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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북한에 가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자기네 강원도로 안다. 북한 강원도에도 도지사(도당위원장)가 있다.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남북의 강원도지사가 함께 서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조직위원회도 같이 꾸리고, 행사도 같이 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남북의 강원도에서 번갈아가며 치를 수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제가 북한에 가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자기네 강원도로 안다. 북한 강원도에도 도지사(도당위원장)가 있다.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남북의 강원도지사가 함께 서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조직위원회도 같이 꾸리고, 행사도 같이 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남북의 강원도에서 번갈아가며 치를 수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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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부지런히 많이 잡으세요. 그래야 애들 공부도 시키고 효도도 하지요. 재고는 걱정하지 마세요. 잡는 게 어렵지 파는 게 어렵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잡으세요. 다 우리 도민들의 일입니다. 공복(公僕)은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말은 무엇보다 큰 힘으로 다가왔다... 그 많던 도루묵이 팔리고, 그 돈은 어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감자의 꿈>에 실린 고성수협장의 글

낮에는 감자 탈을 쓴 채 전통시장을 누비고, 밤에는 SNS에서 도루묵을 팔아 '도루묵지사', '감자지사'로 불렸던 최문순. 춘천에 사는 이문경씨는 "90도 인사. 갑을이 따로 없다. 장관, 기관장, 청소노동자, 어민, 장애인... 누구에게나 대충인 법이 없다"며 '문순C의 인사법'으로 그를 기억한다.

2011년 4월 27일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 연달아 두 차례 선거에서 이겨 올해 도지사 임기 10년째를 맞은 그를 지난 21일 오후 여의도 커피숍에서 만났다.

'임기 10년 소회'를 묻는 첫 질문에도,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는 이어진 질문에도 최문순 지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꼽았다. "분단과 대립의 땅이었던 강원도의 정체성이 남북의 평화·화해·협력을 더 우선에 두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평창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북한이 ICBM 화성15호를 쏘아올려 올림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가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감자의 꿈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지금까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최 지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다. 남과 북이 유일하게 같은 행정구역 명칭을 쓰는 도(道)가 강원도이고,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가 아닌 도 이름이 붙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강원 청소년올림픽은 남과 북이 함께 하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기초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남북이 동일한 이름을 쓰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최 지사가 남북관계에 목을 매는 건 강원도의 발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 전후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었을 때 강원도는 사회간접자본(SOC)이 확대되면서 성장했다. 강원도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광역지자체다. 그런 탓에 '인구 3%의 벽'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같은 한계도 남북 강원도의 교류가 활발해질 때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40대 후반에 MBC 사장을 맡았고, 이후 국회의원(비례대표)과 광역 지자체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그에게 내년 대권 도전에 대해 묻자 "질문만으로도 영광이지만, 강원도지사도 겨우 하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 강원도지사 임기 후에는 남북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정치 철학은 '인간의 존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바탕 위에서 빈부격차, 청년실업, 기후변화 등의 문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강원도지사 임기 내내 문순C가 바라 마지않았던 '감자의 꿈'이기도 하다.

"감자 한 알 한 알이 모두 귀한 감자들입니다. 누구도 버릴 수 없습니다. 감자들 한 알 한 알이 존중받고 존엄하게 여겨지는 감자밭! 못생긴 감자도 찌그러진 감자도 굼벵이 먹은 감자도 귀퉁이에서 자란 감자도 덜 자란 감자도, 모두가 귀하게 여겨지는 감자밭! 그것이 '감자의 꿈'입니다."

다음은 최문순 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현장에 나가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을 먹여살리는, 그 분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넣어주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현장에 나가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을 먹여살리는, 그 분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넣어주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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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뒤 지금까지 세 차례 강원도지사 직을 맡고 있다. 올해 4월 27일이 만 10년째다. 소회가 남다를텐데.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내려갔을 때 강원도의 정치 지형은 진보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남북으로 나뉜 강원도의 정체성은 분단과 대립의 땅이었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렀고 피해도 컸다. 북한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는데, 금강산관광과 평창올림픽을 거치면서 평화가 더 낫다는 생각이 커졌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평화 이슈가 분단과 대립을 넘어서고 있다. 정치 이념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 지난 10년 동안 강원도정을 이끌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최문순 표' 정책은 무엇인가.

"가장 큰 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다. 국민들의 성원과 IOC(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세계인들, 그리고 북한이 참가한 가운데 올림픽을 평화롭게 치렀다. 강원도의 정체성이 바뀌는 과정이기도 했다. 올림픽 계약자였던 강원도지사로서 제일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년 뒤에 치러지는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도 유치했다. 남북 공동개최를 제안하려고 한다. 원래 올림픽은 서울올림픽, 베이징올림픽, 베를린올림픽처럼 도시 이름을 쓴다. 그런데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은 '강원'이라는 도(道)의 이름을 쓴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강원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 정부와 IOC에 건의했고, '강원' 이름을 쓰기로 합의했다."

남한에도 강원도, 북한에도 강원도가 있다

- 북한도 강원도라는 명칭을 쓰나.

