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19구급차를 포함한 소방차의 생명은 신속성이다. 이를 위한 특효 처방이 있는데 바로 차량의 교통흐름을 제어하는 이른바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EVPS)'이다. 이는 119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등의 도로교통법상 긴급자동차가 출동할 때 신호등 앞에서 멈추는 일 없이, 또 신호를 위반하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 교통신호 제어시스템을 말한다.

2017년 경기도 의왕시에서 전국 최초로 도입‧운영한 뒤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10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각 지자체의 언론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시스템의 운영 결과 30~50% 대의 긴급차량 출동 시간 단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2018년부터 해당 시스템 도입을 도 내 기초지자체에 계속 요청해와 현재는 31개 시‧군 중 20개 시‧군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나머지 11개 시군도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교통신호기의 설치·관리는 도로교통법 제3조에 따라 특별시장, 광역시장,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시장·군수가 맡는다.

이 시스템은 긴급차량의 골든타임 준수뿐만 아니라 출동 중 신호위반에 따른 교통사고 위험을 낮추어 주는 장점도 있지만, 이 시스템으로 긴급차량 출동 노선상의 교통신호를 제어하게 되면 그 여파로 일정 시간 동안 주변 교통 흐름에 영향을 주게 되어 일반 차량의 정체나 교차로 꼬리물기가 발생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이 시스템을 모든 긴급출동에 적용하지는 않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나 대형 화재 발생 등의 위급 상황에만 활용하고 있어 그 부작용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겠다.

우선신호 시스템은 긴급자동차의 신속한 출동과 교통사고 확률을 낮추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화려한 효과 뒷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선, 이 시스템을 운영 중인 단일 시‧군 안에서도 시스템이 적용되는 지역과 안되는 지역이 나뉜다. 경기도 수원시 같은 곳에서는 시내 지역별 교통량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전체 구급차 15대 중 단 2대만 우선신호 적용을 받고 있다.

또한, 시군 사이의 우선신호 시스템 연계에도 문제가 있다. 신호 통제 방식이 지자체별로 중앙관제방식, 현장제어방식으로 달라 구급차가 지자체의 경계를 넘으면 우선신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래의 표는 정부 정보공개포털에서 얻은 자료의 분석 결과이다.
 
경기도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 현황
 경기도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 현황
ⓒ 박요순

관련사진보기


위에서 눈여겨봐야 할 수치는 우선신호의 적용을 받는 119구급차의 비율이다. 올해 1월 우선신호 시스템의 정식 운영을 개시한 수원시의 경우를 보면 수원시는 지난해 4억 원의 예산을 들여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범 운영하였다. 수원시는 이 시스템이 포함된 스마트시티 사업으로 '2020년 대한민국 지식혁신 스마트시티 대상'에서 1등상(대상)을 받기도 했는데 시내 어디에서든 응급환자 발생 시 119구급차로 10분 안에 병원에 도착 가능하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2021년 10월 현재 수원시의 구급차 15대 중 우선신호 시스템이 적용되는(단말기가 설치된) 차가 단 2대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러한 홍보가 조금은 무색해진다. 또한 수원시는 119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때만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구급차가 119안전센터에서 환자가 있는 장소로 출동할 때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119구급차만 활용도가 낮은 것이 아니다. 수원시에서 이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 소방차량은 구급차 2대와 소방차 2대를 합해서 단 4대뿐이다.

그러면 이렇게 큰 예산을 들여 설치한 수원시의 우선신호 시스템 활용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선신호 시스템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수원시에서 이 시스템에 새로운 긴급차량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협조을 받아야 하는데 교통체증으로 민원 발생을 우려한 경찰서에서 서비스 확대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수원시와 같이 중앙관제식을 채택한 경우 긴급차량 추가 적용을 위해서는 수십만원 하는 차량 단말기만 설치하면 된다.)

그런데 이는 수원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기도 내 다른 지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에서 우선신호 시스템을 운영 중인 20개 시‧군의 119구급차는 모두 169대인데 이 가운데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 차량은 45%인 76대밖에 되지 않는다. 경기 남부만을 놓고 보면 이 비율이 35%로 더욱 낮아지는데, 이상하게도 북부지역은 76%로 높다. 교차로 수와 교통량의 크기를 비교하면 인구 밀집과 도시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남부지역의 시스템 활용도가 더 높아야 할 텐데 말이다. 

경찰의 반대가 우선신호 시스템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의 다는 아니다. 중앙관제방식을 채택한 수원시와 달리 현장제어방식을 채택한 지자체는 신호등 마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신기를 달아야 해서 그 설치 장소가 한정적이다. 하지만 의정부시와 파주시같은 경우는 수원시와 같은 중앙관제식임에도 모든 구급차에 우선신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특히 중앙관제식을 채용한 수원시 같은) 동일 지자체 안에서 일부의 구급차에만 우선신호 서비스를 적용할 때 어떤 문제가 있을까? 가장 먼저 행정서비스의 차별적 제공에 따른 보편성 결여를 들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수원시만 해도 90%에 가까운 시민들이 이 서비스의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데 수원시의 우선신호 시스템은 소수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상징적 서비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119구급과 같은 공적 긴급 서비스를 합리적 이유 없이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공평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수원시에서처럼 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때만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구급차가 (119안전센터로부터) 환자가 있는 장소로 출동할 때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4대 중증질환자(심정지, 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는 최대한 빨리 현장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이 이루어져야 소생률을 높일 수 있는데 현재 수원시같은 경우는 그 절반의 가능성은 상당 부분 포기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경찰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경찰에서 우선신호 시스템의 확대 적용에 부정적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대로 교통체증으로 인한 '민원 발생'이다. 사실 전국 대부분 도시에서 지능형교통체계(ITS)가 운영 중인 상황에서 긴급자동차가 한번 우선신호를 받고 지나가면 원래의 정상 신호체계로 되돌아가는 데 시간이 걸려 다소간의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9년 전국 국민 5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98.3%가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의 도입에 찬성하고 있고 94.6%는 긴급차량의 골든타임 사수가 일반 차량의 교통혼잡 증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변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이러한 설문 결과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데 다소간의 교통 불편을 감수하지 못할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94.6%는 긴급차량 골든타임 준수가 일반 차량 교통혼잡 증가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2월 24일 김용판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주목된다. 이 법안은 소방대의 신속한 현장 도착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의무를 명시하고 우선신호 시스템 설치에 필요한 경찰청장의 협조 의무와 소방청장의 비용지원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원발의 법률안이 그렇듯이 이 개정법률안도 아직 소관위원회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채 본회의 의결이 요원한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한, 소방청, 경찰청,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도 대국민 홍보 등을 통해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의 전국적인 확산은 물론, (중앙관제식의 경우) 이미 설치되어 있는 시스템의 (긴급차량 추가) 확대 적용에도 시급히 나서야 하겠다. 이 때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며 일부 지자체에서 이 시스템을 운용할 때 119구급차의 현장 출동단계는 빼고 환자 이송단계로만 한정하고 있는 현실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초 지자체별로 우선신호 제어 주체와 방식이 달라 서로 연계가 되지 않는 문제도 해결하여 119구급차를 비롯한 긴급자동차가 시‧군, 시‧도의 경계를 넘어서 출동하더라도 우선신호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전국 단일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재난의 광역 대응을 위한 소방의 국가직화 목적과도 부합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과 시민들도 119구급차로 이송되는 환자가 내 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긴급자동차 우선신호 제공에 따른 다소간의 교통 불편에도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야겠다.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