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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에 대한 국민 불만 중 대표적인 것이 '핑퐁'이다. "여기가 아녜요. 다른데 가보세요"라는 말만큼 짜증나는 소리가 없다. 게다가 잘못 찾아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데서도 책임지는 기관이 없다면 그야말로 화가 치밀다 못해 절망적이다.

근로기준법 같은 노동관계법은 전통적인 제조업 사업장이 그 모델이었다. 그런데 제조업 노동자조차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인데, '고용다변화', '파편화'가 가속되는 노동시장에서 정부가 지금 펼치는 노동 정책은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혹자는 소규모 제조업체의 몰락은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는 2017년에 '도시형 소공인 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우리나라 소공인(10인 미만 규모 제조업체)의 국가경제기여도는 연평균 부가가치액 증가율 및 고용증가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국과 비교할 때 독일에 이어 2위라고 했다. 그런데 종합지원계획 시행 5년이 지난 지금, 도심제조업의 생존 환경과 노동기본권은 그 어느 때보다 나빠져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일감을 쥐고 흔들며 착취하는 구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도심제조업은 대부분 유통업체나 원청에서 일감을 받아 생산하는 구조이고, 특정한 업종이 특정 지역에 밀집해 있기 일쑤다. 그건 협업과 자원·정보 공유, 일감이 몰리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합계획은 크게 집적지(특정 업종 밀집 지역)에 지원센터 설치, 금융 지원, 공동장비 운영, 판로 개척, 도심제조업체의 역량 강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업체당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 감소와 값싼 외국산 수입 문제는 그 문제대로 대책이 필요하지만, 도심제조업의 특성상 일감을 쥐고 흔드는 '절대 갑질'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정책 지원의 단물은 결국 어디로 흘러들어 갔을까? 수제화업의 백화점 수수료 인하 요구, 봉제업의 라벨갈이(값싼 외국산 의복을 수입해서 국내산으로 둔갑) 근절 요구, 부가세를 둘러싼 원청의 부당한 압박 개선 등 세세한 개선 요구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개선된 것이 없다.

둘째, '조사 없는 정책 없다.' 하지만 조사조차 되어 있질 않다. 종합지원계획에는 2021년까지 지자체와 협력해 전국 696개 집적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완료할 것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내놓을 수 있는 실태조사 결과는 있는가? 예컨대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명부(2017년)에 서울 종로구와 중구의 봉제업체가 1278개와 1402개였다면, 2019년 서울시 조사에서는 각각 2327개, 2106개로 조사되었다. 무려 두 배 가까이 차이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도시형 소공인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 현황 자료가 없다며, 2019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률이 93.7%라고만 말한다. 한편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서울 제조업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9.0%로 나타나서 도시형 소공인 최대 밀집 지역인 서울의 통계를 통해서 도심제조 노동자의 현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서울봉제인지회)이 2019년 봉제업 종사자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7.9%였다. 이는 봉제업의 특성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격차다. 현장이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셋째, 도심제조 노동자 노동 복지 확충 계획이 빠져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도심제조업의 경우 일감을 받아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숙련 인력인 경우가 많다. 그건 정부도 인정하고 종합계획 수립 배경에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1차 종합지원계획엔 빠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건 어디서? 고용노동부는 계획이 있나? 지속가능한 도심제조업 육성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 빠진 것이다.

도심제조업의 핵심 자원은 숙련된 노동자

때마침 내년은 '제2차 도시형 소공인 지원 종합계획(2022~2026)'과 '제5차 근로복지증진기본계획(2022~2026)'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하는 해이다. 내팽개쳐뒀던 100만 도심제조 노동자 노동기본권 확장·강화를 위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도시형 소공인 지원 종합계획 수립 주체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정부합동으로 확대하고, 현장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도시형소공인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하여 '정책협의회 설치'와 '도시형소공인 종사자 권익 보호' 조항을 추가하자.

한편, 도시형 소공인 지원 정책의 전달 체계가 지자체 매칭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력과 아울러 광역시도 차원의 도심제조 노동 정책 수립과 거버넌스 구축이 함께 추진되어야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또한 100만 도심제조 노동자 노동기본권 확장·강화가 도시형 소공인 경쟁력 강화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노동 정책 대안을 우선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역공동노동복지기금 설치이다. 작은 사업장, 불안정한 고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광역시도 단위에 공동노동복지기금을 설치하고 종합적인 도심제조 노동자 노동 복지 확충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숙련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하고 신규 인력이 들어오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정한 기간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와 협업하여 사업체 현황조사, 고용·노동 관행 조사와 계도, 계도 미이행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시행으로 체계적인 사업체 운영 관행을 확립해야만 산업 지원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지원 정책은 그 성과가 일부 사업주 단체의 짬짜미식 나눠먹기와 원청/발주처가 하청 단가를 낮추는 기회요인으로 악용하게 되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셋째,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 현황 관리와 가입 특례기간 운영과 사회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고용안정성이 점점 위협받고 있는 반면 고용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어 정작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 제도 밖에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과 더불어 기존 의무 가입 대상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입 특례 기간을 운영하여 소급 적용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가입을 회피하는 것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몰제를 적용하더라도 사회보험 지원에 대한 새로운 설계와 확충이 있어야 할 것이며, 도심 집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산업의 특성상 지자체 차원의 맞춤형 지원과 매칭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한 법률 작동은 고용/피고용 관계가 특정되어야만 작동해온 함정이 있다. 그렇기에 고용 형태가 다변화되고 파편화되는 상황에서 사각지대가 보호받는 지대보다 오히려 커지는 괴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엔 기업의 의도된 고용상 지위 조작이 있었다면, 100만 도심제조 노동자는 정책 부재로 인한 집단적 괴사에 몰려 제도 밖으로 내몰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도심제조 노동의 노동기본권 확장·강화를 위한 정책 대안 모색은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 모델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도심제조업의 핵심 자원은 숙련이 형성된 노동자다. '핑퐁'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11,12월호 ‘정책칼럼’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도심제조업, #노동기본권, #지역공동노동복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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