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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에 가장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사기성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공정소득'이 더 우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의 기본소득 비판과는 별개로 그의 공정소득 구상은 매우 엉성해 보인다. 그의 언급들에 근거해 볼 때, 공정소득은 에셔의 초현실적 판화처럼 현실감이 떨어진다. 즉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보수의 비장의 무기, 공정소득
 
국민의힘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국민의힘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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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은 공정소득이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음의 소득세와 같은 구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하는 안심소득이나 윤석열 캠프의 정책총괄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설계한 한국형 음의소득세 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현행 현금복지를 통폐합하고 지출구조조정 등으로 재정을 마련해 일정 소득 이하 시민들에게 현금을 차등하여 지급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이재명의 '기본소득 회귀', 보수는 다시 이걸 꺼낼 것이다)

<매일경제>와 <한겨레> 등과 유 전 의원이 인터뷰 한 내용을 종합하면 공정소득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기준소득을 연 400만원으로 설정하고 소득이 그 이하인 개인에게 400만원과 개인소득 차이의 절반을 지급한다. 즉 소득이 하나도 없으면 200만원, 소득이 200만원이라면 100만원({400만원-200만원}×50%)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는 단기 목표다. 중기에는 연 600만원, 장기적으로는 10년에 걸쳐 연 1200만원까지 기준소득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필요 재원은 단기 기준 52조원이다. 단기와 중기에는 각종 현금성 복지를 통폐합하고, 지출 구조조정, 조세지출 축소 등을 통해 조달한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장기에는 부가세 등 소비세 인상을 병행한다. 생계급여나 기초연금 같은 현행 현금복지 수준에서 후퇴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불가능의 삼각형,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원칙들 

유 전 의원이 우선적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공정소득 단기 및 중기 모델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기존 현금성 복지는 통폐합한다
② 현행 현금복지 수준에서 후퇴하지 않는다
③ 연 400만~600만원을 기준소득으로 소득차액 50%를 개인에게 현금 지원한다.


이 셋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도 설계는 불가능하다. 셋 중 하나는 적어도 포기해야 실현 가능한 견적이 나온다. 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불가능의 삼각형'이다. 

현금성 복지를 통폐합하면서 기존에 주던 혜택 수준에서 후퇴하지 않는다는 원칙부터 지키기 매우 까다롭다. 대한민국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소득과 재산이 일정액 이하이고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생계·주거·의료·교육급여 등을 지급한다. 유 전 의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급여를 폐지할지 밝히지는 않지만, 최소 생계급여라도 폐지하는 조건을 가정해 보자. 

2021년 생계급여는 1인 가구의 경우 매월 최대 55만원, 연간으로 환산하면 660만원이다. 소득과 재산이 있다면 여기서 차감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생계급여를 폐지해도 소득이 전혀 없는 이들이 이전과 똑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공정소득의 기준액이 660만원의 두 배인 1320만원이 돼야 한다. 유 전 의원이 제시하는 소득기준 400만~600만원은 여기에 턱없이 못 미친다. 심지어 10년 뒤 달성할 계획이라고 하는 기준소득 1200만원을 적용해도 받을 수 있는 공정소득은 최대 600만원에 그쳐, 2021년 생계급여 최대 기준액을 보장할 수 없다. 

백보 양보해서 '현행 복지에서 후퇴하지 않는다'의 정의를 생계급여의 평균보다 덜 주지는 않는 것으로 완화시켜도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1인 가구의 경우 현재 월평균 37만원, 연 444만원을 수령한다. 역시 기준소득 수준이 888만원은 돼야 후퇴가 없다. 유승민의 설계도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급자 수십만 명의 불만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계급여만 한정해도 이 정도인데, 여기서 주거나 자활급여까지 통폐합 대상으로 포함시킨다면 불이익을 받는 사람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기준소득액은 훨씬 올라간다.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나 이석준 전 실장의 음의소득세 설계가 거의 중위소득에 준하는 높은 금액을 기준소득으로 삼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행 현금복지를 도저히 통폐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계급여 수급자만 하더라도 2019년 기준 123만 명, 주거급여 수급자는 168만 명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현금복지인 기초연금과 근로장려금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의 경우 연 240만~360만원 정도로 기초연금액이 결정되는데, 역시 유 전 의원의 공정소득 설계를 넘어선다. 근로장려금 대상자 기준금액은 단독가구가 연 소득 2000만원 미만인데, 만일 폐지된다면 공정소득 기준금액 이상을 벌고 있는 소득자는 받을 수 있었던 근로장려금만 날리게 될 것이다.

