도 준다니! 휴일에 공부를 한다고 나가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전단지를 돌렸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학교생활도, 집안 분위기도 답답했는데 알바를 하면 '뭔가'는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 아저씨가 하는 말에도 어깨가 으쓱했다. "야, 너는 다른 애들하고 다르다. 너는 '깡다구'가 있어, 깡다구. 그게 뭔지 알아?" 돌아보면 그 '깡다구'는 싫은 것을 견디는 끈기나 인내심보다는 '이때다!' 하고 쏟아내는 과잉행동에 가까웠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은행원이나 공무원 같은 일자리를 갖기 바라셨는데, 나는 "저랑 안 맞아요"라며 일찍 선을 그었다. 불안정한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내가 철이 없다 싶었지만 그래도 상상이 안 됐다. 한 곳에 오래 있거나 단체활동에 끼어야 할 때면 지하실에 갇힌 듯했다. 내적 충동성향인 내가 정해진 생활을 견디는 건 고등학교까지가 한계였던 거다.

내 진로는 또 그 느낌에 충실해서, 대학 졸업 후에는 10여 년간 여기저기 떠돌며 1~2년 단위로 일했다. 중간에 공무원 비슷한 일을 해 보기도 했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다 뛰쳐나갔고, 동시에 손끝에 닿는 일거리는 뭐든 붙잡고 아등바등했다. 내 '깡다구'에는 목표도 방향성도 없었다. 하고 싶어지면, 그냥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욕망의 노예'라는 말이 더 맞겠다.

스스로도 자주 생각했다. '제발 적당히 좀 해라.' 쉬고 싶고 쉬어야만 하는데도, 쉴 수 없었다. 모든 사고를 확장적으로 하는데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여놨으니 잘될 리가. 나는 정보의 중요도를 가리거나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지금 보면 생활의 범위를 단순화하는 게 매우 중요했던 거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날 신기해 했다. "야, 너는 진짜 대단하다." 처음엔 오히려 그런 말들이 신기했다. 대충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내가 의욕만은 정말 '대단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그런 평가를 자부심으로 만들어 낮은 자존감을 채우는 데 썼다.

나의 가혹하고 상냥한 ADHD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내가 열정부자인 것마저 부족한 도파민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이 ADHD의 특성 중 하나로 '자극과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 열정과 과몰입'을 언급한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내게 "자꾸 새로운 걸 추구하는 건 뇌 신경이 자극에 둔해서 그런 거래"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꽤 전문적인 얘기였던 거다. 정확히는 신경전달물질의 문제였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나는 나의 연구 대상이었는데 이렇게 타인에 의해 명료하게 설명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이만큼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증상이었다면, 내 삶에서 증상에 지배받지 않은 부분은 찾기 어려운 것 아닐까? 속시원한 한편 허무하기도 했다.

물론 ADHD가 다 그렇단 말이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같은 ADHD라고 해도 사람마다 증상과 경향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주변의 저평가와 자책 때문에 욕망이 아닌 무기력감으로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그리고 이런 유노윤호급 열정과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점차 무력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늘 원해서 일을 시작하면서도, 막상 일을 하면 매번 속을 까맣게 태웠다. 날이면 날마다 눈물을 감추고 콧물을 삼키며 왜 나만 이렇게 실수가 많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이놈의 것, 해, 말어, 하며 머리털을 뜯었다. 

내가 대인 관계와 의사소통, 임기응변에 매우 서툴다는 것을 새록새록 진지하게 깨달으면서 선택지도, 마음이 설 수 있는 땅도 좁아졌다. '하고 싶음'은 그대로였지만 '할 수 있음'은 서서히 작아져 갔다.

바닥과의 일체화가 기본 자세인 내 동거인과 할 일을 마치고 드라마를 보면 더 바랄 것 없다고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 부럽다.' 특별히 이루고 싶은 게 없다면 현실과 이상이 어긋나 괴로울 일은 없을 테니. 잡다한 하고 싶음에 끌려 다니다 글을 쓰지 못한 것도 아쉬웠고, 정작 중요하게 생각했던 꿈에 쓸 체력까지 탕진해 버린 것도 후회스러웠다. 
 
삶에 있어 안정성이란 허상이 아닐까. 누구나 눈앞에 있는 돌을 쌓아올릴 수 있을 뿐이다.
▲ 안정성 삶에 있어 안정성이란 허상이 아닐까. 누구나 눈앞에 있는 돌을 쌓아올릴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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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일종의 어리광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아티스트이자 유머리스트 이반지하는 이런 말을 했다. "원래 남들 잘 되는 건 되게 단순하고 심플하고 한결 같이 잘 되는 것 같고, 나는 복잡하게 안 되는 것 같잖아." 이런저런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음' 자체를 느껴보지 못해 자신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고, 여러 가지를 다 잘 해내려 애쓰는 내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뭔가에 몰입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다. 꿈과 욕망이란 건 잘 풀리든 아니든, 녹록지 않은 현생을 버텨 나가는 구심점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마치 모든 날씨가 하루에 공존하듯 요란했던 나날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봤다는 느낌을 남겨주었다. ADHD 증상은 나를 정신 없이 흔드는 동시에 현생을 버틸 힘도 약간은 만들어준 셈이다. 이 '주관적인 안정감'은 객관적으로 불안정한 현 상태를 지탱해준다.

예를 들어 금융권에서 소속된 일터가 없다는 이유로 야박하게 신용카드 한 장 안 만들어주지만 서럽거나 부끄럽지 않다. 통장에 다달이 급여를 쌓는 것은 기쁘지만, 계속 다음날 아침이 없길 바라며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겨울인 요즘은 방에서 손끝을 비벼가며 타자를 치다가 내킬 때 나가서 방방 뛰어다니는 게 내가 살아있는 느낌의 기본이다. 객관적 불안정과 주관적 안정 사이에서 멋대로 몸을 놀리며 사는 것이 나에게는 안정인 거다.

여전히 현실감각 없이 붕 떠서 살지만, 사리에 어둡던 내가 세상을 배워 그나마 사람 흉내는 내게 됐으니 어쩌면 참 다행이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정확히 반반은 아니더라도,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나라는 개체로 살아보며 느낀 모든 감정이 나를 이룬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구분하는 데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타고난 병과 타고난 나, 그리고 타고나지 않은 경험들 속에 만들어진 새로운 나를 모두 긍정하며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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