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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중국이 벌벌 떠는 탈레반의 기막힌 실체'에서 이어집니다)

탈레반이 의존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중국과 우호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 탈레반의 신장지역 접근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볼 때 위구르 무슬림 해방에 탈레반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위구르 이슈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아래 ETIM)'을 살펴보자. 과연 외부의 조력으로 위구르 무슬림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조직인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ETIM은 위구르족 임시정부나 다름없는 '세계 위구르 대회(WUC)'보다 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위구르 무장투쟁 그룹이다. 하지만 중국은 물론이고 각국의 안보전문가들까지 호들갑을 떠는 이 단체가 실제로는 이름만 존재하는 유명무실한 존재라면 어떨까.
 
탈레반이나 다에쉬(IS) 같은 극단주의 세력의 깃발과 동일하게 무슬림의 신앙고백 "라 일라 일랄라 무함마드 라스룰라(알라 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니라)"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아래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상징하는 녹색 배경의 흰색 달과 별(ay-yulduz) 문양이 있다. 하지만 이런 문구와 상징들은 세계 도처의 이슬람 국가에서 흔히 사용되므로 깃발 자체에는 극단주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의 깃발  탈레반이나 다에쉬(IS) 같은 극단주의 세력의 깃발과 동일하게 무슬림의 신앙고백 "라 일라 일랄라 무함마드 라스룰라(알라 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니라)"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아래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상징하는 녹색 배경의 흰색 달과 별(ay-yulduz) 문양이 있다. 하지만 이런 문구와 상징들은 세계 도처의 이슬람 국가에서 흔히 사용되므로 깃발 자체에는 극단주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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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2001년 이래 그들에 합류한 외부 무장단체를 미군에 맞선 '총알받이'로 희생시켜 왔다. 탈레반은 현재도 파쉬툰 최상부가 우즈벡, 타직, 투르크멘 등의 하부 조직원들을 지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최근 아프간 북부에서 정부군에 맞서는 탈레반 전사들 역시 대부분 파쉬툰이 아닌 우즈벡과 타직인들이다.

따라서 미군과의 전투에서 가장 먼저 죽음에 내몰린 이들은 한때 중앙아에서 맹위를 떨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아래 IMU) 대원들이었다. IMU는 1991년 나망간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의(Adolat)'라는 원리주의 정치운동이 그 시발점이다. 하지만 우즈벡 정부의 극심한 탄압에 의해, 92년부터 타지키스탄으로 도피해 타지키스탄 내전(1992-1997)에 참전하면서 이내 IMU라는 군사조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내전이 끝나고 갈 곳이 없어진 IMU 전사들은 결국 어엿한 샤리아 국가를 건설한 아프간 탈레반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IMU의 창립자인 타히르 욜다쉬는 1991년 12월 나망간을 방문한 이슬람 카리모프에게 우즈베키스탄을 공화국올 독립적인 이슬람 국가로 선포하기를 요구하며 (O'zbekiston jumhuriyatini mustaqil islomiy davlat deb tan olinishi kerak) 종교인을 의회에 배석하고 국교를 이슬람으로 정할 것을 공식 주문한다. 처음에 카리모프는 이를 승낙하고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이후 마음을 바꿔 타히르 욜다쉬와 그 추종자들을 탄압했다.
▲ 1991년 겨울 나망간에서 만난 타히르 욜다쉬(좌)와 이슬람 카리모프(우) IMU의 창립자인 타히르 욜다쉬는 1991년 12월 나망간을 방문한 이슬람 카리모프에게 우즈베키스탄을 공화국올 독립적인 이슬람 국가로 선포하기를 요구하며 (O"zbekiston jumhuriyatini mustaqil islomiy davlat deb tan olinishi kerak) 종교인을 의회에 배석하고 국교를 이슬람으로 정할 것을 공식 주문한다. 처음에 카리모프는 이를 승낙하고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이후 마음을 바꿔 타히르 욜다쉬와 그 추종자들을 탄압했다.
ⓒ 송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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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은 지 채 2년도 안 되어 미군의 공격이 시작됐고, IMU 전사들은 비등한 화력의 중앙아 정부군 대신 최정예 미군과 대결해야 했다. 결국 IMU의 총사령관 타히르 욜다쉬는 2009년, 부사령관관이었던 주마 나망가니는 그보다 앞선 2001년 각각 전사했다. 이후 IMU는 타히르 욜다쉬의 아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2010년까지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다 최근에는 이마라티 탈레반 조직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한때 약 2500명에 달하던 IMU 우즈벡 전사들은 20년간 이어진 전투로 인해 대다수가 사망하거나 탈주하면서 그 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지금은 IMU의 활동에 관한 변변한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실제 아프간 북부에 사는 우즈벡인들은 IMU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라고 말하고 있다.

