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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유니온은 새롭게 주거취약계층으로 대두된 청년층의 당사자 연대로, 2011년 대학교 기숙사 운동을 시작으로 청년 전반이 일상 속에서 겪는 주거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집을 투기 수단으로 바라봤던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현 청년 세대의 삶에 직격타로 다가왔고, 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미션으로 삼은 청년들이 '민달팽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올해 단체 설립 10주년을 맞아 현장의 목소리를 보다 드러내고자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진실하게 들여다보려는 시선과 이를 드러내려는 노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민달팽이유니온의 청년주거운동 10주년 기념 인터뷰 기사 연재'에서 확인해보세요.[기자말]
물리적 안전을 도모하고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집'. 그러나 주거 공간에서 불평등과 차별, 배제를 겪는 청년들이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존재하는 청년 당사자 연대로, 이 불평등과 차별, 배제에 맞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주거불평등으로부터 발생한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당사자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사회적 실험을 해왔다.

청년은 만 19세, '스물'이라는 숫자와 함께 어떤 안전망도 지니지 못한 채 사회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의 문제에 귀 기울인다. 이번에는 가구와 분리하여 독립된 생활을 이어온 한 청년의 일상을 통해 청년 문제를 풀어내보고자 한다.

청년 도영(가명)은 20대를 '지옥고'에서 보냈다. '지옥고'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한 글자씩 따온 열악한 주거 환경을 말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의 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201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 주택 이외의 거처의 비율은 총 2.3% 였으나, 가장 최근 집계된 비율은 2019년 6.2%에 달한다.

깨끗하고 살만한 집을 보여주실 순 없을까요?

- 어떻게 지하 집을 구하게 되셨나요?
"교통편을 생각해서 적합한 동네를 찾고 그 주변의 부동산을 돌아다녔어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시기라 여러 호선이 있는 지하철, 버스가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었죠. 그런데 역시나 그 주변의 시세는 너무 높고, 마땅한 곳이 없어서 옆 동네로 눈을 돌렸어요.

공인중개사 분이 좋은 집이 나왔다면서 데려가 준 곳은 너무 허름하고, 다락방 같은 곳뿐이었어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죠. '허름하고, 계단 아래에 있는 경사진 천장을 둔 집만 보여주셨다. 깨끗하고 살 만한 집을 보여주시면 안 되겠나요?' 그랬더니 보여준 곳은 지하 집이었습니다. 2층 단독주택 지하에 있던 집이었는데, 방향제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지하 곰팡이 냄새와 꿉꿉한 습기 냄새를 가리기 위함 같았어요. 중개사는 사람이 살던 곳이고, 그곳을 리모델링해서 매우 깔끔하다는 점을 강조하시더라고요. 제 눈에 보기에도 매우 깨끗했어요. 하얀 벽지에 새 장판이 깔린 방 두개의 공간이었어요. 마침 제가 가지고 있는 보증금에 맞기도 했습니다."

- 지하 방에서 어떤 문제를 겪으셨나요?
"리모델링에 속은 거죠.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닌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보일러를 두기 위해 만든 공간을 개조한 탓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벽에 합판 가벽을 두르고, 방을 쪼개어 깔끔한 도배를 했지만 창고는 창고였어요.

사계절 습기가 계속 생겨 벽에 맺히는 물방울을 닦지 않으면 며칠 사이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을 매일 열어 환기하고, 제 형편에 제습기를 살 수는 없어서 제습제를 박스 단위로 구매하고, 매일매일 벽에 물기를 닦았습니다. 그래도 결국 한 벽이 곰팡이에 먹히더군요."

