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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7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해진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왼쪽부터)가 8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4ㆍ7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해진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왼쪽부터)가 8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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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가 민주당의 패배라는 확고한 사실로 막을 내린 후 근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민주당에 송영길 체제가 들어서고 국민의힘도 새로운 지도부 구축을 준비하며 대선을 향해 달려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4.7 보궐선거의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상 선거 평가라는 것이 승리하면 모든 것을 승리 요인으로, 패배하면 모든 것을 패배 요인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가운데 두고 진행된다지만, 이번 선거는 유독 서로 모순적인 때로는 대립적인 평가가 난무했다.

물론 다양한 요인이 개입하는 선거 결과의 해석은 일정한 '추론'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평가의 근거로 의존했던 출구조사엔 사전투표가 빠진 데다 정확한 세대별·성별투표율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지난 한 달을 달군 평가들은 대부분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의도가 담긴 '정치적 해석'에 가깝다.

과잉 단순화의 덫 : 세대론

대부분의 선거 평가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세대', '하나의 표심'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이전의 다른 선거에 비해 복합적 이슈가 뒤섞여 있고 집권 여당에 대한 불만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치솟는 집값에 대한 분노로 야당을 찍었을 테지만, 어떤 사람은 '더 치솟는 집값'에 대한 기대로 야당을 찍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젠더 감수성이 없는 여당에 분노해 야당을 찍었을 테지만, 어떤 사람은 여당이 친페미니즘 세력이라며 야당을 찍었을 것이다.

불확실한 통계에 의존한 평가가 가지는 문제는 이런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다양한 인간의 행위를 단 하나의 요인으로 단순화시켜 버린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거평가가 이 출구조사 그래프를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출구조사는 사전투표 결과가 누락되었고 연령대별 투표율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한계가 크다. 그럼에도 이에 근거한 20대 보수화와 젠더 차이에 대한 담론이 넘처나고 있다.
▲ 문제의 출구조사 대부분의 선거평가가 이 출구조사 그래프를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출구조사는 사전투표 결과가 누락되었고 연령대별 투표율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한계가 크다. 그럼에도 이에 근거한 20대 보수화와 젠더 차이에 대한 담론이 넘처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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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주목받은 것은 '청년'과 '젠더' 변수다. 선거 평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제의 출구조사를 보자. 방송3사의 출구조사 중 연령대별·성별 지지율을 분석한 이 그림은 20~30대(소위 MZ세대)가 보수화되어 집권당을 심판했으며, 그 내부는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공정에 대한 불만과 젠더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십대 남자'(이대남) 담론이 언론을 장식하고 보수야당은 이대남의 지지를 얻어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에 발맞춰 청와대는 지난 4월 27일 이철희 정무수석이 단장을 맡는 청년TF까지 만들었다.

