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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후 전국택배노조는 분류업무 인력을 배치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 전국택배노조원들의 파업 상경투쟁 여의도 집회 모습  파업 후 전국택배노조는 분류업무 인력을 배치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 전국택배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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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과로사" 

택배 노동자에게 자주 따라다니는 단어다. 택배기사의 과로사가 발생하면 정부와 정치권은 호들갑을 떨다 잠잠해졌다. 또 택배기사의 죽음이 언론보도를 장식하면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 하며 그때만 관심을 갖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택배기사는 모든 국민들의 '필수노동자'다. 이들은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깃발을 들었다. 자신도 죽게 될지 몰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택배노조가 상경 투쟁 파업을 벌이고 나서 지난 16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합의의 핵심은 택배 분류업무는 안 하고 배달만 하도록 한 점이다. 분류업무 인력을 투입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8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17일부터 택배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합의 후 1주일이 지난 택배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여수지회 이인숙 조합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여수지회 이인숙 조합원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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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이죠."

전남 여수시 문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인숙(56, 택배 노조원)씨는 달라진 점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에야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 했다. 여태 제때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했다.

스타렉스 차량으로 하루에 250개 가량 배달하는 이인숙씨와는 달리 더 큰 탑차로 배달하는 육동주(38, 택배노조 여수지회장)씨는 하루 300개 가량 배달한다. 육동주씨도 저녁 시간을 찾았다. 파업 전에 그는 귀가 시간이 밤 9시 이후였다. 지금은 6시대에 퇴근해 아내와 자녀가 있는 집에서 저녁 식사를 가족들과 같이 한다. 
 
하루에 300개를 배달하느라 탑차를 수차례 오르내린다.
▲ 전국택배노조 육동주 여수지회장  하루에 300개를 배달하느라 탑차를 수차례 오르내린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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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어려운 조건

택배기사 중 소수이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쟁의권을 획득해 상경 투쟁을 벌여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 이후 택배 노조원들의 일상 업무 일부가 달라졌다.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 후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 중 분류작업을 확실하게 택배사의 업무로 분류한 것이 가장 큰 결실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인숙씨나 육동주씨는 요즘 '택배 기사' 대신 '택배 노조원'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그들이 소속된 노동조합 명칭은 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여수지회'. 긴 이름을 갖는 데는 사정이 있다. 택배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여수 상근활동가 최관식씨 얘기다. 
 
민주노총 여수 상근활동가 최관식씨
 민주노총 여수 상근활동가 최관식씨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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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하신 분들은 여러 소속입니다. 경동이나 대신 같은 화물회사의 중형화물을 취급하는 곳이 있는데 이분들은 '화물연대' 소속이구요. 이분들은 회사로 배달되는 큰 물건을 취급하죠. 시민들과 밀접한 택배는 우체국 위탁 택배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도 별도 노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택배 4개사(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로젠)가 있는데요, 민간택배 노조원들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고 있죠. 여수는 민간택배 노동자가 대략 270명 정도인데요, 이 중에 CJ대한통운 소속이 125명 정도이구요. 거기만 노조가 결성돼 11명이 저희 노조원으로 활동을 하고, 그분들이 상경 투쟁도 하고 그랬죠."
     
여수지역 270여 택배 기사 중에서 11명의 '택배 노조원'. 그들이 노조를 결성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온갖 질시에 대해서는 '이제 지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택배노조 육동주 여수지회장은 조합 결성 과정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여수지회' 노조원은  CJ대한통운 여수지역 13개 대리점(영업소) 중 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 이번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CJ대한통운 전국택배대리점 연합회'가 등장한 것도 그 탓이다. 여수시내 13개 대리점 중 두 군데 영업소 택배기사들이 조합에 가입했다. 한 곳은 2명이, 다른 곳에선 9명이 조합원이다. 
     
택배기사는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의 계약관계, 또 택배기사의 영업구조나 업무 형태가 갖는 특수성 탓에 택배기사끼리 서로 연대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조합을 결성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다.

전국택배노조 김인봉 사무처장은 "택배 기사는 영업소(대리점) 소장으로부터 배달 구역을 배정 받는다. 배달이 편하고 수익이 높은 구역이 있는 반면 덜한 곳도 있다. 수수료 책정도 소장이 하다 보니 택배기사는 엄청난 '을'"이라며 이런 관계 때문에  을 입장인 택배기사들에게 불이익이 우려돼 이분들이 노조를 결성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현실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
 
지역의 물류센터는 좁고 시설 현대화가 미비해 비효율적이다.
▲ CJ대한통운 여수물류센터 터미널 전경  지역의 물류센터는 좁고 시설 현대화가 미비해 비효율적이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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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택배기사 대부분 퇴근이 밤늦은 시각이었다. 20년 경력의 이인숙 택배노조원도 마찬가지다.

"저녁이 없었죠. 사회적 합의 이전에 제 하루 일정은 오전에 1차 배송하고 오후에 2차 배송을 했는데, 2차 배송하려고 터미널에서 물건 받는 시간이 오후 2~3시경 이거든요. 배달할 담당구역까지 가서 2차 배송을 마치고 부칠 물건과 반품 물건 모아서(집하) 터미널에 다시 와서 차에 실어줘야(상차) 합니다. 그 시각이 대략 6시 넘어서 도착해, 바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 상차하려고 터미널에 가서 순번 기다릴 때도 있고, 기다렸다가 택배물건 상차까지 마쳐야 합니다. 