이들의 손실을 커버할 수 있는 합리적 규모의 공정소득을 설계할 수 있을까? 결국 기존 현금성 복지를 통폐합하면서 기존 복지수준에서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준소득 액수를 설정해야 한다. 

공정할 수 없는 공정소득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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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기존 현금복지를 유지하면서 기준소득 400만원의 공정소득을 시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받는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등 일부를 공정소득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차액을 별도로 보전해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면 꼴이 매우 우스워진다. 

생계급여 대상자들이나 기초연금 수급자들은 이미 대부분 기준소득 400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으므로 이들 중에서 추가로 수당을 받을 사람은 거의 없다. 다인가구의 경우에도 쉽지 않다. 4인 가구로 보면, 공정소득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연 800만원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생계급여만 하더라도 현재 최대 연 1750만원, 평균이 1140만원이다. 결국 재산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이나 중산층 가구의 피부양자 등이 공정소득을 받는 주 대상자가 될 것이다. (유 전 의원은 공정소득 지급기준으로 재산을 언급한 바 없으며, 재벌 아들도 공정소득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과연 보수언론들이 이런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것인가? 연일 '강남아파트 소유자도 공정소득 수령?', '이재용 아들은 받고 편의점 알바는 못 받아', '저소득층 복지정책? 실상은 중산층 출산장려정책' 같은 제목의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집요하게 선별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부조리'를 견뎌낼 수 있을 턱이 없다. 한정된 자원으로 저소득층을 두텁게 지원한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엉뚱한 데 돈을 쓴다는 비난이 난무할 것이다. 

결국 선별기준은 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게 되고, 공정소득 수급자의 숫자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면서 제도의 존재 이유를 잃게 될 것이다. 현금복지 통폐합이라는 보수주의 복지의 핵심가치이자, 주요 재원마련 수단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린 결단 치고는 허무한 결말이다. '용돈' 수준이라는 기본소득은 그만큼이라도 더 저소득층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나름 두터운' 공정소득은 저소득층을 아예 도울 수가 없다. 과연 이게 공정한가?

그렇다면 현행 현금복지의 삭감과 후퇴를 감수하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이건 앞선 시나리오보다 더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온갖 현금복지가 하나의 공정소득으로 단일화되는 깔끔함을 누리는 대신, 액수가 대폭 줄어든다. 그 돈은 결국 재산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이나 중산층가구의 미성년자 등에게 공정소득으로 돌아간다. 가장 어려운 사람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을 지원한다는 역설적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다. 기존 복지수급자들의 저항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생계급여를 살짝 깎으면서 공정소득을 얹어줘서 현행보다는 더 많이 받게끔 하는 방향도 절충형으로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월 40만원 생계급여를 10만원 축소하고 여기에 공정소득을 20만원 얹어주는 식의 시나리오다. 이런 방식은 제도가 복잡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현행 현금복지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정소득은 수급자·비수급자 제도를 따로 설계해 운용해야 한다. 이럴 바에야 현 제도를 확대운영하는 편이 낫다. 보수주의자들은 복잡한 복지제도를 극도로 혐오하지 않는가. 

남은 선택지, 부가세 25% 감당할 수 있나

마지막으로 가능한 길은 공정소득 기준금액을 거의 중위소득수준으로 끌어올려 즉각 시행하는 것이다. 기준소득이 1500만원이면 소득이 없는 경우 1인당 연간 750만원을 보장하므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기존 수급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면서 현금복지는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막대한 예산이다. 공정소득과 같은 모델인 이석준의 설계에서는 1200만원을 기준소득으로 설정했는데도 연간 173조원이 소요된다. 따라서 1500만원에 대해서는 최소 20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석준의 설계를 참고하면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통폐합하고 부가세율을 25%로 올리고 정부기능 축소도 병행해야 겨우 충당할 수 있다. 

불가능한 구상은 아니나, 적은 재원으로 기본소득 이상의 효과를 달성하겠다는 유 전 의원의 호언장담은 무색해진다. 이 규모는 이재명 지사가 언급한 기본소득의 최대 예산 시나리오마저 가볍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임기 내 25% 부가세, 감당할 수 있나?

기본소득은 '용돈'이라도 나눠 줄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이 존재하지만, 공정소득은 현실에 적용 가능한 설계를 뽑아내는 데서부터 난점이 너무 크다. 보수주의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머릿속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 마셔볼 수는 없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도 같아 보인다.

유승민 전 의원은 기본소득을 사기성 포퓰리즘이라고 힐난하기 이전에, 본인의 비장의 상품인 공정소득 시연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라도 말이다. 불가능한 것은 비판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비서관입니다.


태그:#유승민, #공정소득,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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