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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장승현, 시시울 펴냄)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장승현, 시시울 펴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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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란 사람 대부분은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하다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훔쳐 먹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장승현(58)은 차원이 달랐다. 중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화투를 치며 놀았다.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마시고 술에 취해 넘어졌는데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막걸리를 끊었다. 하지만 딱 3년 동안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반도주했다. 서울 구로상가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시작으로 가방공장에서 박스 포장 일을 하며 전전했다. 당시 월급 8만 원은 모두 막걸릿집에 갖다 바쳤다. 농사일하며 사는 지금도 그는 막걸리를 마신다. 하루 2병이 평균이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제목도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시시울 출판사, 240쪽, 1만 5000원)이다. 20년 전부터 쓴 귀농일기를 다듬어 묶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막걸리를 내밀었다. 왠지 귀농일기도 막걸리를 마시며 썼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취중일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묵직하고 진중하다.

장승현은 네 살 때 성대를 다쳤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제때 치료를 하지 못했다. 이후 20대 초까지 말을 안 하고 살았다. 학교로 가는 둥 마는 둥 했다.

취기가 오르면 말수가 늘어난다. 그만큼 말이 하고 싶었던 게다. 그는 글 머리에 "얼마나 말이 하고 싶었으면 글을 썼겠냐"고 했다. 말 대신 일기를 썼고 그게 한 권의 책이 됐다.

오랫동안 소설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을 겪으며 대전민주청년회에 몸담았고 민중운동을 벌였다.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그가 정착지로 택한 곳은 고향이었고, 귀농이었다.

그는 자신을 '날라리 농부'라 칭한다. 복숭아나무에 병해충 예방을 위해 하는 유황 소독도 거부했고 논밭에 비료도 뿌리지 않았다. 벼농사는 직파를 고집했다. 자연농법에 대한 고집과 믿음 때문이었다. 대신 논바닥에서 토종 우렁이를 잡아 술안주로 즐겼다.

책의 절반 이상은 막걸리 마시며 쓴 농사일기와 시골 생활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20대에 직업훈련소에서 건축 목공 한옥 자격증 땄다. 책에서 목수일기는 50쪽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의 주업은 집 짓는 시골 목수다. 그가 정의하길 "도시 목수는 목조주택, 한옥을 짓는 목수 등 그 분야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목수이고 시골 목수는 집 짓는 것은 기본이고 미장, 조적, 보일러 배관, 타일, 용접 등 이것저것 못 하는 게 없는 목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집터를 고르는 방법에서부터 목조주택을 지을 때 중점을 두어야 할 핵심 등 깨알 정보가 수두룩하다.

그의 꿈은 아이들과 집짓기를 함께하는 목조주택 대안학교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윤임수 시인은 "태어나서 이름을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다"라며 "생존을 넘어 생활을 위한 집 짓기는 얼마나 고귀한 것이냐"고 묻는다.

6.10항쟁 기념일에 펴낸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은 농사짓고 집 짓는 일이 마냥 행복한 천생 농부이자 목수인 장승현의 '짓기 이야기'다.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 날라리 농부의 귀향일기

장승현 (지은이), 시시울(2021)


태그:#장승현 ,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귀농일기, #목수일기, #시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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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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