다 마치고 나면 8시 넘고, 집으로 퇴근하면 9시죠. 성수기 때나 물량이 많은 때는 밤 10시~12시 넘어서야 귀가해요. 이렇게 늦어진 데는 저희가 배달만 하는 게 아니고 회사 터미널로 온 배달 물건을 차에서 내려야 하고(하차),  배달 외에도 저희가 하는 일들이 하차에서부터 분류, 집하, 상차까지 저희가 다 했었거든요. 그런데 터미널 용량이 적어 제때 일률적으로 못하고 순번 기다리면서 해야 하니까 늦어지는 거죠."
   
전국택배노조 육동주 여수지회장을 지난 24일 동행해보니 지금도 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CJ대한통운 화물터미널에 출근해 택배 물건 약 300개를 탑차에 싣고 배달 시작하는 시간이 오전 10시. 그는 오림동 지역과 봉강동 해태아파트 단지 구역을 배달한다.

"저는 분류는 하지 않고 있어요. 파업 이후 조합원인 저희에게는 외부인력을 배치해줘 분류를 해주고 있죠. 이렇게 분류를 안 한다는 점과 1차 배송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달라진 거죠."

전에 2차 배송까지 했던 이유는 터미널이 제 기능을 못한 탓이다. 그동안 노조는 CJ대한통운택배 여수터미널의 경우 택배기사가 125명인데도 54대만 접안할 수 있는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2~3회전 배송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여수의 한 화물터미널 내부
 여수의 한 화물터미널 내부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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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다른 민간 3곳(로젠, 롯데, 한진)의 화물터미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국택배노조 육동주 여수지회장은 물류회사들이 화물터미널 면적과 시설을 늘리고 현대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지역의 상당수 터미널들이 자동분류기(휠 소터)가 없어 육안으로 비행기 수하물 찾듯이 자기 구역 배달 물건을 찾아요. 작은 글씨의 자기 구역 주소 써진 걸 골라서 택배기사가 분류해서 챙깁니다.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이죠.

여수지역만 보더라도 CJ대한통운만 휠 소터(자동 분류기)가 있고 나머지 회사는 없어요. 터미널 확장과 자동분류기 설치가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입니다. 물류터미날에 하루 한 번만 와도 되게 해야죠. 두 차례 안 오게만 해줘도 업무량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비효율은 터미널을 오가는 화물트럭 기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무리하게 고속도로 야간 운행을 하게 된다. 대형 화물기사들의 안전에도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이제 근무시간이 달라졌다
 
육동주씨의 배달 구역내에서의 다양하게 펼쳐지는 배달 모습
 육동주씨의 배달 구역내에서의 다양하게 펼쳐지는 배달 모습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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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들의 업무는 힘겨운 일이다. 곳곳에 배달하려면 수시로 주차를 해야 하는데 어디든 주차는 늘 힘겹다.  비탈길의 힘든 노고는 이제 몸에 배었다. 물량이 많은 아파트 지역에서의 장시간 배달은 옷을 땀으로 흠뻑 적신다. 해태아파트 단지를 마치면 육동주씨 하루 배달 일과는 끝난다. 상경 투쟁 전 2차 사회적 합의가 있기 전에는 이곳 아파트 단지는 상습적으로 밤 늦은 야간 배달지였다. 
     
"전에는 여기 해태 아파트를 밤 8시에 들어와서 두 시간 이상 100개 정도 매일 배달했거든요. 여기 주민들은 제가 밤늦게 얼마나 개고생을 하는지를 뻔히 아니까 저한테 좀 관대하게 대하죠. 성수기는 새벽 한 시까지 배달했으니까요. 명절 때는 새벽 3시, 4시에도 끝났어요.

이런 때 집하한 택배 물건을 터미널로 가져가야 하는데 집하장에서 트럭이 이미 떠나버린 적도 있었죠. 그러면 급한 신선한 택배 물건이어서 순천 집하장까지 새벽에 올라가서 의뢰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다시 7시에 여수터미널에 나가서 분류해야 했어요. 제 얘기 들어보니까 '과로사'가 이해되시죠?"

 
아파트 경사로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
 아파트 경사로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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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무시간이 달라졌다. 현재 사회적 합의 이후 이들 회사 여수터미널에서는 조합원들에 한해서만 분류인력을 배치해준 탓이다. 이인숙씨도 2차 배송은 하지 읺는다.

"한 번으로 배송을 끝내니까 저는 배달 마치면 4시경이 되구요. 집하 물건 터미널에 가져다 두고 오면 6시 근처에 퇴근 시간이어서 남들과 비슷하죠. 그래서 사회적 합의 이후부터 저는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 먹고 있습니다." 
     
육동주 지회장은 모든 택배기사가 택배 물건을 분류하는 업무에서 면제되어야 하는데 여수지역은 현재로선 조합원들만이 분류업무에서 면제된 상황은 아쉽다고 한마디 한다.

"저희 노조원들만 달라졌어요. 비노조원들은 계속 분류업무도 하고 2차 배송하고, 저녁 없이 그대로예요. 저희는 조합원 가입 인원도 더 늘리고, 또 단체협약을 꼭 체결해야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택배노조, #택배 괴로사, #택배기사, #전국택배노조 , #육동주 여수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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