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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계속 콩을 까고 마늘도 깠다. 까면서 정리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딸들 카톡방으로 보낸다. "완두콩 필요한 사람 부탁하렴" 주문량에 따라 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딸, 막내딸이 "엄마 나 가져갈래요"라고 답이 왔다.

우리 부부만 먹으려면 2자루면 되는데 주문이 들어오니 시장에 가서 2자루 더 사 와서 깠다. 남편은 나보다 콩을 더 잘 깐다. 콩을 까는 게 일이라기보다 티브이를 보면서 까니까 무료하지 않고 좋다. 지난 이야기도 하고 적당한 소일거리는 재미있다.

일 년을 살아가면서 계절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특히 6월이 오면 완두콩이 나오는 계절이다. 완두콩은 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지만 각종 요리에도 사용하고 카레 만들 때도 넣어 먹는다. 비타민이 많아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콩이다. 나는 매년 콩이 나올 때 넉넉히 사다가 까서 냉동고에 저장해 놓는다. 찰밥을 해 먹을 때도 팥 대신 완두콩을 넣고 찌면 밥이 포근포근하고 맛있다.
 
일년 먹을 완두콩을 까서 냉동고에 저장을 합니다
▲ 완두콩 까기 일년 먹을 완두콩을 까서 냉동고에 저장을 합니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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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콩을 사서 깠다. 팔팔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은 후 까놓은 콩을 넣고 조리개로 휘휘 몇 초 저은 다음 건진다. 너무 오래 놓아두면 비타민이 손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져낸 콩이 새파랗고 통통하다. 뜨거운 김이 조금 식으면 지퍼백에 넣어 냉동고에 보관한 뒤 필요할 때 꺼내 먹는다. 해마다 잊지 않고 콩을 까서 저장을 해 놓고 일년동안 남편 밥은 콩밥을 한다.
 
까놓은 콩을 지퍼백에 넣어  냉동고에 저장한다.
▲ 지퍼백에 담아 놓은 완두콩 까놓은 콩을 지퍼백에 넣어 냉동고에 저장한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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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는 마늘도 나오는 철이라서 마늘도 사서 까야한다. 까서 빻아 냉동고에 보관해야 일 년을 먹고 딸들도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고 준비해 둔다. 우리 집 냉동고는 먹거리로 필요한 걸 저장해 놓는 보물 창고다. 딸들이 친정에  왔을 때 필요한 걸 주어야 엄마도 딸들도 마음이 흐믓해진다.

직장 생활하는 딸들은 하루하루 삶이 바쁘고 집에서 손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참 복잡하다. 집이란 사람이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이면서 말 그대로 생존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쉼 없이 움직임이 있어야 집도 숨을 쉬며 활력이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은 온기가 없어  냉랭하기만 하다. 주부가 부지런히 움직여 집안에 훈훈한 온기를 만든다.

지난번부터 큰 집에서 가져온 마늘이 베란다에 놓여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숙이 "마늘 바로 까야해, 오래 두면 썩을 수 있어" 당부를 하면서 농사지은 마늘을 주셨다. 며칠 전에 조금 깠는데 힘들어 다 못 까고 남겨 놓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남겨놓으면 숙제 같다.

사람이 살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종류가 많기도 하다. 철마다 준비해 놓아야 하는 것들도 때를 놓치면 먹을 수 없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오늘 다 까야지 싶어 마늘을 물에 넣고 뿌리를 제거하고 쪽을 나누어 까기 시작했다.
 
마늘을 까서 씻어 놓았다.
▲ 깐 마늘 마늘을 까서 씻어 놓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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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까고 난 뒤 사진을 찍어 딸들 카톡방에 보냈다. "아빠 엄마 오늘 한 일"이라고 보냈더니 막내딸은 "왜 이렇게 맨날 까, 요새, ㅎㅎㅎ" 하면서 답을 했다. 어제도 콩 까는 사진을 보내고 오늘은 마늘 까놓은 사진을 보냈더니 막내딸이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냥 무심코 던지는 말투지만 아빠 엄마 힘들까 봐 하는 소리다. 딸이 하는 말이 별소리 아닌데도 웃음이 나온다.

날마다 사는 소소한 일상, 별일 아닌 작은 일로 우리는 행복하다. 일 년 먹을 콩을 까고 마늘을 까서 저장해 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느긋하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오는 여유는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며칠을 콩을 까고 마늘을 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완두콩,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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