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1991년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이 시작되던 때부터 일했던 김은숙입니다. 반도체 칩에 EMC 재료를 씌워서 보호하는 몰드 공정에서 일했습니다. 공장 설립 초기라 안정도 되지 않은 설비를 혼자서 4대씩 담당했는데, 12시간을 계속 뛰어다니며 일을 했고 늘 등짝에 땀이 흘렀습니다.

높은 온도의 설비에서 녹는 검은색 에폭시몰딩 재료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설비를 세정하는 멜라민에서도 냄새가 났지만, 불량을 막으려면 프레스 구석구석 묻어있는 몰딩재료를 긁어내야 해서, 우리는 설비에 머리를 넣고 주걱으로 긁으며 청소를 했습니다.

위험하니 마스크라도 쓰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늘 생산량에 쫓겨서 정신없이 일했고, 현장엔 생산량 그래프가 붙어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했던 그 재료들이, 그리고 검사에 사용했던 X-ray 설비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1998년 저는 임신 두 달 후 퇴사를 했고, 1999년 아이를 낳았습니다. 태어난 아이의 몸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변을 보지 않았는데, 황달기가 있고 배가 빵빵해졌습니다. 큰 병원에서 가서 '선천성 거대결장(대장에 신경이 미발달하여 대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선천성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대장 전체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도 오랜 세월 수시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대장이 없어서 변을 볼 때 늘 설사를 했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도 여벌 속옷과 바지를 챙겨서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자라서 생활하고 있지만, 대장이 없는 아이의 불편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갑산생염, 갑상선기능 저하증, 갑상샘암, 류머티즘 등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만큼은 꼭 산재를 인정받아서 나중에 병원에 다닐 때 부담 없이 편히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국회는 2세 질환에 대한 산재법을 빨리 만들어서 우리 자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더이상 이런 아픔이 없도록 예방대책도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태그:#2세 직업병, #산재신청, #삼성반도체, #반올림
댓글

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