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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산이 당기는 계절이 있다. 바로 가을이다. 굳이 형형색색의 고운 단풍을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가을 산행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일단 따듯 시원한 바람과 높아진 하늘, 그리고 탁 트인 시야만으로도 가을 산행은 떠나기도 전에 이미 만족스럽다. 마스크 탓에 덜하긴 하지만 폐 속 깊숙이 들이 마시는 쾌청한 공기는 또 어떤지. 숨만 쉬어도 건강지수가 마구 업그레이드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얼마 전 가을 산행을 다녀왔다. 추석 연휴를 몽땅 레저로 쓸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 덕에 삼일에 걸쳐 트라이애슬론 못지않은 운동을 즐겼다.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그리고 등산으로 즐긴 레저 삼종세트.

그런데 그중에 가장 즐거웠던 것이 산행이었다. 알맞은 속도와 거칠지 않은 호흡, 거기에다 살짝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까지 심신이 고루 만족스럽고 안정된 탓에 온몸의 세포들이 즐거운 탄성을 지르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최선을 다해 움직여줘서일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자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극강의 허기가 몰려왔다.

산행 후 몰려오는 극강의 허기
 
여름에는 익은 김치에 손이 가지 않는데, 가을이라 그런지 잘 익은 파김치가 그렇게 맛있습니다.
▲ 잘 익은 파김치 여름에는 익은 김치에 손이 가지 않는데, 가을이라 그런지 잘 익은 파김치가 그렇게 맛있습니다.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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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등산가답게, 산 위에서 에너지를 보충해 줄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 사과 한쪽을 가볍게 먹고 내려오는 길에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은 이제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와 상쾌한 공기로는 달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고픈 배를 이끌고 내려오면서 나는 남편과 함께 집에 가서 먹을 음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쉽게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냉장고에 남아있는 명절 음식이었으나 생각만으로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기름졌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던 중 딱 걸린 메뉴가 있었으니 얼마 전, 엄마가 담가준 파김치. 그 알맞게 익은 파김치가 떠오른 것이었다. 빙고! 이제는 파김치에 알맞은 메뉴를 생각하면 된다!

급격한 에너지 소모 탓이었을까. 파김치에 어울리는 탄수화물 군으로 여러 가지가 후보에 올랐으나 남편과 나는 오래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파김치에 어울릴 메뉴로 짜장라면을 낙점했다. 파김치는 원래 유명한 3대 밥도둑이 아니던가.

밥도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탄수화물과 폭탄 흡입을 해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짜장라면은 이에 완벽한 조합이었다. 우리는 산을 내려가는 길에 조그만 가게에 들러 5개입을 샀다. 두 아이들이 이제 막 일어났을 무렵(휴일 점심)이니 식사도 해결할 겸 5개를 모두 끓이기로 했다.

먼저, 집에 있는 가장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전 다섯 봉의 짜장라면을 먼저 개봉하여 면은 면대로 모아놓고, 건더기와 스프도 봉지 윗부분을 잘라놓았다. 다섯 개의 면이 고루 고루 함께 익으려면 '동시 투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망설여졌다. 봉지 안에 들어있는 올리브유 대신 집에 남아있는 트러플오일을 사용해볼까? 예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화사가 선보인 '고오급 짜장라면' 버전처럼 말이다. 이 문제로 상당히 깊게 고민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번 식사의 주인공은 파김치가 아니던가. 파김치와 어울리는 조합 만이 의미를 가질 터였다. 나는 과감히 트러플오일을 포기하고 오리지널 레시피를 선택했다.

파김치와 짜장라면, 그 환상의 조합
 
파김치와 짜장라면, 그 환상의 조합
 파김치와 짜장라면, 그 환상의 조합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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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물이 끓고, 다섯 개의 동그란 면을 넣었다. 정확하게 4분 30초를 팔팔 끓여물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관문. 다섯 개의 면을 골고루 저어가며 정확한 시간이 지난 후에 물을 버려야 하는데, 여기서 네 명의 식구들의 의견이 두 파로 정확하게 갈렸다. 나와 둘째는 촉촉한 짜장라면파, 남편과 첫째는 찐득한 짜장라면파. 하지만 인스턴트에 남편과 첫째만큼 진심이 아닌 관계로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냄비의 물을 버렸다.

그 다음, 신속하게 짜장 가루를 넣어 약한 불에 끓여주며 골고루 면과 가루가 혼연일체가 되도록 섞고, 올리브유로 마무리하면 끝. 찐득하게 끓였기 때문에 재빨리 냄비째로 식탁으로 직행했다. 내가 면에 집중하는 동안 계란에 집중한 남편의 계란 프라이는 완벽한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의 해사한 얼굴로 대기중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이 합격이다.

우리는 각자의 접시에 짜장라면을 수북하게 담고 그다음엔 각자의 취향대로 먹었다. 치즈 파인 다른 식구들과 달리 나는 계란 파. 나는 먼저 면 위에 살포시 얹어진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살짝 터트리고 잘 익은 파김치 두어 개를 한 젓가락에 집어 노랗게 물든 짜장라면을 휘감아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에서 퍼지는 파김치와 계란 노른자의 고소함, 그리고 감칠한 맛의 조합은 이 미천한 글 솜씨로는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우리는 내친김에 매주 가을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등산 후에는 꼭 이렇게 짜장라면과 파김치를 먹자고 의기투합했음은 물론. 산행 후에는 무엇이든 꿀맛이겠지만 올 가을 내 군침을 돌게 하는 가을 음식으로는 이 파김치만 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짜장라면이 물리면 어떡하냐고? 아무렴 어떠리. 라면이어도 상관없다. 파김치가 유산균을 '토도톡' 뿜으며 냉장고에 건재하는 한,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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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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