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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에 이어 2020년 12월말, 서울 마포구가 다시 홍대 지역 중심의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에 발족된 홍대관광특구 대책회의가 생각하는 홍대관광특구의 문제점과 홍대앞의 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공개하려 한다. [편집자말]
지난 2월말, 네스트나다 등 홍대앞 라이브클럽에서 열리기로 한 공연이 마포구청에 의해 취소된 사건이 있었다. 공연 당일 방문한 관계자의 '서울시 방역지침 개정'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고, 이후 한 보도에서 일반음식점에서의 공연을 '칠순 잔치'에 비유한 구청 관계자의 발언이 공분을 일으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공연시설이 있는 일반음식점에서의 공연을 일괄적으로 금지한 방역지침에도 문제가 있지만, 사전에 공연 가능 여부를 문의했음에도 공연 당일 현장에 방문하여 공연을 취소시킨 것이나 관내 공연장 형태로 운영되는 일반음식점 업태의 현황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한듯한 칠순 잔치 발언은 그동안 마포구청이 보여준 홍대앞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포구는 2016년에도 홍대 관광특구를 추진한 바가 있다. 당시 내가 참석했던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한 주민이 특구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 예상되고, 이는 임대인들,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텐데 이에 대한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 담당과장은 '임대료 상승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잘라 말하는 걸 목도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사실상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지자체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주민의 질의에 대해 일언지하로 잘라 말하는 담당과장의 태도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있다.

작년 홍대 관광특구를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9월 즈음 구청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었다. 마찬가지 관광특구 추진으로 인한 부작용과 악영향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이 자리에 참석한 모 의원은 '동네 집값이 비싸다는 건 살기좋다는 반증이다'라고 스스럼없이 발언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누군가는 집값, 땅값, 건물값이 오르는 게 좋은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바로 부담이자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주민 대다수는 후자에 속할 터인데, 집값이 오르면 과연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동네가 된다는 것일까?

앞선 나의 물음에 대해 나는 '배제와 차별 없이 다양성이 인정되고 함께 공존하며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친구들이 곁을 지키고 있는 곳이 홍대, 마포 지역이라 체감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의원님 말씀대로 집값이 비싸지고 임대료가 올라가면 내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동네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게 나의 결론인데, 나의 생각은 틀린 것인가?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마포구는 예술인 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공인(?) 예술인 숫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선도적인 민간 활동으로 유명한 곳이다. 홍대앞으로 대변되는 대안, 독립적 문화예술, 성미산이란 키워드로 설명되는 마을공동체 활동,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영역, NPO, NGO 등 비영리 시민단체의 소재지로 유명한 곳 또한 마포 지역이다.

마포가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수평적인 관계 맺기, 새로운 시도에 대한 관용, 다름에 대한 포용 등의 문화적 저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포는 선도적인 민간 영역 활동으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으나, 매우 경직되고 보수적인 구청 행정의 성격으로 인해 민간과 행정의 불균형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경로로 이러한 불균형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것이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인지 혹은 이 조직이 갖고 있는 개별의 문제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지역 정치구조의 경직성이 그 원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지역정치는 중앙정치판에서 활동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정점으로 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순으로 줄 세워지는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류정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그 지역 정치에 있어 대부분의 전권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역의 현실과 문제에 대한 관심과 민의를 받아 안는 것보다 지역구 보스에 대한 충성이 먼저면 연임이 보장되는 구조안에 놓여 있다.

행정 또한 선출직 단체장과 지역 의원들의 성향과 정치행위들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주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치구 단위 정치 행정의 정책 실효성은 낮아지게 되어 있다. 그간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볼 때 이러한 폐해의 대표적 사례로 마포구를 꼽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관광특구의 부작용이나 문화예술계에 끼칠 해악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가 있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맹점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우리의 캠페인에 동참한 사람들 뿐 아니라 제도 입안의 당사자들 중에서도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구청은(정확히는 구청장과 지역의 정치인,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주민조직들은) 홍대 관광특구 추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내세우는 추진 목표가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걸 살펴보면 그 이유가 짐작이 되긴 한다.