세대 분석은 차별적 경험을 공유한 연령집단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치 성향의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즉, 세대 분석은 연령집단 간 상대적 차이를 드러낼 뿐이지, 특정 집단 자체의 정치 성향을 규정하는 용도가 아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확하다. 모든 세대는 다양한 성향과 가치가 공존하는 이질적인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령 집단 간의 상대적 차이와 개인의 표심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만일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 차이가 페미니즘 때문이라면, 여당 자치단체장의 성추문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왜 20대 남성은 야당을 택했고, 20대 여성은 여당을 더 많이 지지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여권의 고정 지지층이었던 20대 여성이 여당의 성추문 대응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한 것이 패배 원인이라는 해석도 다른 성별과 세대에 비해 20대 여성의 여당 지지 하락폭이 비교적 크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이런 해석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은 홍수처럼 쏟아진 선거 평가들이 언론에 의해 포장된 담론 이외의 '제3의 변수'들을 너무나 많이 누락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문재인 정부 국정지지율을 전체 평균과 20대 남성, 20대 여성을 나눠 비교한 그래프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격차는 일관되게 유지되지만, 전체 지지율과 거의 유사한 추이가 지속되고 있다.
▲ 문재인 정부 국정지지율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문재인 정부 국정지지율을 전체 평균과 20대 남성, 20대 여성을 나눠 비교한 그래프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격차는 일관되게 유지되지만, 전체 지지율과 거의 유사한 추이가 지속되고 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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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하나 더 보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체 국정지지율과 20대 남성과 여성 지지율의 추이를 비교한 그래프다. 통계는 절대적 수치보다 추이가 더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에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격차는 일관되게 유지되지만, 전체 지지율과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각 세대가 차별적인 방식으로 반응했다기보다 오히려 비슷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청년 세대에게만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다양한 이슈들이 사실은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진보와 보수 자체가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개념이고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지지 여부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은 일단 접어두고, 전통적 방식에 의존할 때 2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 비해 정치적 측면에서 일관된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미투 운동이 전개되고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부활한 문재인 정부에서 나타난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박근혜 정부 전체 국정지지율과 20대 남성과 여성의 지지율을 나눠 비교한 그래프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과 유사하게 젠더 격차는 확인되지만, 20대 지지율의 추세는 문재인 정부보다 동조화 비율이 떨어진다.
▲ 박근혜 정부 국정지지율 추이 한국갤럽이 조사한 박근혜 정부 전체 국정지지율과 20대 남성과 여성의 지지율을 나눠 비교한 그래프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과 유사하게 젠더 격차는 확인되지만, 20대 지지율의 추세는 문재인 정부보다 동조화 비율이 떨어진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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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부의 국정지지율과 비교해 보자. 젠더 이슈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던 당시에도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전체 지지율과 20대 지지율 추이의 동조화 정도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보다 더 떨어진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 시기의 청년이 문재인 정부의 청년보다 이슈에 대한 반응의 독립성이 더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성향 차이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며 소위 MZ세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20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고 해서 당시 20대 남성이 보수적 성향을 보였던 것도 물론 아니다. 집단 간의 상대적 차이를 집단 자체의 성격으로 환원해 버리는 것은 세대론이 현실을 호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17년 19대 대선 직전 갤럽이 진행한 연령별·성별 대선후보 지지율 표를 보자.
  
19대 대선 직전에 조사된 대선후보 지지율이다.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이나 30~40대에 비해 문재인 후보를 가장 덜 지지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대 남성 내에서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상대적 차이를 절대적 성격으로 호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세대론의 오용 사례다.
▲ 19대 대선 직전 대선후보 지지율 19대 대선 직전에 조사된 대선후보 지지율이다.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이나 30~40대에 비해 문재인 후보를 가장 덜 지지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대 남성 내에서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상대적 차이를 절대적 성격으로 호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세대론의 오용 사례다.
ⓒ 한국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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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전체 지지율은 물론 50대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들이 보수적 집단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20대 남성 집단 내부에서 문재인 후보는 독보적인 지지율 1위였다. 그렇다면 당시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이 보수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지금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이 32%라고 해서 "국민의 68%가 윤석열 전 총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지는 않는다.

세대별 차이의 근원

다른 세대와 20~30대 정치 성향의 차이는 좀 더 구조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80년대에 30% 내외에 머물던 대학진학률이 폭발적으로 높아져 70%를 향해가던 90년대는 전문대를 포함해 전국 거의 모든 대학이 운동권 학생회의 영향력에 놓인 시기와 겹친다.

90년대 중반 일련의 공안사건으로 학생운동이 쇠퇴할 때까지 기성세대의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항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대학을 다닌 이 세대는 외환위기를 전후해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논리 속에서 기업화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청년실업의 첫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이 (전통적 의미에서) 가장 일관된 진보 성향을 보이는 97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70년대생), 즉 지금의 40대다.
 
