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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 등이 2020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일하다 죽은 2400명을 상징물 세우고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 해고금지, 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열고 있다.
 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 등이 2020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일하다 죽은 2400명을 상징물 세우고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 해고금지, 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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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모든 노동자의 산재보험을 위한 현장 증언 및 제도개혁 토론회'에서 온라인 증언자로 참석한 산업재해 피해자 이아무개씨가 한 말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했던 이씨는 2018년 2월 만 36세의 나이에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바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도 진행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암세포가 고관절 뼈로 전이됐다. 이씨는 통증과 염증, 탈모, 발톱 빠짐, 설사, 우울증 등 부작용이 찾아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아픈 이씨에게 '취업이 가능하다는 소견으로 휴업급여가 통원날짜에만 지급된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이씨가 담당 의사의 '취업 불가능' 소견을 받아 근로복지공단 본부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심사위원회는 심사청구 자체를 기각했다. 과정에서 이씨는 다른 특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는 현재 암세포 전이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다시 한번 근로복지공단 재심사 청구를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반올림 등이 주관해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가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라면서 "산재보험 신청 절차의 간소화를 이루고, 환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받고 재활하는 것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근로복지공단 등이 소통하고 사후 정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 따르면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관리하는 공적 보험이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이 5.16군사정변 후 민심 안정과 사회보장제도 확립을 이유로 1964년 7월부터 실시했다.

"산재보험, 무엇이 문제인가?"
 
30일 민주노총에서 산재보험 제도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하는 권동희 노무사.
 30일 민주노총에서 산재보험 제도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하는 권동희 노무사.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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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는 산업현장에서 산재보험을 직접 다루는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발제자로 나선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소속 권동희 노무사는 "어떠한 사업주도 쉽게 산재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서 "현장 노동자는 산재를 신청할 방법도 권리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권 노무사는 "우선 신청서식의 간소화부터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산재보험법 116조는 사업주의 조력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보험급여를 받은 자가 사고로 보험급여 청구 등의 절차를 행하기 곤란하면 이를 도와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조력의무를 위반해도 사업주에 대한 제재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바꿔 말하면 사업주가 모른다고 배 째면 입증책임이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권 노무사는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정말로 노동자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원하는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보험급여 지급과 산재판정을 한 곳에서 하다 보니 노동자에게 군림하는 태도를 보인다. 산재보험을 시혜적이고 수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장에 함께 있던 오태웅 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과장은 "시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실무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산재보험제도가 현장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반론했다.

이날 권 노무사는 산재보험의 단기적 변화를 위해 ▲ 사업주가 자료제출을 게으르게 협조할 시 벌금형을 부과하고 ▲ 진단서와 소견서만으로 산재보험 신청을 가능케 하며 ▲ 산재보험 비급여의 완전 급여화 및 간병료의 인상 및 현실화 ▲ 선보장 후정산의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산재, 역학조사만 3년"
 
30일 민주노총에서 산재보험 제도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30일 민주노총에서 산재보험 제도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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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소속 이종란 노무사도 "현재의 노동자 신청주의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처럼 병원에서 자동 적용되는 산재보험이 필요하다"면서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느라 해고압박 등 곤란을 겪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산재법 시행규칙상 처리기한이 7일이다. 그런데 실상은 몇백일 혹은 몇 년씩 걸린다. 실제로 직업성 질환의 경우 역학조사만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도 걸렸다. 2017년 10월에 신청한 삼성전기 백혈병 사건은 여전히 역학조사 중이다. 그사이 노동자들은 해고위협에 시달리고 경제적 이유로 가정은 파탄 난다."

이 노무사는 특히 "어렵게 산재를 인정받아도 각 보험급여 적용을 위해서는 또다시 신청과 증빙, 승인의 과정이 반복된다"면서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 각각의 산재보험 종류와 내용, 신청방법 등에 대해 재해노동자가 모두 알아서 신청해야 한다. 이 부분도 노무사나 변호사의 도움 없이 노동자가 스스로 신청할 수 있도록 복잡하지 않게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태웅 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과장은 "실제 산재 보험제도를 집행하는 입장에서 깊이 새겨듣고 고민하겠다"면서 "산재보험은 점점 사회보험의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에 따라 보호영역이 확장되고 법과 제도도 정비될 것이다. 다만 보호대상 확대와 지속성 유지를 위해 재정 안정화가 고려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2020년) 7월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산재보험 가입장 현황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산재보험 가입장은 262만 3022곳으로 파악됐다. 같은 시기 2019년 257만 8703곳보다 4만 4000여 곳 이상 늘어난 수치다.

태그:#산재보험, #토론회,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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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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