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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전두환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하자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나와 사망관련 내용을 말하고 있다.
 23일 오전 전두환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하자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나와 사망관련 내용을 말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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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아침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전직 대통령이기 이전에 현대사 중요한 사건의 주역이었기에 전씨의 죽음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5·18 광주학살을 주도했으며, 공안 통치를 통해 언론통폐합, 삼청교육대, 박종철·이한열 사망 등 이 사회에 암울한 상처를 무수히 남겼다. 그로 인해 전씨의 죽음에 대한 조의 또는 조문 논란이 일고 있다.

무릇 조문이라 함은 '타인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뜻을 드러내어 상주를 위문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죽은 이의 죽음을 슬퍼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조의' 할 뜻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씨는 사망 당시까지도 광주 학살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결국 광주 학살 발포 명령과 같은 진실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고, 광주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사과 한 마디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33년 전 백담사 가던 날 성명

사과 없는 죽음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전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이날 연희동 전씨 집 앞에서 "광주 피해자 유족에 대한 사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 전 대통령이 33년 전 11월 23일 백담사 가던 날 성명에서도 발표했고, 피해자한테 여러가지 미안하다는 뜻도 밝혔다. 광주 청문회 때도 그런 말을 여러 차례 했다"며 충분히 사죄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전두환 측근의 적반하장 "5.18 피해자 사죄? 질문 잘못됐다" (http://omn.kr/1w4vq)
 
전두환 씨가 발표한 사과담화문. 1988년 11월 24일
 전두환 씨가 발표한 사과담화문. 1988년 11월 24일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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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비서관의 주장처럼 과연 충분한 사과가 있었는가. 1988년 11월 24일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전두환 사과 담화문을 먼저 살펴보자. 

그는 이 담화에서 먼저 국민들에게 사과를 구하며 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피해를 당한 삼청교육대 사건, 공직자·언론인 해직 문제, 인권침해 사례 등을 언급하며 "아픈 마음", "시행착오"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 한분 한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는, 우리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며,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일에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거나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담화문 어디에도 5.18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사과한다는 말이나 사과 방법을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삼청교육대 사건이나 해직 문제, 인권침해 사태에 관해 "한분 한분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고 했으나 5.18 피해자를 향해서는 그런 표현이 없다. 단지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과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이다. 더욱이 그는 이 말조차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스스로 걷어찼다.  

혼자 과거 문제 매듭?

전씨는 1989년 12월 31일 광주 청문회에서 광주 학살의 이유와 원인을 질책하는 청문위원들에게 답변하던 중 '일부 시민들의 과격 시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가'라는 답변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 1995년 12월 2일 전씨는 12.12 및 5.18 진상을 수사 중이던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구속을 거부하며 소위 연희동 골목 성명을 발표한 다음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전씨는 합천으로 향하기 전 발표한 긴급성명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과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무색하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모든 의혹에 대해 "저는 소위 5공 청산 정국의 정치적 종결을 위해 그해 12월 31일 국회의 증언대에 올라 과거 문제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이미 정치적으로 완전 종결되었던 사안이 최근 또다시 제기되어 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적' 종결을 주장하며 5.18 문제가 매듭지어졌다고 했다. 특히 5공화국을 포함한 과거 청산 운동을 "일부 좌파 운동권의 주장"이라고 했다. 이렇듯 다시 살펴보아도 민 비서관이 이야기 한 사죄는 찾아볼 수 없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표하겠다면서도 5.18 피해자는 예외였다.

그리고 피해자의 아픔과 한이 풀어질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5.18진상규명과 관련해 성실히 응한 적이 없었다. 발포 책임을 묻는 법정 앞에서 5.18 광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질문하는 기자에게 호통을 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사자명예훼손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오다 시위 중인 시민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0. 11.30
▲ 소리 지르는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사자명예훼손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오다 시위 중인 시민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0. 11.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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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비단 광주 시민들에게만 아픔과 상처를 준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삼청교육대, 공무원·언론인 해직 피해자, 조작간첩 등 각종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때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공안사건 피해자, 고문 피해자, 조작 간첩이 만들어진 것은 이 정권의 인권침해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죄의 기준과 종결은 가해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해자가 정하는 것이다. 5공화국 집권기 수많은 인권침해 피해자가 있었고, 여전히 그들은 전두환 정권 시절 피해 사실에 대해 명확하고, 명백한 진실규명과 사죄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 가해자에게 충분한 사죄를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즉, 사죄의 시작이 없었으니 사죄에 대한 종결 또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싶지만 다수의 국민은 그럴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애도에 앞선 분노, 고통, 상처가 앞서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사망한 전씨가 바로 분노, 고통, 상처를 단 한 번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 적 없는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태그:#평화박물관, #수상한흥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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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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