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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로 외국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고국방문이란 많은 의미를 지닌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얼굴 맞대고 앉아 영상통화로는 해소되지 않던 그리움을 달래고, 익숙했던 거리를 걸으면서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눈에 익은 산과 들을 찾아 당분간 보지 못할 날들을 위해 눈에 꼭꼭 담아둘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지난해 1월,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 때 한국을 방문하려고 일찌감치 비행기표를 예매해둔 터였다. 바다가 좋을까 계곡이 좋을까, 펑펑 눈 내리는 겨울이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휴가 계획을 짜느라 마음은 이미 한여름이었다. 한국은 물건도 좋고 없는 게 없어서 귀국선물 고르기가 어렵다니까, 행복한 투정도 했다. 멸치, 북어 대가리, 미역… 한국에서 사오면 좋을 것들을 꼼꼼히 적어두기도 했다.

부모님 얼굴 뵙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 되다니 
 
5월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 1터미널 항공편 운행 상황이 보인다.
 5월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 1터미널 항공편 운행 상황이 보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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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됐다. 수많은 것들을 앗아간 코로나는 고국방문의 기회마저 차단해버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상황이 호전되길 바라며 기다렸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어떻게든 가려면 갈 수야 있었지만 한국에 도착해서 2주 격리, 캐나다에 돌아와서 다시 2주 격리, 이렇게 4주를 격리로 허비하면서까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비행기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천재지변과도 같은 상황이라 수수료 없이 취소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이후 캐나다의 입국제한은 더욱 강화되어, 지난 2월 22일부터는 일명 '호텔 격리'라는 것이 시작됐다.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대 3일간 정부가 지정한 호텔에 머물러야 한다.

호텔 체류비, 교통비, 식비 등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그 액수가 2000달러에 달하기도 해 그간 비용과 예외규정을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지난 월요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7월 5일부터는 두 차례 백신접종을 마친 사람들에 한해 '호텔 격리' 규정을 해제한다고 한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평양을 건너 지구 반대편 한국에 가려면 비행기로 장장 13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한다.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야 하고 다리가 저리고 얼굴이 푸석하게 부어도 뭐, 그쯤이야 기꺼이 참을 수 있다.

그럼, 비행기값은? 경유 항공편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해도 우리 다섯 식구가 한국에 다녀오려면 7000달러는 족히 하늘로 훌훌 날려보내야 한다. 직항일 경우 당연히 비용은 더 올라간다. 그런데, 거기에다 총 4주간의 자가격리와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호텔격리라는 산까지 앞을 막아선 것이다.

우리가 가기 어려우니 부모님께서 오시라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이제 좀 수그러드나 싶으면 다시 거센 유행이 닥쳤다. 지긋지긋한 봉쇄를 겪고 이번엔 정말 끝인가 하면 또다시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를 세 차례. 그 사이 캐나다는 국경도 꼭꼭 닫아 걸어 외국인의 입국이 금지된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부모님 얼굴 뵙는 것이 이렇게나 세상 어려운 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가뭄에 단비같은 격리면제 소식, 그러나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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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늘에 단단히 빗장이 걸려 있었으니, 지난 13일 확정된 '해외 예방접종 완료자 입국관리 체계 개편 방안'은 해외동포들에게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영국, 남아공 변이 발생국에서 입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사용승인한 백신의 권장 횟수를 모두 접종한 후 2주가 경과된 사람은 격리 면제서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중요 사업상 목적, 학술 공익적 목적, 인도적 목적, 공무국외출장의 경우로 한정되어 있던 격리면제대상에 '직계가족(배우자,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방문'이 추가된 것이다. 격리가 면제돼도 입국 전후 총 3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지만, 방역을 위해 당연히 따라야 할 조치이고 한국으로 향하는 하늘길이 열린 것만으로도 축하할 일이다.

해외에 사는 이들이라면 모두 한마음이었던지라, 당장 발표가 난 다음날부터 해외공관에 문의전화가 빗발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LA 총영사관에는 하루 5천 통이 넘는 문의전화가 걸려와 민원전화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하고, 일부 영사관은 민원 수요 급증에 대비해 전담팀을 꾸리기로 했다고 한다.

이곳 캐나다도 상황은 비슷했다. 영사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6월 14일 현재 공관으로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으나, 아직 세부지침이 확정되지 않았고 향후 수정 변경될 수 있어 안내 드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 가급적 아래 안내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가 보였다.

요즘엔 야외에서 10명까지 모임이 허용된 터라 간만에 지인들과 공원에 모인 자리에서도 단연 이 소식이 화제였다. 다들 한국 갈 날만 벼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 가려면 '억'이 필요하다는 둥 우스갯소리도 오고 갔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우스갯소리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비행기표를 서둘러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닌지 슬며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23일, 토론토 영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7월 2일부터 격리면제서 신청을 접수받는다는 공지와 함께 보다 상세해진 지침이 공개됐다.

우선, 격리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재외공관에 격리면제신청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류, 예방접종증명서, 서약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출발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코로나19 유전자 증폭(PCR) 음성확인서가 필요하고, 격리면제서 발급 예상 소요기간이 약 2주인데다, 격리면제서 유효기간은 발급 후 1개월이므로, 이 모든 시간들을 잘 고려해서 격리면제서를 신청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해야 한다.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라면 좀더 복잡해진다. 지난해 4월 13일부터 한국정부는 해외로부터의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사증면제협정 및 무사증입국 잠정 정지' 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본래 캐나다는 무사증입국 대상국이지만, 이 조치 이후 캐나다 시민권자인 해외동포는 비자를 발급 받아야만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때문에 격리면제와 비자를 동시에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준비해야 할 서류뭉치는 더욱 두툼해질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부디 한국 땅에 닿을 수 있기를

준비할 것도, 고려할 것도 많지만 오매불망 한국행을 기다린 이들에겐 감수할 만한,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진정한 복병은 따로 있었다. 우선, 큰딸과 우리 부부의 2차 접종일이 7월 말, 9월 말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가 2차 접종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로 다시 스케줄이 잡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처럼 아이들이 있어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 다음 여름을 기약할 수밖에.

또 다른 문제는 만 7세, 만 10세인 둘째와 셋째는 격리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다. 백신접종 미대상인 12세 미만 중 6세 미만만이 격리면제 대상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만 6~18세 미접종자는 부모의 도움으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방역 위험 등을 고려할 때 격리면제를 실시하기에 어려움이 있음"이라고 명시된 공고문을 보는 순간, 올해 한국 방문의 꿈은 다시 한번 고이 접어 저 하늘로 날려보내야 했다.

"내년에 한국 가면…" 아이들과 종종 나누는 이 말이 다시 한번 공수표가 되는 일은 없겠지, 없을 거야, 하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그렇다면 혹시 또? 여기까지 생각하다 도리질을 한다. 준비해야 할 서류뭉치가 책 만큼 두꺼워도, 온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몇 번씩 받아야 한대도 좋으니, 내년엔 부디 한국에서 여름을 맞고 싶다.

태그:#해외백신접종완료자, #격리면제,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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