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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거인의초대-라는 행사가 열리는 군산시민문화회관 앞뜰
▲ 2022년 재탄생을 앞둔 군산시민문화회관전경 5일간의 거인의초대-라는 행사가 열리는 군산시민문화회관 앞뜰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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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탄신일, 석가모니 못지않은 거인의 초대를 받았다. 바로 군산시민문화회관 '거인의 초대전'이 열린 것. 19일부터 시작한 이번 전시는 5월 23일까지 진행되며, 이 기간 동안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군산시민의 문화공간이었던 군산시민문화회관은 2013년 3월 폐관 이후 오랜 잠에 빠져 있었는데, 2020년 군산시와 건축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정부의 도시재생 인정사업권을 받아서 2022년에 새로운 모습(시민과 관객이 직접 공간을 창조하는 DIT프로그램 시도, 'Do It Together')으로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5일간 진행되는 '거인의 초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였다. 2019년부터 한길문고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어른과 학생들이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없는 규칙이 있으니 '엉덩이로 책 읽기'라고 한 표현은 익살스럽지만 맞는 말이다.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책 읽기, 아이들의 반응은 
 
한시간동안 엉덩이를떼지 않고 책을 읽게 될 학생들의 독서모습
▲ 엉덩이로 책읽기 대회 시작종과 함께 독서삼매경 한시간동안 엉덩이를떼지 않고 책을 읽게 될 학생들의 독서모습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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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이 지나면 국가가 정한 최저시급(8720원)을 쿠폰 형태로 받는다. 학교를 다니는 자식들을 둔 부모님들은 얼마나 큰 횡재이겠는가. 주야장천, 휴대전화만 끼고 사는 자녀들이 이런 기회에 책도 보고, 돈도 받는다고 꼬실 수 있으니. 나도 역시 우리 학원생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늘 대회는 초등학생 50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학원생들 몇 명이 참가한다고 해서 재탄생을 앞둔 군산시민문화회관 공간도 구경하고 학생들의 책 읽기 현장도 볼 겸 대회장소를 찾았다. 그런데 대회 장소를 협조하는 분들이 준비한 인조 잔디, 그 위에 놓인 갈색 나무의자, 그리고 어린이들의 동심 미끄럼틀을 배경으로 한 책읽기 장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한여름 더위처럼 내리쬐는 햇살을 등에 지고 아이들이 책을 읽기에는 너무 더웠다. 부리나케 행사 장소를 재단장 중인 건물 내부의 로비로 옮겼다. 돗자리를 준비하고, 나무의자를 옮기고, 참가한 학생들을 호명하고, 장소 변경 사유를 말하느라 한길문고 상주작가 배지영씨는 마음과 몸이 바빴다.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은 이곳에서 뭐하는 줄 아세요?"
"책 읽어요."
"한 시간 동안 꼼짝 안 하고 책을 읽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인데 할 수 있을까요?"
"네~"


배지영 작가의 말소리보다 몇 배나 큰 어린이들의 함성이 들렸다. 학생들이 책을 읽을 자리를 정하고 화장실을 다녀오자 배 작가는 대회 시작 알림을 외쳤다. 드디어 '엉덩어로 책 읽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한순간에 아이들의 '소음 모드'가 꺼졌다. 오직 어린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의 레이저 눈빛과,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소리만 들렸다. 형제끼리 친구끼리 온 학생들이 많았지만 홀로 인생을 보여주는 듯한 자세로 독서삼매경에 빠져든 초등학생들에게 눈길이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보다 1~2학년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맞추었다. 책을 읽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까 싶었는데, 어른도 범접하지 못할 심오함과 비장함이 가득한 표정이어서 웃음도 나오고 기특해서 한참을 둘러보며 살펴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기 전 배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종료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아이들의 고요한 독서 외침은 엉덩이의 힘이 내뿜는 함성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학생들은 약속받았던 최저시급 쿠폰을 선물로 받았다. 처음으로 직접 돈을 벌어본 느낌을 주는 이 쿠폰은 한길문고에서 원하는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엄마가 오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책읽기 후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최저시급쿠폰을 선물로 주는 배지영작가
▲ 대회종료후 선물로 받는 최저시급쿠폰 책읽기 후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최저시급쿠폰을 선물로 주는 배지영작가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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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학원생 박유빈(진포초5)은 동생 박체륜(진포초3)과 함께 왔는데, 이 대회에 두 번째로 참가했단다. 집 근처에 한길문고가 있어서 서점에 가서 종종 책도 직접 사고 책 읽기 방과 후 활동도 한다고 말했다. '엉덩이로 책읽기 대회'에 참여한 특별한 이유나 동기가 있냐고 물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게임 하는 시간이 많은데 한 시간이라도 나에게 도움 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참여했습니다." (박유빈)

"똑똑해지고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참여했습니다." (박체륜)
 

대회에 처음 참가했을 때와 오늘 두 번째 참가의 느낌은 어땠는지를 질문했다.

"사실 처음엔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가긴 했는데 5분도 안 되어 화장실도 가고 싶고 옆 사람이랑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1분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해서 참으면서 책장을 넘기기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책을 읽게 되고 오히려 한 시간이 짧게 느껴졌어요. 오늘은 그때의 감정은 사라졌고, 가져온 책을 모두 꼼꼼히 읽고 즐거웠습니다." (박유빈)
 

이 행사의 제목은 '엉덩이로 책읽기 대회'인데 무슨 뜻으로 그렇게 제목을 붙인 것 같은지 물었다. 

"읽을 책의 목표를 정해서 인내심과 끈기로 끝까지 책을 읽으라는 뜻 같습니다." (박유빈)

"엉덩이를 딱 붙이고 집중하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라고 들었습니다." (박체륜)


이번에 처음 참가한 윤지후(아리울초4) 학생은 행사 내내 꿋꿋한 자세로 홀로 독경을 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다음에도 또 오고 싶어요. 제가 몰랐던 것과 궁금했던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요. 집에서는 1시간 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보는 것이 엄청 어려운데 오늘은 시간이 금방 간 것 같았어요. 게다가 상금까지 받아서 기분이 아주 좋아요. 엄마가 주는 용돈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는 돈인 것 같아요."

윤지후 학생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학생들이 즐겨 읽는 명작 중에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라는 소설이 있다. 소인국에 들어간 거인의 이야기가 풍자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오늘 내가 본 것은 거인의 초대를 받고 들어온 작은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꼭 다시 태어난 거인 같았다. 비록 한 시간이란 물리적 제약이 있었지만, 학생들의 책을 읽는 모습은 삶의 지혜와 끈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어른인 나는 늘 학생들에게 습관적으로 말한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그러나 오늘의 행사를 보면서 학생들을 위한 충고를 말로만 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뒤통수가 당겼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는 물리적, 정서적 환경과 방향을 보여주는 일에 게을렀던 나를 돌아보았다.

오늘 대회에 참가한 50명의 학생들은 과연 어떤 꿈을 꾸며, 쿠폰으로 무엇을 살까 생각하니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웃으며 흔들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올해 어른을 위한 엉덩이 책 읽기 대회가 있다면 꼭 참가해서 책도 읽고 더 멋진 중년의 꿈도 가득 담아와야지.

태그:#엉덩이로 책읽기, #한길문고, #군산시민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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