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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맛집도 리뷰를 보고 찾는 시대, 21세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는 이들을 위해 '오마이뉴스 대선주자 리뷰' 약칭 '오대리'가 출동합니다. 슬기로운 투표권 행사에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편집자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김두관 의원. 바탕은 더불어민주당 전용 색상 가운데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김두관 의원. 바탕은 더불어민주당 전용 색상 가운데 하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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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남해 출생. 가난한 집안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국민대학교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로 진학을 포기했고, 이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1986년에는 직선제개헌쟁취를 위한 집회를 주도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귀향 후 남해 농민회를 조직했고,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남해군-하동군 선거의 민중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낮은 득표율로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신망을 쌓았다.

그는 <남해신문>을 직접 창간하고 운영했는데, 이 신문은 '군민주'형식으로 만들었기에 관공서 광고나 지역 토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덕분에 군민 절반 이상이 구독하는 등 남해군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95년 만36세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었고,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참여정부에서 그는 정권의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국회의원,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하여 번번이 낙선했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3수 끝에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을 반대하고 무상급식을 통과시키는 등 PK의 진보층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그가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며 2년 남은 경남도지사직을 내려놓으면서부터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압승이 예상되었던 만큼, 그의 사퇴는 무리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으며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PK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이후 그는 뜬금없이 PK가 아닌 수도권 김포에서 정치적 재기를 노렸고 한 번의 낙선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김포 갑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21대 총선에서 PK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PK로 다시 보냈고, 그는 지난 2020년 4월 총선에서 양산 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정치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왼쪽),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리허설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왼쪽),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리허설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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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후보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역'이다. 대학 졸업 후 귀향해 정치를 시작했을 만큼 그는 그 누구보다도 서울, 수도권 중심의 사회 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계승할 만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두관 후보는 정치권에서 국민이 그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도나 인지도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비수도권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지방분권과 지역 정치를 중시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지금까지 걸어온 궤적 그 자체이다. 그는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로, 누구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차승원, 유해진 주연의 영화 <이장과 군수>가 그를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가 현장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정책이 엘리트 공무원의 탁상행정에서부터 비롯되는 바, 낭비되고 있는 인력과 예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두관 후보는 실무경험과 이론, 관리 경험을 모두 갖춘 이로서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 무모하고 무책임한 이미지
 
자가격리중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대선 경선 후보가 8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화상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자가격리중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대선 경선 후보가 8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화상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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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민주당의 대표적인 대선 주자감이었던 김두관 후보가 현재 지지율 1%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2012년 대선 당시 내던졌던 경남도지사직과 관계가 깊다.

당시 김두관 후보의 사퇴는 많은 사람들을 격분케 했다. PK 공략이 절실한 민주당에게 있어 경남도시자라는 직위는 그냥 도지사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두관 후보는 이를 내던졌고,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덕분에 당시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PK의 진보층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김두관 후보의 무모함과 무책임은 더욱 문제시 되었다. 게다가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은 누구나 문재인 후보가 최종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김 후보의 정무적 감각 자체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김포시 국회의원 출마 역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남도지사 사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PK에서 활동하면서 주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텐데, 뜬금없이 김포에서 정치적 재기를 하려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을 택한 것이 아닌지, 자리에 연연하는 정치인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경남 양산 을'로 돌아간 그는 과연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관전포인트]

▲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선을 완주할 것인가? 완주한다면 무엇을 위한 것일까?
▲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민주당의 최종 후보가 자신의 공약으로 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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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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