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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기 근로자는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한다는 이유로 연차, 퇴직금, 4대 보험, 주휴수당 등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초단기 근로자는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한다는 이유로 연차, 퇴직금, 4대 보험, 주휴수당 등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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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다. 주는 대로 돈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부당한 대우에도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저 나이가 더 들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지나고 보니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용주들은 주휴수당, 연차, 근로계약서, 4대 보험 등을 언급하기도 전에 일부터 시키려고 안달이었다.  

사회 초년생이 된 지금 카페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과거 알바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했을까?', '무시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춥진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일처럼 걱정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지난해 10월보다 65만 2000명이 늘었다. 모두 정규직이면 좋으련만 그건 또 아니란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해 10월보다 29만 7000명이 증가했다.

특히 20대 청년들은 초단기 근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알바를 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단기 근로자는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한다는 이유로 연차, 퇴직금, 4대 보험, 주휴수당 등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20대 청년들이 겪어온, 지금도 겪고 있는 청년 초단기 근로자들의 불편함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미래의 청년들이 조금이나마 변화된 노동 환경에서 일하길 바라며 현재 초단기 근로를 하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이럴 거면 계약서 왜 쓴 거죠?"
양식당에서 일하는 이장운(가명)씨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대학교 2학년 이장운(24·가명)입니다. 저는 학교 근처 양식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시급은 8720원이에요. 평일에는 학교 비대면 수업이 끝나면 아동 복지센터에서 일을 하고 바로 식당으로 알바를 하러 갑니다. 서빙을 주로 하는데 사실 음식 만드는 일 빼고 다합니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 처리도 하죠. 쉬는 시간은 따로 없어요. 그냥 손님 없을 때 서서 쉬는 정도죠.

학교수업 시간을 피해서 평일에 4일, 하루 3시간 반을 일하고 있어요. 저녁 시간인 6시부터 9시 반까지요. 근데 문제가 뭔지 아세요? 계약서에서만 이 시간이 지켜지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계약서를 쓸 때는 분명 일주일에 14시간이라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은 5시에 출근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주휴수당 안 주려고 교묘하게 수를 쓴 거죠.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 힘든 거 아니까 저도 주휴수당 안 주려고 하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일한 지 2주 정도 지나니까 일하는 시간이 계속 바뀌더라고요. 일주일에 4일 근무라고 했는데 이틀 나갈 때도 있고 사흘 나갈 때도 있어요. 손님이 줄어들면 제가 일하는 날이 줄어들고, 손님이 많아지면 일하는 날이 갑자기 늘어나요. 제 일정에 맞는 알바를 찾은 건데 식당 상황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달라져서 다른 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일하는 시간이 계속 변하니까 한 달에 받는 알바비도 계속 달라져요. 알바비로 월세도 내고, 교통비에 밥값도 내야하는데 받는 돈이 매번 달라지니까 곤란하더라고요. 이럴 거면 근로계약서는 왜 쓴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계약서에 적힌 대로 일을 시키든가, 아니면 일을 시키려는 대로 계약서를 썼으면 좋겠네요. 제가 아무리 돈을 받는 입장이지만 알바생들한테 그 정도 예의는 지켜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정규직처럼 꾸준히 다니고 싶죠"
취업준비생 김호인(가명) 씨의 이야기

 
월세나 식비, 통신비 등으로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투잡', '쓰리잡'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월세나 식비, 통신비 등으로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투잡", "쓰리잡"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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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하면서 알바 하고 있는 김호인(27·가명)입니다. 저는 여러 가지 알바를 많이 했어요. 프랜차이즈 햄버거집, 보조출연 알바, 온라인 전단지 돌리기 등등이요. 최근에는 했던 것은 헬스장 안내데스크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했어요.

아침에는 주로 노인분들께서 많이 찾아오세요. 제가 헬스장 문을 여니까 오자마자 불 키고, 운동기구가 작동되도록 준비해요. 모두 완료가 되면 안내데스크를 지키면서 손님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일해서 최저 시급으로 한 달에 24만 원 정도 받았어요.

4개월 정도 헬스장에서 일을 하고 현재는 다른 알바를 찾고 있어요. 저는 오랜 시간 일하는 자리를 찾고 있는데 그런 일자리는 많이 없더라고요. 12시에서 2시, 7시에서 10시 같이 2~3시간 일할 수 있는 단기알바자리가 대부분이에요.

