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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어머니는 뻐꾸기가 울 때마다, '낳을 줄만 알고, 기를 줄을 모르는 불쌍한 새'라고 하셨다. 뻐꾹뻐국 들리지만 서러워서 뻐꾹딸꾹 운다고 하셨다.

내가 사는 호명산 아래 잠곡마을에도 뻐꾸기가 산다. 봄 내내 뻐꾸기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울지 않는 걸 보면 이 둘레에는 한 쌍만 사는 모양이다. 뻐꾹뻐꾹은 수컷이 내는 소리다.

온종일 키 큰 소나무와 낙엽송 꼭대기를 오고 가며 울어댔다. 결코 낮지 않은 볼륨이라 달디 단 아침잠을 설치지만 자연이 내는 소리는 인공소음과 확연히 다른 생명력을 담고 있다.

"어딘가에 탁란을 했을 텐데."

뻐꾸기가 울 때마다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한 달쯤 전부터 뻐꾸기 소리가 딱 멈췄다. 탁란한 새끼가 다 자라서 날아간 모양이라 여겼다.

그런데 앞집에 주인이 와서는, "딱새 집인데 집보다 더 큰 새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얼마 전에 손을 넣어 만져보니 알이 네 개 있었단다. 보는 순간 딱 알았다.

"뻐꾸기네요."

나도 처음 보는 탁란 장면이다. 요 며칠 집 둘레에서 나는 삐삐삐삐 소리도 정체를 알겠다. 뻐꾸기 암컷이다.
 
탁란으로 태어난 뻐꾸기
▲ 딱새 둥지에 탁란으로 태어난 뻐꾸기 탁란으로 태어난 뻐꾸기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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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새 둥지라고요, 좁은 공간에 둥지를 트는 딱새 집엔 탁란을 못 할 텐데?"

앞집에 1층이 찜질방인 정자 기둥 위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보통 새는 사람 손이 닿는 자리엔 집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딱새는 사람이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사람 손이 닿을 자리에도 집을 짓는 강심장이다.

집주인이 기둥 위를 가리켰지만 기둥 아래부터 살폈다. 딱새나 박새 같은 작은 새 둥지에서 깨어난 뻐꾸기는 다른 알이나 갓 깬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려 버린다.

기둥 아래 시멘트 바닥이 깨끗하다. 알을 밀어냈다면 깨진 흔적이 있었을 텐데, 이미 알에서 나온 딱새 새끼를 밀쳐낸 모양이다. 길고양이 잔치가 벌어졌겠다.

의자를 놓고 선 나와 눈을 맞춘 뻐꾸기. 입을 쩍 벌린다. 딱새가 감당하기에는 역시나 너무 크다. 딱새 몇 마리도 넉넉할 공간인데 몸을 둥지 안에 모두 추슬러 넣지도 못한다.

그 와중에 딱새 암수는 먹이를 물어다 나른다. 제 덩치보다 몇 배로 큰데도 자기 자식이라 여기고 먹이느라 분주하다. 암컷 뻐꾸기는 삐삐삐삐 울며 집 둘레를 날아다닌다.
 
딱새는 우편함을 좋아한다
▲ 우편함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딱새 딱새는 우편함을 좋아한다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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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에게 가장 입지 조건이 좋은 사람 물건은 우편함이다. 실내공간이 넓지도 좁지도 않고, 양쪽으로 뚫린 구멍이 드나들기에 무리가 없다. 한 구멍으로 들어가고 한 구멍으로 나오는 용도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천적과 탁란 방지에도 마침 맞다. 이 이 마을에도 올 봄에 딱새에게 우편함을 빼앗긴 집이 여럿 있다.

그런데 의자 하나만 놓으면 사람손이 닿는, 그것도 앞과 양옆이 모두 트인 공간에 둥지를 튼 딱새도 참 눈썰미가 없다. 냉큼 탁란을 한 뻐꾸기도 참 대단하다. 일주일에 이틀만 인기척이 있는 집이니 사람 없는 평일에 온 모양이다.

삐삐삐삐 소리를 내며 집 둘레를 빙빙 도는 뻐꾸기를 향해, "저 파렴치한 새 같으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새끼 낳아 기르는 재미를 빼앗겼을까요?". 제 자식 안아보는 정도 못 느끼고, 맛있는 벌레를 잡아도 자식 입에 넣어주는 즐거움도 모르는 새라던, 그 옛날 어머니 말씀을 떠올렸다.

"제 자식도 아닌데 걷어 먹이느라 허리가 휘는 딱새는 무슨 죄야". 누구는 딱새도 전생에 업을 저렇게 갚는 중이라는 운명론으로 안타까워도 했다.
 
딱새가 위에 집을 지은 기둥
▲ 딱새가 위에 깃든 기둥 딱새가 위에 집을 지은 기둥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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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인 사람 모두 저 뻐꾸기가 무사히 자라서 자연 속으로 날아가 뻐꾹뻐꾹 울어주기를 바라는 한 마음이다. 우편함을 딱새가 점령했을 때도, 돌 벽 틈에 노랑할미새가 깃들었을 때도, 까투리가 꺼병이 떼를 이끌고 마을길을 활보했을 때에도 그랬듯이.

덩치로 보아 이번 주에 둥지를 떠날 게 분명하다. 토요일까진 사람이 없을 테니 무사히 날아가겠지. 내년 봄에는 뻐꾸기 소리가 서러운 뻐꾹딸꾹이 아니라 잠곡마을 주민으로서 친근하고 정겹게 뻐꾹친꾹으로 들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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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화도 쓰고, 시, 동시도 쓰고, 역사책도 씁니다. 낮고, 작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곁에 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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