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8 18:59최종 업데이트 21.04.2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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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지빠귀 소리가 들리는 시골의 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새소리는 더 명확하다. ⓒ 최수경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이 잠이 달아났다. 이리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저 새는 과연 어떤 새일까? 새소리에 홀려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몰래 내리고 있다. 새 소리는 왼쪽 산과 오른쪽 산에서 번갈아 난다. 봄밤에 암수가 서로 몹시 그리운가 보다. 무려 두 시간여를 화답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루에 앉아 새소리가 나는 산의 윤곽들만 교차 응시하다 오싹한 기온에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베갯잇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새소리 못 들을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새소리에 취하니 비몽사몽간 내가 화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휘오~
 

호랑지빠귀 어미와 아기들 귀신 소리를 낸다는 호랑지빠귀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새 소리는 새벽 네 시 경에나 그쳤다. 하도 그 경험이 특별해 어떤 새의 소리인지 수소문하니 호랑지빠귀란다. 호랑지빠귀를 귀신 새라고도 한다는데 이 녀석이 내는 소리가 귀신 소리 맞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소리였다. 까만 밤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올 때 둥근 달이 내는 소리로 기억한다.
 

큰소쩍새 여름철새인 큰소쩍새는 설치류를 먹는다. 암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돌볼 때 수컷은 쥐를 잡아다 늘어놓는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날이 5월로 향해가니 새소리가 더 다채롭다. 그간 나의 탐조 패턴이 새의 구조와 동태를 파악하는 시각적 활동에서 소리 듣기라는 청각적 활동으로 옮겨가니, 새소리를 경험하고자 숲에서 새벽을 맞이하길 자주 한다.

동 트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점차 고요를 깨고 새들의 소리가 요란해졌다. 어떤 새인지, 대체 몇 마리인지 인식할 수 없는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은 흡사 새들의 합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 들었던 새들의 노랫소리를 녹음해 주변에 물어보니, 흰배지빠귀, 호랑지빠귀, 소쩍새, 뻐꾸기, 박새 등등의 협주곡이었다.
  

새 먹이 주며 새 소리 감상 손에 모이를 놓고 눈을 감고 새를 기다린다. 주변 새소리를 들으며 새의 감촉을 기다리는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산새 소리 효과

산새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좋고 유쾌하다. 청각으로 느껴지는 소리의 진동은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생리적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소리에 대한 청각적 선호도는 활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데, 자연이 내는 단일 음 가운데 물소리, 새소리가 대표적이다. 물소리는 기분이 좋고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이미지로, 새소리는 듣기 좋고 유쾌하여 기분 좋은 소리로 인식이 된다.
    

야생조류에게 먹이주기 인간과 새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힘으로써 야생조류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새소리는 마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이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 오죽하면 새소리를 새들의 노래라고도 부르겠나. 노래란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부를 수 있게 만든 음악을 말한다. 새가 음악을 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실제 유전 차원에서 새들이 노래를 부르는 두뇌 부위는 인간의 발성 부위와 닮았다고 한다. 그런 능력을 가진 새들이 다른 새들보다 인간을 더 닮았는데, 그 두뇌 부위의 인간 유사성 측면에서는 인간 외의 영장류들도 조류를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꾀꼬리, 앵무새, 벌새 등의 노래 학습 패턴이 인간의 언어 구성 학습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여름철새인 뻐꾸기 뻐꾹뻐꾹 운다고 해서 뻐꾸기. 탁란을 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일찍부터 음악가들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작품에서 다루었다. 베토벤 전원교향곡 2악장에 등장하는 뻐꾸기나 하이든의 종달새처럼, 악기로는 플롯이나 피콜로가 새들의 소리를 표현했다.

새벽 산새들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2악장이 생각났다. 호른이 새벽 동을 틔우고, 오보에 클라리넷 플롯 현악기 순으로 새소리를 반복하는 듯했다. 현악기도 높은 악기 한번 낮은 악기 한번, 숲의 새소리들로 가득 찬 신세계를 표현하는 듯했다.

앙드레 류(André Rieu)가 연주하는 '나이팅게일 세레나데'(Nightingale Serenade)를 들으면 인간이 만들어낸 찬란한 음악 예술에 단일 음인 자연의 소리가 얼마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지 위대하기만 하다.
 

한탄강 겨울철새 관찰 야생조류 탐조인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철원 지역에서 사람들이 겨울철새와 두루미를 탐조하고 있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새와 가까워지자

새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새와 새의 서식지 보존에 관심을 두는 것이며 자연과 친해지기 쉬운 매우 건전한 문화를 조성함을 의미한다.

탐조가 좋은 예인데 이는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성취, 감상, 환경 보호라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영국은 탐조 인구가 100만 명, 미국은 5천만 명, 일본은 10만 명에 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천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한국에 '탐조 협회'가 필요한 이유, <한겨레> 2018.12.13).
 