대학생수는 교육통계서비스의 고등교육기관 학생 수 자료 중 일반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 전문대학을 합한 수치다(대학원, 기타 제외). 2011년부터 대학진학률이 낮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대학합격자기준에서 대학등록자 기준으로 조사 지침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 대학진학률 추이(1980~2019) 대학생수는 교육통계서비스의 고등교육기관 학생 수 자료 중 일반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 전문대학을 합한 수치다(대학원, 기타 제외). 2011년부터 대학진학률이 낮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대학합격자기준에서 대학등록자 기준으로 조사 지침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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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등장한 MZ세대에게 대학은 '원래부터 그랬던' 각자도생의 경쟁체제가 일상화 된, 기업화 된 공간일 뿐이다. 그렇다고 MZ세대의 이런 가치 기반이 보수적 정치 성향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MZ세대의 정치 성향은 노무현 정부 후기에 보수적 성향이 강해진 후(2007년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2.5%가 이명박 후보를, 15.7%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2008년 이후부터 조금씩 진보적 성향이 강해지다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에는 다시 보수적 성향이, 2013년을 전후해 다시 진보적 성향이 강해지는 등 주요 정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이것은 이 세대가 일관되고 고정된 정치 성향을 보이기보다 사회 여론의 변화 추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MZ세대에게 과거의 학생운동처럼 일관된 세계관을 부여하는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 하나의 예외는 군대다. 20대 남성에게 2년 정도의 시간에 특정한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군대가 유일하다. 과거에 비해 권위적 문화는 희석되었지만, 반중·반북 문화와 반페미니즘적 성향은 이 공간에서 확고하게 공유된다. 과거처럼 군대가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영향에 대항할 학생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20대 남성의 군대 경험은 현실의 불만을 특정한 대상에게 표출할 수 있는 유력한 기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세대 내부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나 "대학을 포기한다"라는 담론이 존재하다가 일베류의 담론이 등장하며 각축했듯, 목소리가 큰 쪽이 세대 담론을 대변해 왔다. 언론은 이를 취사선택해 증폭함으로써 자기의 생각보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반응을 보이는 동조효과(conformity effect)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20대 남성의 투표에는 젠더 평등을 위한 조치들이나 페미니즘 운동의 활성화에 대한 반감이 반영되었을 수 있고, 이른바 기성세대의 이익추구적 행동과 '돈 놓고 돈 먹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반영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청년 세대의 특별한 반응이라기보다 전체 여론의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20대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대에 걸쳐 표출된 반(反)민주당 정서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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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하게 형성된 민주당에 대한 적대

결과적으로 이번 보궐선거가 확실하게 알려주는 단 하나의 결과는 올해 3월에 접어들면서 민주당에 대한 적대가 확고하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상충되며 모순되는 이유들이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목표 속에 결합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첫째, 확고하게 형성된 적대가 가지는 힘은 그 목표(민주당의 완전한 패배)가 달성되기 전까지 내부의 차이를 무(無)화 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을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서로의 평가와 해석이 달라도 '공동의 적' 앞에 힘을 모으지만,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항상 '적을 이길 가능성이 가장 큰 세력'이다.

진보정당은 민주당에 대한 적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독자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적대의 효과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국민의힘)이 흡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06년 한미 FTA 추진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와 진보정당이 확고한 대립각을 세웠지만, 진영 내부의 갈등처럼 외화되면서 두 정당의 지지율이 공동 하락한 현상과 비슷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적대의 이유가 다른 선거에 비해 유달리 매우 다양하며 대립적이기도 한 것은 민주당 전략의 모호성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것은 민주당이 진영 논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조차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부동산 정책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남발하는 민주당의 정책은 일관적 정책 기조와 방향을 지향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여론에 반응하는 대증요법에 머물렀다.

이것은 민주당의 능력 부족이거나 의지 부족일 텐데, 사태의 안정적인 관리만 원할 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들이 반복됐다. 개혁을 표방하면서도 개혁 담론을 주도할 수 없는 것은 개혁 의지의 모호함 때문 아니었나?

김종인의 국민의힘은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기존 강성 지지층이 추구하는 반대 방향으로의 선회를 추동하고 당내 반발을 강한 리더십으로 제압하며 보궐 선거 승리를 일궈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이런 전략을 따라 하기도 쉽지 않다. 정체성의 모호함이 불러온 혼란과 패배를 더 큰 모호함으로 돌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4대 개혁입법 통과에 실패하고 침체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 제안은 오히려 당시 한나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크게 벌리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한길리서치에서 조사한 노무현 정부 시기 정당 지지율. 2004년 4대 개혁 입법의 좌절 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감소세를 보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발언 이후 격차가 더욱 커진다. 진보정당은 2006년 한미FTA를 계기로 노무현 정부와의 적대를 강화했지만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 노무현 정부 시기 정당지지율(2004~2007) 한길리서치에서 조사한 노무현 정부 시기 정당 지지율. 2004년 4대 개혁 입법의 좌절 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감소세를 보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발언 이후 격차가 더욱 커진다. 진보정당은 2006년 한미FTA를 계기로 노무현 정부와의 적대를 강화했지만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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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패배의 원인을 계파(문파) 정치로 규정하는 논리도 타당성은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스럽다. 잘못된 판단과 행동의 결과를 공개하고 평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계파 낙인찍기가 개혁의 동력으로 작동한 전례가 없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문자폭탄 논란이 일어났지만, 이것은 민주당 내부의 문제일 뿐이며 대중적으로는 민주당 리더십의 붕괴를 보여주는 신호탄일 뿐이다.

