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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전이 열리는 목포 '오거리문화센터' 입구
 백남준전이 열리는 목포 "오거리문화센터" 입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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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적 고향(My Artistic Heimat)' 백남준 전이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백해영갤러리(관장 백해영) 주관으로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6월 27일까지 열린다. 기획은 백남준 초기 독일 시절에 정통한 김순주(B/S 쿤스트라움) 디렉터가 맡았다. 김 디렉터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백남준 아카이브전'을 연 바 있다. 
 

목포는 예향, 맛과 멋의 항구, 전남 근대문화유산 1번지, 남행열차 종착점 등 별칭이 많다. 그러나 이제 그에 만족할 게 아니라 '글로벌 문화도시'로 거듭날 때가 되었다. 이런 때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의 전시를 여는 건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장은 특별하다. 1898년 개항 후 첫 일본사찰이었고, 1946년부터는 정광중학교, 1957년엔 목포중앙교회, 1980년엔 광주민주화운동의 출원지였다. 2007년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철거될 뻔했다. 목포 시민들 근대유산가치를 강력 주장해 보존되었다.

백남준은 95년 광주에서 처음 '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기뻐했다. '인포아트(Info Art:정보예술)' 전을 열어 당대 최고의 미디어작가를 다 초대했다. 이곳 선사문화를 전자아트로 번역한 '고인돌'도 출품했다. 지방자치 옹호자인 백남준이 살아있다면 이 전시를 좋아했으리라. 

이번 전시는 백해영 관장의 통큰 기부와 헌신, 목포시장과 시 직원들 노고로 가능했다. 태평염전, 한국 파버카스텔도 협찬했다. 개막식엔 김종식 목포시장, 전성규 목포대교수, 8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활동한 임영균 교수도 참가했다. 임 교수는 인사말에서 백남준을 일본 작가로 알고 있는 미국인이 많아 충격 받고 그를 사진 찍게 됐단다.

백남준의 시간철학, "미래가 지금"
   
2019년 백남준 영국 '테이트모던' 네덜란드 순회전 포스터. 백해영갤러리 소장품
 2019년 백남준 영국 "테이트모던" 네덜란드 순회전 포스터. 백해영갤러리 소장품
ⓒ 백해영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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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부터 이번에 선보인 작품을 감상해보자.

먼저 2019년 백남준의 '테이트모던' '암스테르담' 순회전 때 포스터다. 여기 하단에 "The Future is Now"가 보인다. 백남준은 "미래(Future)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Now)를 쓰는 게 예술"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메시지다. 그리고 "현재가 유토피아"라는 말도 했다.

여기서 보면 백남준에게 현재, 과거, 미래의 경계를 넘어선다. 더 풀면 가장 먼 과거(선사시대)를 알아야, 가장 먼 미래(30세기)를 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TV아트를 시간예술로 해석한 그는 시간에 대한 폭과 영역은 광범위하다.

첫 전시 'TV'가 30년 후 '인터넷' 되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에서 '총체피아노'를 연주하는 'R. 예를링. 김순주 소장품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에서 "총체피아노"를 연주하는 "R. 예를링. 김순주 소장품
ⓒ 김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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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이 사진은 독일 부퍼털 '파르나스화랑'에서 열린 백남준 첫 전시 장면 중 하나다. 온통 잡동사니로 뒤덮인 '총체피아노'를 연주하는 R. 예를링 그는 원래 건축가로 이 전시장 주인이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사람들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다.

하버드대 시각예술과 데이비드 조슬릿(D. Joselit) 교수는 "백남준은 선(禪) 철학을 괴벽스럽게 때로는 농담 투로 전자아트에 적용하기로 유명하다"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다.

백남준은 첫 전시에서 선불교에서 말하는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즉 시각(sight)과 청각(sound)이 하나' 되는 개념을 도입했다. 음악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음악이 되는 융복합 미학, '종합예술(Gesamtkunstwerk)' 방식이다. 그래서 그의 첫 전시제목도 '음악의 전시'다. 부제는 서양 미술판을 갈아엎겠다는 메타포가 담긴 '추방(Expel)'이다.

그는 서구인들 듣도 보도 못한 '비디오아트'를 창안해 전혀 새로운 미술판을 열었다. 백남준이 첫 전시에서 TV를 도입한 건 대사건이다. 왜냐하면 1963년 '일방소통매체'인 'TV'가 1993년 '쌍방소통매체'인 '인터넷'이 됐기에 그래서 혁명이다.