다양한 새의 둥지 한탄강자연학교 도연에서는 새와 가까워지기 일환으로 재미있고 다양한 인공 새둥지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최근 전문가 영역으로 여겨졌던 탐조가 국민의 환경 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연과 동화되는 취미 생활로, 생태 관광의 중요 자산으로 자리 잡으며 저변이 넓혀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또한 겨울 철새 먹이 주기, 인공 새집 달기, 새들의 유리창 충돌 방지를 위한 노력, 시각적 탐조에서 소리 풍경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인공연못에 놀러 온 원앙 숲 속 물가에서 볼 수 있는 원앙을 위해 산중에 인공 연못을 조성하고 탐조객들이 원앙을 관찰하도록 했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새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물리적 거리를 둬야 한다. 오히려 거리가 가까워지면 새는 인간을 피해 날아가 버린다. 새가 인간을 피해 날아가는 거리를 '도피 거리'라고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회피하는 거리'와 사람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거리인 '경계 거리', 비둘기처럼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거리'가 있다.
 

까막딱따구리 까악~ 하고 우는 까막딱따구리. 새소리와 함께 딱따구리의 구멍 파는 소리도 선물과 같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새는 산림 지역을 은신처로 이용하기 때문에 은신처의 존재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인간에 의한 방해 요인이 많다고 해도 지역 주변에 안정적인 서식지가 존재한다면 다소 훼손된 지역이라도 조류서식지 복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다. 인간에 의해 방해받은 조류가 은신처로 이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서식지는 최대한 근거리에 위치하고 많은 지역이 존재할수록 이들의 생존에 유리하다.
  

산새 탐조와 새소리 듣기 새와 친해지기의 일환의 자연체험 프로그램. 새들이 인공먹이통에 다가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방 안에서 관찰하거나 새 소리를 듣는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나는 굳이 쌍안경으로 탐조하지 않아도 귀만 열면 가능한 청각적 탐조, 즉 새소리 듣기에 관심이 크다. 탐조는 새 도감으로 동정(생물조사에서 명칭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새의 울음소리만 듣고 어떤 새인지 안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렵다.

"구구구구, 까악 까악, 꼬꼬댁 꼬꼬, 꾀꼴 꾀꼴, 끼룩 끼룩, 따옥 따옥, 뜸북 뜸북, 부엉 부엉, 지지 배배, 뻐꾹 뻐꾹, 소쩍 소쩍" 이런 새 울음소리는 흉내말로 소리와 모양을 가늠하지만, 호로로로 호로록, 호호호호리오~~ 삐빅삐빅~ 이런 소리는 당최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호호호혹 우는 소리에 '홀딱 벗고'라고 흉내말을 붙여 검은등뻐꾸기를 인식하게 하겠나.
  

인공둥지 속의 박새 아기들 초소형카메라를 설치해 박새의 육추를 기록했다. 아기새들의 울음소리는 성조의 울음소리와 다르게 복잡하고 변이가 다양하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더욱이 산새들의 번식기 울음소리는 차이가 크다. 경쟁과 번식 전략상 지속적인 번식기 울음소리와 다양한 레퍼토리가 없이는 암컷의 포란(알을 따뜻하게 하거나 보호하는 행위)과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움)를 유지할 수 없다.

암컷을 유혹하고 세력권을 차지하기 위해 복잡한 번식기 울음소리를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어린새는 성조의 소리 번식기 울음소리를 듣고 학습에 의해 발달시켜 나가는데, 어린새들은 아직 완성이 안된 만큼 완벽한 성조의 소리보다 더 복잡하고 변이가 다양해서 전문가마저 가늠하기 힘들다.
   

새들이 파놓은 구멍을 터전으로 삼은 하늘다람쥐 굵고 오래된 다양한 수종이 섞여있는 혼합림에 서식하는 하늘다람쥐.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 328호.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굵고 오래된 나무를 걷어내고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산림청 정책이 화두다. 특히 태양광 전력 생산이나 아파트와 도로 건설 등으로 도심 곁 숲이 감소하고 있다. 깊은 숲, 울창한 숲처럼 서식지의 면적이 클수록, 면적이 증가함에 따라 미세 서식지의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다양한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치가 점유하여 분변으로 얼룩진 도시 공원의 의자 도심 공원처럼 단편화된 서식지에서는 까치와 비둘기, 참새 소리만 들리기 쉽다. ⓒ 최수경

 
그러나 새들의 서식지 면적이 줄면 새들의 서식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도심 공원처럼 단편화된 서식지에서는 까치와 비둘기, 직박구리와 참새 소리만이 새소리의 전부가 되었다.
  

여름철새인 후투티 외래어가 아닌 순 우리말 이름이다. 훗~ 훗~ 하고 운다고 해서 후투티다. 머리의 깃털이 수려하여 인디언 추장새라고도 부른다. ⓒ 한탄강자연학교 도연

 
굳이 숲이 아니라도, 오래된 아파트 숲 혹은 공원에서 새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누가 알겠나. 여름새 후투티(인디언 추장새라고도 부른다)가 찾아와 인디언의 신호를 보내고 갈지. 꽃 이름 알려주는 앱처럼 새소리 검색 스마트폰 앱이 있다니 새에 관심을 주자. 그렇게 되면 인디언 추장이 우리 아파트 숲을 찾은 이유를 알게 되고, 새소리 감상을 통해 주변 자연환경 보호로 이어지는 환경시민의 길로 들어설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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