그렇다고 중단없는 개혁을 추진할 동력도 이미 상실했다. '중단없는 개혁'이 뭘 말하는지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도 적대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개혁의 콘텐츠가 없다.

오히려 이미 서울시에서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국민의힘은 박원순 시장의 업적을 하나하나 붕괴하는 전략을 통해 소위 '문재인 정부의 적폐' 프레임을 강화하는 공세를 취할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마을공동체(주민자치회), 사회적 경제, 시민단체에 대한 노골적이며 교묘한 공세를 하고 있다.

프레임 전환은 가능한가

송영길 체제의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복합적 원인을 하나의 원인으로 귀속시키는 허구적 선거 평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국민적 개혁 동력이 사라진 조건에서 '적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거대 여당의 힘으로 합의가 부족한 개혁을 밀어붙이기보다 차기 정부의 개혁과제를 국민화하는 전략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것은 세력 중심의 구도 재편을 넘어 담론 중심의 재편 과정으로 전환하는 과제인 동시에 세부 정책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이 정책들이 지향하는 방향, 즉 비전을 대중화하는 과제다. 결국 현재의 구도를 흔들고 내년 정권 교체 초기 시점에 개혁과제 추진에 집중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지난 15일 노르망디 시장들과 사회적 대토론을 나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019.1.15
 지난 15일 노르망디 시장들과 사회적 대토론을 나누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019.1.15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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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할 만한 사례는 프랑스다. 이른바 '노란조끼' 시위로 위기에 몰린 마크롱은 2019년 기후시민의회를 조직했다. 성별·연령·지역 등 인구 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한 150명의 시민의원이 기후위기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었고, 하원에서 헌법 1조에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의무로 명시하는 조항을 가결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도 유사한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이들 나라처럼 기후위기를 주제로 시민의회를 주도할 수도 있지만, 사회 각 영역의 대안 의제를 국민들이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87년 체제의 한계가 드러났지만 이를 해결할 대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아 생긴 병목 지점에 정책의 한계와 정치적 실패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MZ세대의 '배타적 능력주의'를 수용하기보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경쟁적 교육체제를 손봐야 하고, 이는 대학체제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한다. 이를 위한 다양한 대안들도 이미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 의료 체제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으며 전국민고용보험제와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린뉴딜과 탄소 제로 계획에 대한 비판과 대안도 존재한다.

대선을 앞두고 잘 정리된 매끈한 대안을 정치 상품처럼 제기하기보다 이것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을 국민적 프로세스로 진행한다면 적대에서 대안으로의 프레임 전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존재하는 대안(선수)을 발굴하고, 이것이 분출되는 무대(공론장)가 존재해야 하며, 담론 간 차이를 토론하고 선택할 심판(국민)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대중적 기획은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 넓은 지평에서 진행되지 않으면 민주당 내부 프로젝트에 그치며 확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성정당 논란에서 보궐선거 출마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한 연대의 고리와 신뢰가 상당히 약해졌으며, 넓은 의미의 개혁진영 역시 담론의 주도력이 약화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 이후 청와대 주도의 정국과 21대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 이후 제도 정치의 주도력이 강해지면서 시민사회나 사회운동의 주도력이 약화하거나 주변화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프레임 전환을 위한 기획은 강력한 주체역량을 조건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실현 결과로 강력한 주체 또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오른쪽)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당기를 전달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오른쪽)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당기를 전달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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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인가, 전진인가

송영길 체제의 민주당이 현명하다면 하나의 국민, 하나의 세대를 전제로 한 추상적인 평가와 해석에 골몰하기보다, 퇴행적 대중여론에 편승하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립하며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보다는 비전이다. 작은 정책들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이것이 실현되면 어떤 시대가 올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등에 주력한다고 했지만, 비전 없이 정책만 제시한 채, 게다가 여기에 개별 욕심들이 가미되면서, 이것이 새로운 검찰과 언론을 만들려는 것인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도구적 정책인지 모호해지고, 오랫동안 쌓인 관행적 문제와 적폐들까지 끼어들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바로 그 틈을 비집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움직임이 부활하고 있다. 비극이다.

태그:#4.7보궐선거, #MZ세대, #선거 평가,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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