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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여성에게 더 가혹한 폭염과 재난, 그 이유 http://omn.kr/1ul8j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라고 쓴 청소년 기후활동가의 피켓이 생각난다. 자연사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니. 비단 인간-청소년의 호소만은 아니어서 더욱 암담하다.

가공식품과 세제 등에 손쉽게 사용되는 팜 오일을 생산하기 위해 불태운 말레이시아 숲의 오랑우탄도,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배를 부둥켜안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알바트로스 새도, 전세계 공장식 축산업이 건강 신화로 떠받드는 육식 밥상을 위해 자연수명 10년보다 훨씬 짧은 6개월만을 살다 가는 닭에게도 자연사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지구 생명의 멸종위기 앞에서 모두 자연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가 문제지만 해법이 탄소가 아닌 것이 자명하다. 규모는 그대로 둔 채 내연기관 자동차를 수소전기차로 바꾼다고, 생산과 소비의 에너지 원천을 화석연료에서 재생 에너지로 바꾼다고 이 위기가 해결되진 않는다.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끝없는 성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막기 위해 2030년 탄소 배출 45% 감축이라는 당장의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는 과학적·기술적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사회 정의와 평등의 심오한 의미를 지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현상이다. 재난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삶이 무너지는 속도를 가속한다. 연령, 지역, 계급, 직업, 성별, 성정체성, 장애 유무 등 사회적 취약성에 따라 일상이 파괴되었을 때 고통의 무게와 회복의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건강영향과 사망률은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가 있거나 아픈 사람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북반구 국가의 도시 생활자보다 남반구 지역에서 농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야외작업 노동자, 노숙자가 기후위기 피해를 더 크게 입는다. 그리고 모든 인간보다 비인간 생명에게 더 치명적이다.

기후재난은 전지구적 규모로 발생하지만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과개발, 악개발의 책임과 위기의 결과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페미니스트 그린뉴딜 어젠다 핵심은 젠더 교차성

페미니스트들은 기후변화가 성별 차이, 젠더 모순과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과 규모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그린뉴딜 의제를 크로스-커팅(cross-cutting) 방식으로 접근하고, 페미니스트 원칙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201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정상회의를 계기로 여성그룹은 페미니스트 그린뉴딜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이들이 선언한 페미니스트 그린뉴딜의 10대 원칙에는 가부장제와 인종차별에 제도적으로 맞서고, 착취적이고 지속불가능한 생산 패턴에 시스템적으로 저항하며, 민주적으로 통제되며 지역사회에 기반한 공동체 주도의 대안을 만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재생산권과 정의를 발전시키며 체계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대안을 중심으로 재생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여성환경연대(Women's Environmental Network)와 여성예산그룹(Women's Budget Group)은 주류 경제학에서 사회기반시설을 논할 때 진짜 핵심인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간과되었다는 점을 통찰한다. 주류 경제학은 도로, 건설, 항만이나 항공, 생산시설 투자 등 거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간시설을 통해 어떻게 경제를 더 잘 성장시킬지 강조한다. 하지만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사회 기반시설은 돌봄경제와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성장이 아니라 돌봄사회로 전환이 기후위기 해법


경제-남성 중심의 해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성장이 아닌 돌봄사회 전환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의 목표가 경제성장이나 발전이 아니라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노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돌봄'은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자,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갖추어야 할 사회적 역량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생명 사이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와 지구에 대한 염려가 상품생산을 통한 GDP 증가나 이익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협력적인 상호지원 네트워크에 중점을 두고 모든 이의 돌봄 요구에 따라 사회적. 물질적 부를 재분배하는 경제구조가 필요하다.

기후정의는 젠더 정의를 요구한다. 여성의 노동을 자연, 제3세계와 함께 저평가 저가치화하고 무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젠더 정의가 실현되어야 탄소집약적인 상품경제 시스템을 바꾸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우선은 현재 사회적 취약성으로 야기되는 기후 영향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등 전염병과 개발 피해가 집중되는 집단에 대한 실태 파악과 통계를 생산하고, 여성의 재난역량 강화와 포스트 코로나 기획에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남성이 임금노동자로만이 아닌 돌봄 노동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재산이나 임금으로 세금을 내는 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돌보는 자'로서의 시민으로 시민권을 재정의, 재구성하고, 국가 재정을 생태계와 생명을 돌보는 노동에 투자하도록 요구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타인과 자신과 지구를 돌볼 시간은 전혀 내지 못하면서 오로지 상품생산 노동에 하루를 다 바치는 8시간 근무제는 전업주부 여성의 존재를 전제로 한 남성-생계부양자 노동자 모델이다. 상호돌봄과 돌봄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제도 마련과 동시에 전 사회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구체적인 기본소득제 논의가 필요하다.

태그:#여성환경연대, #기후정의, #젠더정의,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스트그린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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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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