- 옥탑방 생활은 어땠나요?
"옥탑방은 날씨에 따라 저의 안전이 결정되는 곳이었습니다. 옥탑방은 철제 계단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형태였는데, 눈이나 비가 오면 빙판 같이 너무 미끄러웠습니다. 잘못 디뎌 넘어지는 날에는 낙상사고가 나기 좋은 곳이었죠. 임대인이 조치라고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여줬지만 금방 너덜너덜해지고 오래가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살던 옥탑은 넓은 사각형 벽돌 공간에 가벽으로 만든 작은 화장실을 억지스럽게 욱여넣은 느낌이었어요. 전에는 몰랐지만 민달팽이유니온 교육을 통해 바닥과 화장실의 턱이 높은 경우 화장실을 건축 설계 때 만든 것이 아닌 나중에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땐 당연히 몰랐죠. 독립하면 으레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했어요."

- 고시원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위에서 말한 옥탑방은 제가 구한 집은 아니고, 얹혀사는 집이었습니다. 고시원은 옥탑방을 나와 처음으로 제가 혼자 살게 된 집이었어요. 고시원으로 간 이유는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는 건 무서웠습니다. 처음 방문했던 부동산에서 '돈도 없는데 왜 여길 왔냐'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부동산을 가서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사실 정말로 돈이 얼마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시원을 찾아다녔어요."

- 고시원 생활은 어떠셨어요?
"'단절'이었어요. 공용화장실과 공용샤워실이 있었고, 방은 외부창문방과 복도방을 고를 수 있었는데, 외부 창문방은 4만 원이나 비쌌습니다. 빠듯한 생활비를 생각해서 복도방을 골랐어요. 작은 형광등 하나와, 작은 브라운관 TV가 유일한 불빛으로, 시계를 보지 않으면 지금이 오전인지, 저녁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또 정말 좁았습니다. 침대에서 팔을 뻗으면 양손에 벽이 닿았어요. 처음으로 공간이 저를 옭아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시간관념이 느껴지지 않고, 좁은 벽은 종종 저를 조이는 환각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정신건강을 잃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 20대 시절과 지금의 30대… 변하는 게 있나요?

"최근 그런 기록을 봤어요. 주거빈곤율은 미약하게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청년빈곤율은 더 오르고 있다고요. 왜 이렇게 살기 어려울까요? 20대에 저의 소득과 삶을 되돌아보면 주거급여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기준이었겠지만, 그런 게 있다는 정보도 몰랐거니와 부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받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독립해서 각자의 노동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도 가족 중심 제도에 얽매여 있죠."

서울 청년 1인가구의 주거빈곤율은 역주행하며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의 주거빈곤율은 18.1%로 전국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청년 1인가구의 경우 2010년 36.3%에서 2015년 37.2%로 역주행하고 있다.

도영씨가 말한 주거급여는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소득이 낮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제도다. 최근 일부 개선이 이루어져 수급가구에 속해 있는 청년은 분리 독립을 입증하면 별도로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청년을 전적으로 단독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예외 없이 원칙적으로 20대 청년도 주거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만 30세 미만의 청년은 자신이 속한 가구가 수급가구가 아니라면 신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 위험한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출입문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에 출입문이 있고, 가벽을 대서 인위적으로 방을 만든 집이요."

누군가는 말한다. '불량주거(위반건축물)라도 어떤 사람에겐 꼭 필요한 공간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집이다.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가격만 높아지는 불량주거. 민달팽이유니온은 상담을 꾸준히 해오면서, 세입자에게는 주거권도 없고, 그저 높은 월세와 관리비를 지불해야하는 의무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마주한다. 도영씨가 20대를 보낸 불량주거환경은 10년이 지나 더 낡고 위험한 건물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또 다른 청년이 안전과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도영씨는 마지막으로 사람은 누구나 집다운 집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권리가 있다고 전한다.

"누구나 보다 안전한 공간에 살아갈 수 있도록, 위험 상황에 놓인 자가 그 위험을 딛고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주거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를 공공에서 먼저 찾아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입자로 살고 있는 청년 동료 분들이 '나는 세입자이고, 나에게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세입자가 가진 권리가 궁금할 때에는 민달팽이유니온 교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태그:#청년주거, #주거권, #불량주거, #비주택,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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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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