서구의 '성상' 끌고 다니는 백남준
 
백남준 I '걸음 위한 선' 혹은 '줄이 달린 바이올린' 영상, 1979년. 장소 쾰른. 이걸 찍은 사람은 'W. 헤르조겐라트' 박사. 그는 독일에서 유명한 미술사가로 이 액션에 담긴 의도를 알았다
 백남준 I "걸음 위한 선" 혹은 "줄이 달린 바이올린" 영상, 1979년. 장소 쾰른. 이걸 찍은 사람은 "W. 헤르조겐라트" 박사. 그는 독일에서 유명한 미술사가로 이 액션에 담긴 의도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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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70년대를 보자. 백남준은 서양음악의 성상인 바이올린 목에 줄을 달아 쾰른 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사실 이런 해프닝은 60년대부터 했다.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때려 부쉈다. 왜? 서구가 예술을 주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였다. 백남준은 서구우월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격인 존 케이지도 동양에 심취해 있었다.

이번 전시를 보니 백남준은 참 '센' 사람이다. '문화 칭기즈칸'이 그냥 나온 말 아니다. 6개 국어를 한 백남준은 서양의 석학들과 논쟁이 붙으면 재치 넘치는 유머로 그들을 압도했다. 아 그리고 벽에 끈 달린 바이올린이 있어 백남준처럼 거리 퍼포먼스도 할 수 있다.

백남준 "서구철학 맹종마라!" 
 
백남준 I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가변설치. 1998년. 백해영갤러리 소장
 백남준 I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I never read Wittgenstein)" 가변설치. 1998년. 백해영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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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1980~1990년대 작품을 보자.

TV와 인터넷의 중간역할을 한 1980년대 유명한 위성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 볼 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로 넘어가 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작가로 출전해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에디션 사진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최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위 작품이다. 이에 대해 해석이 다양하나 분명한 건 '서구철학 맹신에 대한 경고'다. 서구철학은 '플라톤'에서 시작, 20세기의 플라톤은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당대 최고철학자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의 책을 안 읽어도 돼 왜? 그의 언어철학보다 나의 비디오아트 시각철학은 더 알려줄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 대형설치물은 보면 직사각형 TV화면을 연상시킨다. 그 형태가 단순하다. 왜?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 후 디테일한 작업을 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사방은 '동서남북, 춘하추동' 등 우주의 순환계를 연상시킨다. 무지갯빛을 닮은 일곱 가지 색동은 TV전자빛 같다.

'유라시아시대', 한반도 벗어나 세계로  
 
백남준 I '호랑이 살아있다' 45분 위성아트(DMZ 2000). 한국인을 호랑이로 의인화하다
 백남준 I "호랑이 살아있다" 45분 위성아트(DMZ 2000). 한국인을 호랑이로 의인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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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시작하는 2000년 1월 1일 0시에 백남준은 위성아트인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87개국에 생중계했다. 여기서 백남준은 "난 한 마리의 호랑이로 서구에 진출하여 예술 현장에서 저들을 이기고 있다. 우리 민족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분단국의 처량한 신세를 청산하고 이제는 어엿한 통일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강력한 멘트도 날렸다.

금수강산을 찬양한 '금강에 살으리랏다'가 나오고, 미국 소프라노 가수 '비티엘로'의 괴성이 들린다. 분단된 철조망 태우는 영상과 호랑이와 사자 대결 속 호랑이가 이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앞으로 동양이 서양을 앞선다는 뜻인가! 요즘 BTS, 봉준호 감독 등 한국대중문화가 미국과 경쟁하는 시대다. 60년대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는 북한이 막혀 섬나라가 된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까지 대륙철도로 가야 한다는 기운이 일고 있다. 요즘 익산역 앞에 가보면 유라시아대륙철도 설치물이 세워져 있다. 익산에서 런던까지 차비는 95만이고 10일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다. 다음은 목포다.

백남준, 21세기 우리에게 준 '유언' 
 
백남준 I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imea to Korea)' 1960년대
 백남준 I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imea to Korea)" 1960년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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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에서 백남준은 60년대 이미 유라시아 전성시대를 예언했다. 2차 대전 때 그의 동료작가 보이스가 전투기 사고로 추락한 크리미아반도부터 한반도까지 그린 지도다. 그때 벌써 백남준과 보이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다산'도 조선이 한반도 자루에 갇히면 안 된다 했지만, 백남준은 그보다 한반도의 범위가 훨씬 넓다. 몽골, 우랄알타이, 시베리아, 훈족 그리고 헝가리와 핀란드뿐만 아니라 페루까지를 포함시켰다. 목포시민도 이제 이런 기백을 가질 때가 되었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우리에게 유언을 남겼다. 20세기에는 0,2% 인구인 유대인이 노벨상 약 22% 받았고, 그들은 인류에게 과학과 문화, 사상과 철학 등에서 크게 이바지했다며, 21세에는 그 역할을 한국인이 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탈영토시대', 땅 크기보다 첨단 지식정보와 IT로 무장한 사이버영토를 넓히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이나 국가나 열등감을 건강하게 극복해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위 작품들에서 보여준 백남준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유라시아로 뻗어가야 하리라.

덧붙이는 글 | 백해영 갤러리 홈 페이지 https://www.paikhaeyounggallery.com


태그:#백남준, #백해영, #김순주, #보이스, #목포 오거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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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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