주휴수당 때문에 고용주들이 단시간 일할 사람만 구하는 것 같더라고요. 코로나 시작되고 나서 알바생 뽑는 곳도 많지 않고요. 오랫동안 일할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직장인처럼 9시에 출근해서 5시나 6시에 퇴근하는 그런 알바 자리 어디 없을까요?

"4대보험, 퇴직금 이런건 당연히 없죠"
프리랜서 예술강사 이지윤(25)씨의 이야기


저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코로나로 한국에 들어왔어요. 뮤지컬인 제 전공을 살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 등을 가르치는 예술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학교 예술 강사 지원사업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고요.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기간제 예술강사 구인 공고가 뜨면 그걸 지원해서 일자리를 찾습니다. 저는 학교 세 곳과 각각 계약을 해서 일하고 있어요. 세 곳에서 일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총 18시간이에요.

구인 공고가 자주 뜨면 좋은데 예술 쪽 기간제 강사는 잘 안 올라오더라고요. 공고도 잠깐 올라와서 제가 수시로 확인해야 해요. 신청한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고 해도 면접보고 바로 다음 주부터 바로 나오라는 경우가 많아요. '스케줄 되면 하고 안 되면 하지 마세요' 이런 식이죠. 협의 같은 거 없이 학교에서 통보하면 저희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채용기간도 길지 않아요. 3주 혹은 한 달 정도 일할 사람을 구하니까 저는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합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입장에서는 좀 불편하죠. 계약이 끝나면 다른 일을 또 구해야 하니까요. 차라리 한 학기나 일 년이 채용되면 좋은데 그렇게는 많이 안 뽑아요.
 
서울시 교육청에 올라온 한 학교의 채용 조건. 의료보험 혜택이나 퇴직금은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서울시 교육청에 올라온 한 학교의 채용 조건. 의료보험 혜택이나 퇴직금은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 서울시 교육청 구인 공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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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으로 하는 일이 많다보니까 일상이 매번 달라져요. 학교 수업은 보통 오후 3시에 끝나요. 저녁에는 수업에서 가르칠 안무 다듬으려고 연습실 빌려서 연습하고, 중간에 시간이 비면 수업계획서나 애들 생활기록부 업무를 처리해요. 어린이 뮤지컬처럼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외부 수업을 맡았을 때는 토요일에도 일을 하기도 합니다.

시급은 보통 3만 원에서 많으면 5만 원이에요. 진짜 낮은 데는 2만 2천 원으로 봤었어요. 보통은 3만 원에서 3만 5천 원 많이 주시고요. 대우를 잘 해주는 곳은 4만 3천 원, 4만 5천 원, 특수학교는 5만원까지도 준다고 들었어요.

4대 보험, 퇴직금 없고요. 휴가, 월차도 없습니다. 아파도 그냥 나와야 해요. 만약 아파서 수업을 못하게 되면 저는 무책임한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 같은 프리랜서나 정부 지원 사업으로 예술강사 하시는 분들 모두 수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해야하는 게 많아요. 안무를 짜거나 공연 대본을 써야한다거나. 각 반마다 안무나 공연이 다르면 다 다르게 준비해야 해요. 이걸 개인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데 연습실 빌리는 것만 1만원, 1만 5천 원 하거든요. 수업 시간 외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시급으로 안 쳐줘요.

아이들 가르치는 게 너무 좋고 잘 맞는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학교 예술교육은 열악한 것 같아요. 예술강사 처우가 좋지도 않고요. 한국에도 예술교육이 자리가 잘 잡혀서 예술 강사들이 많이 채용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정규직이든 프리랜서든 조금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안정한 고용... 흔들리는 초단기 근로자의 삶

이들이 초단기 근로를 통해 얻은 수입은 대부분 월세나 식비 등의 생활비로 쓰인다. 한 곳에서만 일을 하기에는 수입이 적어 여러 곳에서 초단기 근로를 병행하기도 한다. 월세나 식비, 통신비 등으로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투잡', '쓰리잡'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초단기 근로자가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주일에 최대 14시간을 일해도 한 달에 버는 수입은 약 48만 원이다. 생활비가 빠져나가면 남는 돈은 없다.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대학생인 청년의 경우 알바 개념으로 초단기 근로를 하고 있었지만 그 수입으로 모든 생활비를 해결하기 어려워 부모님에게 통신비 등의 일부 금액을 지원받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초단기 근로가 잠깐 거쳐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위해 초단기 근로를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도 있다. 불안정한 고용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 초단기 근로자들을 위해서라도 처우를 개선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그:#초단기근로자, #단기알바, #주휴수당, #근로계약서, #프리랜서예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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