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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그물에 걸려 죽어있는 채 발견된 밍크고래.
 충남 태안군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그물에 걸려 죽어있는 채 발견된 밍크고래.
ⓒ 보령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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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해양수산부가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이하 고래 고시)'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유통이 가능했던 좌초·표류된 고래들의 위탁판매를 금지하고 불법 포획된 고래사체를 공매해 수익금을 국고로 귀속시켜온 관행을 금지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고래 고시 개정안이 발표되자 각 언론사에서는 앞다투어 '바다의 로또 이제 사라지나', '고래 고기 이제 못 먹나' 등 고래 유통이 원천 차단된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해수부 역시 직접 이번 고래 고시 개정이 "고래 관련 국제규범 준수와 고래류 보호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고래 유통이 금지됐다는 생각은 개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쪽짜리 해석'이다. 개정된 고래 고시에서는 고래 유통의 핵심인 '혼획' 문제를 전혀 제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된 고래 고시, 의도적 혼획 판단할 수 있는 거름망 부재

개정안은 좌초·표류된 고래들의 판매를 금지할 뿐, 혼획에 의한 고래의 판매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해수부는 기존에 명시돼 있던 혼획의 정의 '어로 활동에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경우'를 '적법한 어업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위판 가능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혼획 개념을 좁혔다"고 밝혔지만, 의도적인 혼획을 구분할 방법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미미하다.

국제포경위원회(IWC)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주요 10개 국가에서 혼획된 고래의 수는 평균 19마리인 반면, 한국은 무려 1,835마리에 이른다. 10개 국가 평균 혼획 수에 대비해 약 96배가 넘는 수치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한국 어업이 밀집되어 있으며 한국 정부가 보고를 성실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해양환경단체들은 이같이 높은 수치를 "결코 완전한 우연으로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특히 밍크고래처럼 시장에서 금전적 가치가 높은 고래는 어민이 그물에 걸린 것을 인지해도 익사할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적법한 어업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물에 걸려 죽은 것'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평균 수치를 크게 상회하는 우리나라의 고래 혼획률이 과연 비의도적으로 일어나는지 확인하려면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고래가 혼획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자망, 정치망 등의 경우는 고래 사체에 작살 자국이 생기지 않으므로 작살 자국 같은 인위적인 상처만을 기준으로 의도적 혼획인지를 구별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의도적 혼획을 전혀 막을 수 없다.

즉, 이번 고시 개정으로 해수부의 '고래류 보호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래 혼획률 실질적으로 낮추려면 경제적 인센티브 없애야

해수부에서 '고래류 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반쪽짜리 개정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고래 혼획률이 높은 걸까.

한국은 국제포경협회(IWC)에 가입국으로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을 금지한 나라다. 하지만 여전히 한 해 2천 마리에 가까운 고래들이 혼획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 중 일부는 울산과 포항을 비롯해 전국에 퍼져있는 약 116개의 고래고기 식당에서 소비된다. 고래를 식품으로 소비하는 수요가 있고 유통이 가능하다면 불법 포획은 어떤 경로로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고래고기의 경제적 가치가 높은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고래사체의 가격은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까지 호가한다. 이는 일반 어민들의 연 소득 절반 이상이 될 정도의 금액이다.

박현선 시셰퍼드 코리아 대표는 "대형고래의 높은 혼획률의 중심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경제적 인센티브(성과보수)가 있다"며, "이번 개정은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기 때문에 혼획 근절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초·표류된 고래를 제외하면 유통량이 약간 줄 수는 있겠지만, 고래를 판매 이익이 그대로인 이상 유의미한 효과는 낼 수 없을 거라는 뜻이다. 좌초·표류된 고래 역시 얼마든지 '혼획 고래'로 둔갑할 수 있는 법적 공백도 그대로 두었다.

박 대표는 "인센티브를 아예 없애거나 줄이는 것과 더불어 시장에 유통되는 고래사체의 디엔에이(DNA) 샘플을 무작위로 검사해 불법 유통된 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통이 승인된 고래의 DNA 시료는 고래연구센터에 보관되는데, 채취된 샘플이 고래연구센터에 보관 중인 시료 리스트에 있다면 적법하게 유통된 것이지만, 리스트에 없다면 불법으로 유통된 것이므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고래고시 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같은 제도적 보완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 시셰퍼드 코리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인센티브를 없앨 방법은 무엇인가? 고래 고기 취급 식당 업주들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의 고래 보호 여론과 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에 반대하며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불법 포획이나 혼획을 가장한 포획에 찬성하지는 못한다.

또한, 우연히 발견한 혼획 고래에 일확천금에 해당하는 큰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기형적인 관행도 합리화할 충분한 명분이 없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은 고래 혼획에 의해 어구 손상 피해를 입은 어민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안을 제시해볼 수 있다.

혼획한 고래를 판매 시 얻은 판매금으로 먼저 어구 손상에 대한 실비 보상을 해주고, 나머지 금액으로 고래 보호 기금을 조성하거나 국고에 귀속하는 방식으로 고시를 개정한다면, 줄어든 인센티브에 의해 '가짜 혼획'량(혼획을 빙자한 의도적 포획)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고, 고래 고기 식당들도 일시에 폐업해 생계를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같은 절충안은 이미 시민단체에 의해서 여러 차례 정부에 전달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역시 정부의 고래 보호 의지에 대한 의문을 한층 강화시킨다.

"'의지' 있다면 밍크고래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해수부는 이번 개정이 "미국 해양포유류법에 조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2017년 '해양포유류보호법'을 개정해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지 않는 방법으로 잡은 수산물의 수입을 2023년부터 제한해, 오는 11월까지 고래류 보호 현황과 향후 계획 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셰퍼드 코리아는 "이번 조치가 대미 수산물 수출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 이상의 효과를 낼지 의문스럽다"며 "진정으로 해양 포유류를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한국 연안에 사는 모든 고래류, 특히 고래고기로 주로 유통되는 밍크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해 포획·보관·위판·유통을 원천금지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래 한 마리는 일생동안 체내에 평균 33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죽은 후에는 흡수한 탄소를 품고 해저로 가라앉는다. 나무 한 그루가 매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2kg 정도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나무 수천 그루를 심는 것만큼 고래 한 마리를 보호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고래의 배설물은 지구 산소의 절반을 생산하고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시작이 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다. 

이와 같은 해양포유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래 고기를 취급하는 시장과 식당에 정기·부정기 단속을 시행하여 유통의 적법 여부를 철저히 관리하고, 고래가 혼획된 즉시 신고하고 구조하는 어민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해 죽은 고래가 아닌 산 고래로 금전적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더 적극적인 개정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태그:#시셰퍼드코리아, #고래고시, #해수부, #고래, #밍크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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