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탈시설만이 시설 장애인들이 가야 하는 올바른 길일까? 필자는 악센펠트증후군으로 시력을 모두 상실하고 치아도 손상이 심해 거의 모든 치아를 의치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심장판막증으로 이식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현재도 통원 치료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청력도 상당부분 상실 하여 보청기가 아니고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여의찮다.

거기다 내 아들은 심한 지적 장애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기가 곤란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력과 청력을(청력은 완전히 상실하고 시력은 그래도 잔존 시력이 조금 남아 있다) 상실한 녀석은 심장판막증으로 판막이식수술을 받아야 함에도 지적 장애 특성상 그냥 하루하루를 두 손 모은 간절한 기도로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함께 지닌 사람을 중복장애인이라고 한다. 내 아들은 헬렌 켈러보다 더 한 중복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힘겹게 근근이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현실 나이는 35살이지만, 그의 정신적 나이는 3.5세에 불과하다. 우리 부부는 그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맹학교에도 보냈고 지적장애학교에도 보냈으며, 개인교습도 시켜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최선을 다해 모두 찾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어떤 가능성의 빛도 보여주질 않았다. 그렇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어 현재의 시설에 입소시키기까지 수많은 눈물과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내 아들과 같은 시각 중복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모여 가톨릭장애인부모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활하며 평생을 보낼 시설을 만들기 위해 10여 년이 넘은 세월 동안 각종 모금 운동을 벌였다. 자선음악회도 개최했고 시설 건립 자금 마련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편치 않은 노구를 이끌고 자선음악회에 참석하시어 끝까지 함께 하시며 우리들의 희망을 성원하셨다.

그렇게 알뜰히 모은 돈으로 마침내 우리는 20여 년 전 땅값이 비교적 저렴한 시골 땅을 매입하게 되었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에 기부채납하여 지금의 시설을 건립하기에 이르렀었다. 각별한 수녀님들의 노력과 생활교사 선생님들의 사랑으로 20여 년 동안, 우리 아이들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다.

부모도 이웃도 통제하기 어렵다

1년에 두 번, 방학에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행복한 가정생활을 맛보았고 명절과 아이들 생일에는 부모들이 시설을 방문하여 행복한 한때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최근 '탈시설'이란 낯선, 그리고 거센 물결이 우리에게 몰아닥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도, 이웃도, 통제하기 어렵다.

내 아들도 이전에 방학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잠시 제 고모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워낙 고모를 좋아하고 잘 따랐기에 몇 시간 정도는 고모와 잘 지내겠지 그다지 염려하지 않고 딸려 보냈었다. 그런데 고모 집에 간 후 1시간도 안 돼 얼이 빠진 듯한 내 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좀 와보세요."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놀라 달려간 우리는 목전에 벌어진 아찔한 사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제 고모가 조카에게 줄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주방으로 간 사이, 아들 녀석이 그만 9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원목 의자를 던져버린 것이다. 녀석은 잠시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것처럼 평온한데 떨어진 의자는 아파트 뒤꼍 잔디밭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만약, 그 떨어진 의자가 지나가는 사람 위로 떨어졌더라면, 아니 주차장으로 떨어져 차량 위에라도 떨어졌더라면. 아찔한 한숨이 순간적인 공포로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아무리 혼내고 뭐라 해봤자 녀석은 전혀 그 심각성을 모른다. 집에서도 자주 가구나 컴퓨터 등을 던지며 제 여동생과 엄마를 위협했던 녀석이라 그저 재미있는 놀이를 한 듯 싱글싱글 웃을 뿐이다.

내 나이 환갑이 지나고 녀석의 나이도 서른다섯 중년을 지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발작성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집을 뛰쳐나가 주변 상가의 물건을 그냥 가져오기도 한다. 아내가 녀석을 차에 태우고 시설로 향하려 해도 녀석은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주방의 살림인 칼이나 가위로 제 엄마를 찌르고 이빨로 물기도 한다. 이제 힘으로도 녀석을 제어할 수 없는 우리는 방학이 돌아와 녀석이 집에 올 때면, 심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나마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시설에서만 지낸다. 전문적인 선생님들과 수녀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상은 카톡을 통해 시시각각 사진으로 우리 부모들에게 전송돼 온다.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화가 과연 가능할까

시설 폐쇄를 법제화하자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공론장에 오르고 있다. 탈시설화를 염려하는 우리에게 혹자는 말한다. 아이들의 생활을 도와줄 활동 지원 시간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런 아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전문 교육을 받은 활동지원인이 그리 쉽게 연결되겠는가. 필자의 집 주변에도 심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 가정이 여럿 살고 있다. 하나같이 활동지원인은 구할 수도 없고 부모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감당해낼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우리 아이를 보낼 시설이 어디 없겠냐고 물어오곤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줄 활동지원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신체의 위해도 각오해야하고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띄면 안되는 이 고된 일을 해주실 활동지원사가 과연 우리 주변에 있기나 할는지. 탈시설은 혼자나 몇몇이 함께 생활할 지적 능력이 가능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우리 장애인들은 자기 장애 분야가 아니면 타 장애 영역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는 듯하다. 전에 부산 어느 공원에 놀러 나왔던 아기를 지적 장애인이 공원 아래로 던져 사망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 지적장애인이 아무 데나 활보하고 다니게 두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발달장애인학교를 하나 건립하는 데도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시위를 이겨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화가 과연 가능이나할까. <학교 가는길>에서 장애인학교 건립에 한사코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제발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달라며 무릎 꿇어 절규했던 부모들의 눈물이 아직도 가슴에 아린 여운을 남기는데.

섣부른 탈시설화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은 항상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늦게 죽는 것'이 소원이다. 나이가 들어 차마 성장해가는 발달장애 자식을 감당할 수 없어 자식을 먼저 죽이고 뒤따라간 부모의 피눈물 어린 절규를 부디 기억해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까페에도 게재될 예정임


태그:#발달장애인, #탈시설, #악센펠트증후군, #짓적장애, #시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