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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거리가 큰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관우상도 조성되었다.
▲ 삼국지 거리에 조성되어 있는 관우상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거리가 큰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관우상도 조성되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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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에서 언덕을 따라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내려가면 이 동네를 관광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그 유명한 삼국지 벽화거리가 이어진다. 중국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지만 유비, 관우, 장비의 뜨거운 우정, 제갈량의 신출귀몰함, 계속해서 재평가되는 조조의 매력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에서 큰 사랑을 받는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나도 삼국지를 시작으로 역사 여행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새삼 감회가 남다르다. 삼국지 벽화거리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을 화교학교의 벽면을 따라 새겨놓았으며 중간 중간에는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을 훑어볼 수 있는 곳
 
화교학교 벽면을 따라 조성된 삼국지 거리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을 그려 놓았다. 삼국지팬이라면 꼭 방문해 볼 만하다.
▲ 화교학교벽면을 따라 조성된 삼국지 거리 화교학교 벽면을 따라 조성된 삼국지 거리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을 그려 놓았다. 삼국지팬이라면 꼭 방문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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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삼국지를 주제로 한 대륙횡단도 수차례 했었고, 책과 드라마, 영화까지 섭렸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웬만한 내용이 거의 담겨 있다. 특히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등 주요 장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비교적 짧은 시간 내 방대한 삼국지를 전부 읽은 듯하다. 

이 거리가 꽤 인기가 높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벽화거리에 한쪽 벽면에 새롭게 공간을 파서 관우상과 포토존을 만들었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삼국지 거리에서 언덕을 한번 넘으면 초한지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삼국지 거리 못지않게 내용도 풍부하고 벽화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말라카에 갔을 때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압축적으로 다룬 벽화가 정말 인상 깊었는데 경주나 부여, 공주의 한옥거리에 그런 벽화가 생기면 어떨까 싶었다.

차이나타운에는 그 밖에도 태화원 부근에 잠시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중국식 정원 한중원과 중국과 화교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한중문화원도 있으니 함께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 다시 일본인 구역과 중국인 거리의 경계구역으로 한번 이동해 보기로 하자.   
 
차이나타운과 일본인거리를 가르는 경계 계단은 큰 볼거리는 없지만 많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국 조계지의 경계에 면한 석등의 양식이 중국, 일본 풍으로 다르다고 한다.
▲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차이나타운과 일본인거리를 가르는 경계 계단은 큰 볼거리는 없지만 많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국 조계지의 경계에 면한 석등의 양식이 중국, 일본 풍으로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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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도 얼핏 평범한 계단처럼 보이는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1883년 이 계단의 오른편에 일본 조계가 설정되었고 1884년에는 왼편으로 청국 조계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경계가 된 곳이다.

계단의 단마다 중간을 기준으로 중국식과 일본식 석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계단의 끝까지 올라간다면 공자 석상을 만날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입장으론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었겠지만 현재는 인천의 남다른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계단을 경계로 거짓말처럼 중국식 건물의 숲에서 일본식 가옥들로 양식이 극적으로 변한다. 다만 차이나타운과 차이점을 살펴볼 때 중국인들의 후손인 화교들이 계속해서 생활을 영위한다면 일본 조계지 거리는 광복 후 일본인이 전부 떠나고 최근에 들어와서 레트로 붐을 타고 힙한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던 은행, 관공서 등은 현재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변모했기에 근현대를 주제로 답사를 떠나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고 본다. 일본 조계 거리의 초입으로 가면 3층 규모의 서양식 건물을 먼저 눈여겨보게 되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다.    

일본 해운업자가 세운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사실 최초의 호텔 하면 서울의 손탁호텔이 먼저 떠올랐기에 이름이 조금 낯설긴 하다. 특히 손탁호텔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최초로 커피 판매가 시작되었고, 손탁호텔을 운영했던 손탁이란 사람 자체가 대한제국 황실 인사와 깊게 연관되었기에 이 호텔을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1902년 세워진 손탁호텔에 앞서 1888년 인천에 들어선 대불호텔은 경인선이 들어서기 전까지 인천항에 입국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이어갔었다고 한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현재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당시에는 나귀를 타고 한나절이 걸렸기에 인천항에 하룻밤을 묵는 수요가 꽤나 있었다.     

일본 해운업자가 세운 대불호텔은 서양식으로 설계된 벽돌 건물이었고, 침대가 딸린 객실 11개와 다다미 방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대불호텔은 새롭게 복원된 건물이다. 처음에 꽤 인기가 있었던 호텔이었지만 경인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수요는 점점 줄게 되었고, 결국 1918년 중국인에게 인수되어 중국음식점 '중화루'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1978년 건물이 헐렸고, 주차장으로 최근까지 쓰였다.

최근에 흑백사진 2장을 통해 대불호텔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적극적으로 복원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갖은 논란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현재는 중구 생활사 전시관으로 대불호텔과 그 옆의 건물을 함께 쓰고 있다. 박물관의 다양한 테마를 통해 근, 현대 인천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대불호텔로 들어가면 수많은 사진 자료와 관련 유물들이 있는 전시관을 둘러보게 된다. 특히 숙박요금에 관련된 설명이 인상적이었는데 1890년 당시 객실료는 상등실이 2원 50전, 일반실 2원으로 다른 여관에 비해 높았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 하루 임금이 23전이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5성급 호텔 못지않은 비용이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호텔 다음에 들어왔던 중화요릿집 중화루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1918년 처음으로 호텔 자리에 들어온 중화루는 북경요리 전문점으로서 인천의 3대 중국집으로 인천을 넘어 서울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인해 1978년 신포시장 쪽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빈자리로 남게 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새롭게 복원한 것이지만 전시관의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서 바닥의 유구를 두루 관찰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벽돌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때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호텔 폐업이후로 중국집을 거쳐 최근까지 주차장 부지로 텅 비어있었지만 최근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대불호텔의 내부는 전시관은 물론 예전 숙박시설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의 내부 호텔 폐업이후로 중국집을 거쳐 최근까지 주차장 부지로 텅 비어있었지만 최근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대불호텔의 내부는 전시관은 물론 예전 숙박시설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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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면 숙박 시설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인천 내 여관 및 서양식 호텔과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호텔이 들어오기 전에는 태평관, 모화관 등 사신이 머물던 '관'과 보제원, 홍제원, 이태원 등 공무 여행자들의 숙박 시설인 '원', 상인들의 숙박 시설인 '객주'와 '여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개항을 통해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일본식 여관과 서양식 호텔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호텔을 단순하게 잠자리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문명 교류에 있어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었다. 
 
대불호텔에 면해있는 인천 생활사 전시관에는 예전 60, 70년대 인천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 인천 생활사 전시관에 재현되어 있는 그 당시 가정집의 모습 대불호텔에 면해있는 인천 생활사 전시관에는 예전 60, 70년대 인천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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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의 생활사 전시관도 60, 70년대 인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주는 공간이니 인천여행을 위해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인천 중구, 동구 일대의 답사는 계속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경기별곡의 첫번째 시리즈가 책으로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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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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