논리는 명쾌하다. '관광특구 지정->관광객 증가->지역상권의 부활->홍대 명소화 달성'.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근데, 그게 이렇게 쉽게 성립 가능한 과정이고 달성될 수 있는 목표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이 이리 간단하지 않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엮여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대해 마포구청은 거의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속전속결로 서울시에 홍대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하고 말았다.

지역 정치와 행정의 문제

얼마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개념 중에 민관거버넌스, 민관협력이 있다. 민관협력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그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장점은 이를 통해 제정과 실행에 있어 현장과의 거리와 시차를 줄일 수 있어 정책의 디테일과 실효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정행위에서 매우 중요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력 내지 거버넌스는 서로 다른 주체들 간의 토론과 조정 합의를 이뤄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최대한 다양한 주체들과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행정 친화적인-문제제기를 하기보다 일단 협조적인-민간세력과 간단한 과정을 거쳐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여기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집행하는 자원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집행 주체가 집행에 있어 고민해야 할 것은 집행의 속도 내지 단기간의 성과가 아닌 그 효과가 최대한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공공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성의 가치 아래 성과와 실효성이 자리잡고 있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지만 거버넌스든 민관협력이든 주민의견수렴이든 그 모든 절차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길을 찾아 기획하고 실행해오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월을 지나온 자치단체의 대표적 사례가 마포구청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인간은 욕망이 지배하는 동물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과 사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우리가 늘 인간으로서 내세우는 이성이란 개념도 사실 주체 못할 욕망의 대립항으로 그저 설정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만큼 이성보다는 욕망이 앞서는 사례와 현실이 훨씬 익숙하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나 욕망은 무한하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이다. 이토록 무한한 욕망을 모두 드러내고 산다면 사회는 존립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정치와 행정이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나는 욕망을 조정하고 공통의 합의를 만들어내어 사회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홍대 관광특구 추진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포의 정치권과 행정에게 단지 관광특구 추진 중단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대 관광특구의 문제는 지역 정치와 행정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너지의 불꽃은 살아있다
 
필자가 직접 찍은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지역의 거리 풍경.
 필자가 직접 찍은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지역의 거리 풍경.
ⓒ 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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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바는 다음과 같다. 실효성이 담보되지도 않고, 이미 구시대적이라고 평가되는 특정 구획을 지정하여 개발하는 특구 제도는 접어두고, 구청, 지역 정치인, 상인, 주민들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그토록 '소중한 홍대앞'이 어떤 곳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 미래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긴 호흡으로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 형식과 진행 방식은 어떻든 상관없다.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끈기와 노력,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최대한 많은 홍대앞 사람들이 모여 이 지역에 대한 정의와 가치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홍대앞은 진정으로 모두에게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내가 지역 정치와 행정에 바라는 것이다.
   
몇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며 카스트로라는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곳은 미국 최초의 성소수자 정치인인 하비 밀크라는 인물이 시의원으로 활동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생애는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또한, 카스트로 지역은 소위 게이빌리지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 곳을 찾아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처에 걸려 있던 무지개 깃발과 플랭카드들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무지개는 이제 다양성과 소수자 인권의 상징이 되어 있다. 게이빌리지로 유명한 이 곳에 무지개 깃발이 넘쳐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카스트로 지역의 가치는 단지 소수자에 대한 관용,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다름에 대한 관용과 포용은 실험과 시도의 가능성을 높여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를 고려할 때 홍대앞, 마포 지역이 다름에 대한 관용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와 도전이 넘쳐나는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에너지의 불꽃은 살아있다.

이런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그래서 새로운 세대들이 그 에너지를 발판삼아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것들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홍대앞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 관광특구는 홍대앞의 미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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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대관광특구, #관광특구는홍대앞의미래가아니다, #홍대앞, #홍대관광특구반대, #관광특구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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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여섯개의 달' 활동중. 음악인들의 노동조합 '뮤지션유니온' 위원장과 홍대앞 문화예술계의 대표체 '홍대앞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뻗어나갈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거쳐 현재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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