IMU, 중앙아 최강의 투르크계 무장단체였지만... 

 IMU의 설립목표는 카리모프의 세속주의 우즈벡 정권을 타파하고 페르가나 계곡을 거점으로 한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IMU의 정치적 이상은 91년 타히르 욜다쉬의 나망간시청사 연설에서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초기 IMU 부대원들은 낙후된 경제와 종교적 탄압에 불만을 품은 페르가나 출신의 무슬림 청년들이 많았다. 하지만 IMU의 근거지가 점차 아프간 동남부로 밀려남에 따라 새로 충원되는 인원들은 아프간 출신의 우즈벡과 투르크멘이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는 중세 이후부터 '남 투르키스탄'으로 불리며 우즈벡과 투르크멘인이 다수를 점해 왔다. 따라서 북부를 지키는 최고사령관 역시 우즈벡계로 알려진 도스툼 장군이다. 현재도 탈레반에 맞서 북부의 주요거점을 지키는 군대는 터키의 후방지원을 받는 도스툼 장군의 사병들이다.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 도스툼 원수  아프가니스탄 북부는 중세 이후부터 "남 투르키스탄"으로 불리며 우즈벡과 투르크멘인이 다수를 점해 왔다. 따라서 북부를 지키는 최고사령관 역시 우즈벡계로 알려진 도스툼 장군이다. 현재도 탈레반에 맞서 북부의 주요거점을 지키는 군대는 터키의 후방지원을 받는 도스툼 장군의 사병들이다.
ⓒ 도스툼 장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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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IMU의 새 구성원들은 기존 멤버들처럼 우즈베키스탄 귀향의 열망이 없었고, 그저 고향인 아프간 북부를 탈환해 96년의 이슬람 정권을 복원하길 희망했다. 그렇게 IMU는 그 존재적 정체성('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을 잃고 이마라티 탈레반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1999년 키르기즈 남부를 장악하며 큰 위세를 떨친 IMU가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IMU에 명함도 못 내미는 군소단체였던 ETIM은 온전할 수 있을까? 실제 2020년 미 국무부는 ETIM을 '해외 테러 단체(FTO)' 명단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재 중국 외교부가 주장하는 ETIM 전사들의 수는 무려 5-6천을 헤아린다. 이는 IMU의 전성기 시절(1996~2001) 전투원의 두 배에 달하는 큰 규모다.

ETIM, 땅에 꺼졌나 하늘에 솟았나? 

하지만 필자가 아프간 각지에 거주하는 십수 명의 우즈벡인들에게 ETIM의 존재를 물어도 누구 하나 그런 이름을 들어봤다고 답하는 이가 없었다. IMU의 조직원 대부분이 우즈벡인이었던 것처럼 ETIM도 위구르인을 모집해야 하는데 아프간에는 위구르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이는 가늘고 긴 통로가 아프간과 중국 사이의 국경이다. 파미르의 험준한 와한 계곡에 걸쳐 있는 이곳은 5-6천미터에 달하는 설산에 둘러싸여 숨쉬기조차 벅찬 곳이다. 최근 실종된 산악인 김홍빈 씨의 추락장소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다.
▲ 아프가니스탄(지도 왼쪽)과 중국(지도 오른쪽) 국경지대  지도에서 보이는 가늘고 긴 통로가 아프간과 중국 사이의 국경이다. 파미르의 험준한 와한 계곡에 걸쳐 있는 이곳은 5-6천미터에 달하는 설산에 둘러싸여 숨쉬기조차 벅찬 곳이다. 최근 실종된 산악인 김홍빈 씨의 추락장소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다.
ⓒ 지도)위키피디아 사진) 송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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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IM이 탈레반의 후원을 받는다면 그 조직원을 수혈하기 위해 1편에도 잠시 언급한 중-아프간 국경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2001년 아프간 침공 이래 국경을 폐쇄했고 누구도 오가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2006년 아프간에서 붙잡혀 관타나모에 수용된 위구르인들 역시 초기엔 ETIM 전사들로 의심받았으나, 훗날 재판에 의해 그들이 2001년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간에 망명한 평범한 이주민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우룸치 7.5 사태 이래 위구르인이 중국을 벗어나기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로는 신장의 서북쪽 방면이 아닌 윈난성을 경유한 동남아 루트였다. 2014년 쿤밍역 칼부림 테러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사실 쿤밍역 사건은 중국 공안부가 밝힌 것처럼 ETIM의 조직테러가 아니었다. 범인들은 윈난성을 경유해 동남아로 탈출하려는 위구르 일가족이었으며, 그들은 탈출구가 막히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극단적 범행을 저지른 걸로 보인다.

