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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중학생들의 학교폭력 영상과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얼마전 학교폭력을 겪던 한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인한 충격과 안타까움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나 역시 관련 영상과 보도를 본 후 학부모이자 교사로서 안타까움과 걱정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의 대응 방법과 교육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학교폭력 사건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학교폭력으로 아픈 학생들을 만나다

나는 중학교 보건교사이다. 보건실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많이 들른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의 건강상담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두통 등 신체적인 증상 호소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두통 등 신체적인 증상 호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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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에 유독 자주 왔던 A(학생)는 학교에 친구가 거의 없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A를 대할 때 좀 더 유심히 살폈는데 아이는 자주 두통을 호소하며 약을 달라고 했다. 아이는 두통 증상으로 나와 대화를 하던 중 최근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말해주었다.

A의 말로는 같은 반 학생 몇 명이 자신에게 폭언을 하는 등 반복적으로 자길 힘들게 한다고 했다.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괴롭힘에 가담한다는 학생 중에는 학 내에서 '꽤 괜찮은 학생' , '착한 학생'으로 인정받는 아이도 있었다. A는 그 일로 담임선생님과 이미 몇 차례 상담을 하였고 신고할 생각은 더욱 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용기를 내서 자신을 괴롭히는 학생들에게 하지말라고도 말했다고 하였다. 내가 바라본 A는 일상의 폭력에 익숙해져 자신이 겪는 일을 두려워하기 보단, 자신을 힘들게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분노심과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실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기 쉽지 않다. 학교 선생님들은 매우 안타까워하지만 실제로 학교폭력 사안으로 일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물론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화해하여 종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피해자들도 보았다.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때로는 신고를 하는 학생이 '예민해서' 혹은 '따돌림을 당해서' 혹은 '둘다(가해자와 피해자) 잘 한 게 없더라'는 둥 소문이 계속 양산되기도 한다.

결국 피해를 겪은 학생들은 고민 끝에 신고를 한 뒤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과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학교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 즉 2차 가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피해자들이 겪는 2차 가해에 대한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가 <한공주>다. 잘못한 것이 전혀 없었고 피해자였던 '공주'(이름)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가해자 학부모로 인하여 잊고 싶은 과거와 결코 단절될 수 없었다. 
   
내가 만났던 또 한명의 학생이 기억난다. B는 초등학교 때 겪었던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수시로 침상안정이 필요했던 학생이기에 대화를 할 계기가 생겼다. 학생의 안정을 위하여 세부적으로 겪은 일들에 대해서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B에게는 큰 상흔이 남은 상태로 보여졌다. B는 이제 그 흔적을 지워가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B는 자신을 힘들게 하였던 아이들과 더이상 만나지 않기 위하여 지금의 학교에 일부러 지원한 것이라고도 말하였다.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학교폭력 전담기구의 구성원으로 오랜 기간 참여한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한 것은 바로 '사회적 통념과 폭력에 대한 과거의 인식'이었다. 나는 학교폭력 사안을 피해자 중심에서 바라보았을 때 어느 하나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 시 이런 말을 종종 듣게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적 특성과 '장난'이라는 미명 하에 '요즘처럼 하나하나 다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넘어가야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난 오히려 교사가 '라떼'를 언급하면서 '우리 때는 그것보다 더 심한 것도 했잖아'라는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학교폭력 사안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매우 엄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과 2차 가해로 인해 가중되는 고통
 피해자의 고통과 2차 가해로 인해 가중되는 고통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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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안처리의 중요성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사안 처리 시 '가해자'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는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에 대한 논의를 매우 심도있게 하는 편이다. 그 결과, 사안에 따라서 지역교육청의 전문가 집단을 통한 심의와 처리 절차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날로 흉포화, 저연령화 되어가는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 공동체적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 이는 평화, 화해와 용서를 통한 진정한 회복을 도모하려는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매년 공문을 통하여 교육자료와 지침도 내려온다. 하지만 교과시간은 수업 진도에 쫓기고 학교폭력예방교육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의무교육을 해야하기에 그것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본다.

즉, 학교폭력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대응을 위한 현장의 변화와 노력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그것이 적절히 구현되거나 효과적인 결과를 나타내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가 정작 놓치고 있는 것

몇 년 전 내가 참석했던 교육부 주관 어느 연수에서 매우 기억에 남는 강의 내용이 있다. 강사분은 서울 어느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장과 교육장을 지낸 분이었다. 강사분은 교직에 있는 동안 많은 학교폭력 사안을 접하였고 관련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봤다고 하였다. 그는 학교폭력 사안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수참석자들에게 되물었다.

그는 '학교폭력 관련 학생의 학부모들이 사안을 대하는 태도'라고 하였다. 누군가의 자녀가 상대방에게 폭언, 폭행 등을 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였을 때, 누군가의 부모가 그 자녀에게 보여주는 자세야말로 '미래 자녀의 성장과 인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부모는 내 아이의 잘못에 대하여 진심어린 사과를 할 줄 알도록 가르치고, 부모가 아이 앞에서 잘못을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내 아이가 어린 시절 한순간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며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강사분이 봤던 일부 학부모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들로 보였으나,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달랐다고 하면서 매우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하였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교사가 있다. 그는 사춘기 시절 방황하던 자신의 자녀가 올바르게 변하게된 계기를 가끔 이야기 해주었다. 자녀가 학창시절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학까지 갔고, 급기야 그는 자녀의 학교로 직접 찾아가서 자녀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사연을 전해주었다. 그것을 본 자녀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는 이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한 장면이 결국 자녀에게는 어떤 깨달음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나의 자녀들과 우리의 학생들에게 부모와 어른들은 과연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을 진정 변화시킬 수 있는 그 '한 장면'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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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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