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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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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4일 오후 12시 43분]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이 개봉되었다. 강서구 공립 특수학교인 서울 서진학교를 짓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다.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엄마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들을 설득하고, 서로 연대해서 활동한 궤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활동의 주축이 되는 강서 장애인부모회 임원들과 자녀들의 삶을 통해,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는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2020년 3월, 서진학교는 드디어 문을 열게 되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꼭 맞게 지어진 예쁜 학교에 등교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는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에 많은 공헌을 한 강서 장애인부모회 3대 회장 조부용이고, 그 친구의 딸 아이가 주현정이다. 

과거 서진학교 설립을 두고 주민 설명회가 진행됐을 때,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이 무릎을 꿇은 일이 매스컴에 보도된 바 있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뉴스에서도 관련 줄거리가 소개가 되었는데, 영화는 이런 부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삶과 활동을 나누어 기록했다.

그러나 나는 조부용의 오랜 친구로서, 또 그 활동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지켜본 그녀의 삶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딸 아이라고 말하지만 주현정양은 벌써 나이가 서른을 넘었다. 나는 그 친구가 딸아이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마음 고생을 알고 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기 전 어렸을 때는 언어 발달이 느렸는데, 아이가 늦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자폐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친구는 절망하면서도 열심히 뒷받침하면 조금이라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여러 교육 기관과 병원을 전전했다.

아이는 처음엔 일반 초등학교 들어갔다. 일반 학교 교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다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엄마가 몇 년을 복도에서 지냈다. 힘들어하는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의 따가운 눈길을 견뎌야 했다.

아이의 성격이 순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어디를 데리고 가도 생각나는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고집을 부려서 엄마를 곤란하게 할 때도 있었다. 외출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친구가 가끔씩이라도 밖에서 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딸이 구로구의 한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다. 큰딸의 학교 때문에 가족이 강서구로 이사왔으나 강서구 특수학교에 자리가 없어 주현정양은 구로구 특수학교에 다녔다. 친구도 한숨 돌리고 아이도 즐거워하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나이에 특수학교의 교육도 끝난다. 친구의 딸도 그때부터는 학교의 울타리가 없어졌다. 그때부터는 주간에 근로 센터나 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해서 가족과 생활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걱정하는 일은 부모가 늙어서 더 이상 자녀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때가 올거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일은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죽는 일이다. 가까운 미래는 아니지만 분명히 다가올 현실이다.

위대한 엄마들이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학교 가는 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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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2017년 당시 친구의 딸은 이미 학교에 다닐 나이가 지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강서구 서진학교 사태가 발생했다. 장애인 학교가 부족하여 아이들이 멀리 있는 학교까지 매일 통학하는 사례가 많아서 강서구에 있는 폐교를 특수학교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 교육 부지에 한방병원을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을 하고, 주민들도 한방병원을 원한다며 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뉴스에서는 간단하게 나온 설명회 장면이 영화에서는 자세히 묘사된다. 설명회장에 나온 과격한 주민들이 발달장애 학부모들에게 준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식을 혐오대상으로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모욕이었을까.

물론 조용히 이런 행동을 부끄럽게 여긴 주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집값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민낯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필요하지만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님비 현상으로도 여겨져서 보기가 괴로웠다.

그러나 영화는 한쪽의 이야기만 들려주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연출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과격하다고 생각했던 주민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들에게도 알고 보니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특수학교를 짓기로 예정한 부지는 원래 공진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였다. 공진초등학교도 소득을 기반으로 한 차별의 역사가 얽혀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배경이 있는데, 교육 당국에서 서진학교 설립을 설득하며 내건 명분이 '차별 금지'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들의 과거 상처를 건드린 셈이 된 듯하다. 영화를 보니 주민들이 아이들을 미워해서 흥분했다기보다는, 과거의 트라우마 등으로 화가 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명회에서 갈등을 빚던 주민들 앞에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 당시에는 그 모습이 주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집에 돌아간 주민들은 착잡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도 부모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친구나 친척의 자녀들 중에 발달장애 아동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일까.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고 학교는 지어졌다.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엄마들은 연대해서 서로 위로했고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는 맞섰다. 열심히 활동하는 선배 엄마들을 보면서 후배 엄마들은 길을 보았고 더 이상 불행하게 숨지 않았다. 나의 친구는 자신의 아이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학교지만 후배 엄마들과 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써서 봉사했다.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학교에 간다. 학교 가는 길을 닦은 엄마들은 위대하다. 더 많은 장애인 학교가 지어지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이해하기 바란다.

태그:#발달장애인 , #다큐영화, #조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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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글을 쓰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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