실제로 ETIM이나 IMU, 그리고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결코 여성을 전장에 내보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쿤밍역 사건에서는 16세 위구르족 소녀가 직접 범행에 가담해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사건 며칠 뒤엔 태국에서 밀입국한 위구르족 220명이 붙잡혔는데, 그들은 남성 78명, 여성 60명, 어린이 82명 등 대부분 가족단위로 구성된 망명자들이었고, 이들 중 누구에게도 ETIM과 연관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을 적대하는 타흐리키 탈레반, 위구르족의 구세주일까

파키스탄 군부에 적대적인 타흐리키 탈레반은 아마도 위구르족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극단주의 무장단체일 것이다. 하지만 타흐리키 탈레반은 파키스탄 군부를 상대하기도 벅찬 상황이며 이외 중국과 미국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장에 침입하는 외부세력은 언제나 인구물자가 풍부하고 접근이 용이한 페르가나 계곡을 통했다. 즉 위구르 해방운동이 발발한다면 이의 주역은 이민족 탈레반이기보단 오히려 현재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이자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그 주변국이 될 확률이 높다. 
 
카자흐스탄의 인권변호사 세릭잔 빌라쉬(Serikjan Bilash)는 2017년부터 신장 수용소에 갇힌 카자흐 동족들을 돕기 위해 구명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19년 초 그는 카자흐스탄 당국에 체포됐다 풀려났고, 이후 그의 아타쥬르트 운동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하지만 1백만에 달하는 신장의 카자흐 동포들의 고통을 향한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분노는 타오르는 불씨로 남아 있다. (로고 한가운데에 카자흐 민족의 유목정체성을 상징하는 텐트의 창살이 보인다)
▲ 중앙아 민족들 최초로 신장 문제에 개입한 인권단체 "아타쥬르트" 로고 카자흐스탄의 인권변호사 세릭잔 빌라쉬(Serikjan Bilash)는 2017년부터 신장 수용소에 갇힌 카자흐 동족들을 돕기 위해 구명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19년 초 그는 카자흐스탄 당국에 체포됐다 풀려났고, 이후 그의 아타쥬르트 운동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하지만 1백만에 달하는 신장의 카자흐 동포들의 고통을 향한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분노는 타오르는 불씨로 남아 있다. (로고 한가운데에 카자흐 민족의 유목정체성을 상징하는 텐트의 창살이 보인다)
ⓒ Ataj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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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북부에는 약 1백만의 카자흐족이 살고 있으며, 위구르와 우즈벡은 언어문화적으로 서로에 대한 동질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 국가는 탈레반과 다르게 번듯한 육공군 모두를 갖추고 있다. 물론 이를 배후에 지원하는 세력은 러시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항상 러시아를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고 이를 대비해 란저우 군구에 지휘부를 배치해 왔다. 2000년 초반까지 중국은 신장을 전장으로 내어주고 간쑤 지방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해 반격한다는 구상을 수립해 왔다. 중국 지도부가 신장의 역사적 반동력을 인식한 결과다. 다만 신장의 중국화가 완료되는 가까운 미래에 기존의 작전계획이 여전히 유효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구르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


태그:#탈레반, #위구르족, #동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신장_위구르_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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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고전 차가타이어와 지역 근현대사를 탐구하는 아마추어 연구자입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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