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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고등학교 김민정 교사와 학생들이 손 편지를 들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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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때 아닌 '시(詩)' 바람이 일었다. 스승의 날을 앞둔 13일 오전, 전북 순창군의 순창고등학교(교장 양봉철) 전교생 317명은 각자 '시'가 담긴 손 편지를 써서 교직원 40명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손 편지 시'는 독특했다. 선생님이 좋은 이유, 드리는 시 구절(시인, 제목), 드리고 싶은 이유를 또박또박 썼다. 황인혜(3학년) 학생의 '손 편지 시'를 보자.
  

선생님이 좋은 이유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고, 예쁘셔서 좋습니다!"

드리는 시 구절(신갑선, 꽃이 내게로 와서) "꽃보다 아름다운 게 / 이 세상에 또 있다면 그것은 / 꽃보다 더 고와지고 싶고 / 꽃보다 더 귀여움 받고 싶은 / 우리들 마음일 게다 (중략)"

드리고 싶은 이유 "이 시의 '꽃'이 제가 생각하는 민정쌤!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사랑해주시는 '꽃'의 모습이 너무나도 닮아서 이 시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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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이 좋은 이유 "세상에 좋은 데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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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 드리는 시를 고른 이유. "이 시의 "꽃"이 제가 생각하는 민정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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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담은 손 편지를 기획한 김민정 교사를 지난 11일 오전 순창고에서 만났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정을 표현할 기회 자체가 없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스승의 날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부담스러워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외부 활동은 열심히 해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이 표현하거든요. 정작, 학교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관심이나 사랑 표현은 안 하는 거예요. 같이 부대끼는 건 선생님과 학생들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고 해서 '시를 배달하는 손 편지'를 기획했어요."

'시'로 위로하는 '처방 시(詩)'와 '처방전'

김 교사가 스승의 날 편지에 앞서 시도한 시 편지는 따로 있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시를 처방하는, 일명 '처방 시(詩)'와 '처방전'이다.

김 교사는 "처음엔 우리 반 학생들에게 '시로 위로를 주는 편지를 써 보면 어떻겠느냐'고 '시 처방전'을 제안했어요. 학생들이 옆 친구에게는 물론이고 정인이랄지, 미얀마 시민이랄지, 정말 너무나 힘들었을 엄마 등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는 걸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시 처방전을 쓴 조재현(3학년) 학생은 처방전을 드리고 싶은 사연을 이렇게 밝혔다.

"현재 미얀마는 군부 세력이 정권을 찬탈하였다. 그래서 지금 미얀마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잃어버린 민주화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조재현 학생은 도종환 시인의 '벗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를 골랐다.
  
"(전략) 아직은 비록 우리가 소수이고 / 힘 또한 저들보다 적은 듯하여도 / 이 싸움은 반드시 우리가 승리하는 싸움입니다. / 옳지 않은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 거짓된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 어쩌면 이미 이기고 있는 싸움입니다. (중략)"

조재현 학생은 이 시를 처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승리'는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의 재탈환이며, '소수'라는 표현은 국제 사회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을 뜻하고, '거짓된 자들'이라는 표현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을 칭하는 것 같았다. 현실 극복 의지와 격려의 의지가 잘 나타나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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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고등학교 교직원 40명은 개인 평균 8통의 손 편지 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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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적고 손 편지 쓴 건 기적"

'시 처방전'의 작은 울림은 한 반 한 반 옮겨가며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학생들이 쓴 모든 편지를 읽어 본 김 교사는 "학생들이 '선생님이 지나가실 때 미소 한 번에 내가 이 학교에서 인정을 받고 있구나', '지나가면서 부른 제 이름 하나로 학교를 다닐 힘이 됐습니다'라고 썼다"고 내용을 살짝 공개하면서 "선생님들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일이 아이들한테는 큰 힘이 됐구나' 하고 학생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설경주(3학년) 학생은 "솔직히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를 적고 손 편지를 쓸 줄은 몰랐다"며 "정말 기적 같다"고 밝게 웃었다.

조재현(3학년) 학생은 "남학생은 사실 편지를 쓸 일이 별로 없는데, 표현이 서툴 뿐이지 선생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자애들만큼 좋다"면서 "이번이 선생님들께 남학생들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현재 순창고등학교 본관 1층 현관에서는 "삶 속에서 시를 만나다! 시를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詩) 처방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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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고등학교 본관 1층 현관에서는 “삶 속에서 시를 만나다! 시를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시(詩) 처방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하정민(2학년) 학생이 본인의 처방시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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