"그대로 쓴다. 제가 북한에 가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자기네 강원도로 안다. 북한 강원도에도 도지사(도당위원장)가 있다.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남북의 강원도지사가 함께 서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조직위원회도 같이 꾸리고, 행사도 같이 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남북의 강원도에서 번갈아가며 치를 수 있다. 원산의 마식령스키장도 이미 개발돼 있어서 남북이 합의만 하면 공동개최에는 문제가 없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강원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했고, 철원역은 서울역과 크기가 비슷했다. 물류·관광의 요지였는데, 분단이 되면서 졸지에 변방이 됐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강원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했고, 철원역은 서울역과 크기가 비슷했다. 물류·관광의 요지였는데, 분단이 되면서 졸지에 변방이 됐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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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부심을 갖는 또다른 '최문순 표' 정책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게 경제, 일자리다. 강원도의 일자리는 비교적 괜찮다. 제가 처음 취임했던 2011년에는 고용률이 (광역지자체 가운데) 전국 꼴지였다. 매년 조금씩 올라가 지금은 중위권이다. 평창올림픽을 치르면서 KTX 등 철도, 서울-양양고속도로,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확장됐다. 그에 따라 인구도 조금 늘어났고."

- 도지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평창올림픽 때 남북이 공동입장했던 순간이다. 강원도는 38선이 바로 지나가고, 한국전쟁 당시 사망자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았던 지역이다. 속초 아바이마을 등 이산가족들도 많이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감회가 남달랐다. '강원도가 이제는 평화와 화해, 협력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됐구나', 이런 극적인 전환을 실감했다."

잊혀지지 않는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ICBM 쏘아올린 날

-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2017년 11월 29일이다. 평창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이 그날 새벽 3시30분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를 쏘아올렸다. 그리고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전했다). 올림픽 티켓을 팔고 붐을 일으켜야 할 때였는데, 지금 도쿄올림픽 같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IOC에선 연기·취소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더라." (※ 북한은 올해 초 11월 29일을 '로케트공업절'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후 반전 포인트는 무엇이었나.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시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아휴, 안도감이랄까...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오는 것과 안 오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전, 숙소, 이동거리 등 모든 준비 상황이 다 달라진다. 심지어 올림픽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고 하니까요."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과 북의 행정 명칭이 같은 게 고성이다. 고성의 땅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다. 남북의 공통된 '강원도' 안에 있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과 북의 행정 명칭이 같은 게 고성이다. 고성의 땅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다. 남북의 공통된 "강원도" 안에 있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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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으로 훈풍이 불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금 교착상태에 빠졌다.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러들었고.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는가.

"평창올림픽 전후에는 그 이전까지 금기시됐던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남북의) 분위기가 좋았다. 불가침협정, 평화협정, 정전협정... 이후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망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이 중요하다. 남북 공동개최를 제안하자고 새 총리에게 건의하려고 한다. 국제 스포츠 경기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체면 상하지 않으면서 참석할 수 있다. 스포츠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보려고 한다." 

- 내년 도지사 임기를 마치기 전에 북한에서 공동개최 제안을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텐데.

"그렇다. 북한 강원도당위원장(도지사)이 박정남이라는 사람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하노이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했다. 북한은 베트남 방식으로 개혁개방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래서 데려간 사람이 박정남 위원장이다. 개발을 마친 원산을 먼저 개방하고 싶어한다. 호텔과 콘도로 지난해 4월 완공했다. 국제 스포츠 경기를 남북 공동으로 치를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돼 있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다."

"정치라는 건 국민 호주머니에 돈 넣어주는 일"

- 강원도 농수산물 판매에 직접 팔을 걷어붙여 '도루묵지사', '감자지사' '완판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왜 시작했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반응은 어땠나.

"대개 정치라고 하면 추상적이거나 법률·정책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나가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을 먹여살리는, 그 분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넣어주는 일이라는 걸 절감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민생) 현장에서 원하는 건 서로를 비난하는 여의도 방식의 정치가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든 문제를 풀어주길 원한다. 그래서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세일즈에 홍보맨을 자처했다.

농수산물을 파는 것도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홍보했는데도 생각보다 안 팔렸다. 게다가 하루종일 매달려야 하고, 클레임이나 사소한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해줘야 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여러 차례 하다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나중에는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준비된 물량이 다 팔렸다. 농수산물은 자칫 팔 시기를 놓치면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다 팔리니 고마워한다."

- 다른 한편에서는 농수산물을 싼 가격에 팔아서, 아직 팔지 못한 농수산물의 판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해당 농수산물을) 판매하기 전에는 미리 시장조사를 한다. 시장 가격도 보고, 서울 가락동시장에 가격 조사를 하러도 나간다. 선의로 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가격과 물량을 결정한다.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관료들에게 그냥 맡겨둔다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경제, 문재인 정부 때는 일자리 경제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을 붙인다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관료들에게 그냥 맡겨둔다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경제, 문재인 정부 때는 일자리 경제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을 붙인다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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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는 인구 약 154만 명으로,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그런 탓인지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다. 그래서 '인구 3%의 벽'이라는 얘기를 한다. 강원도의 인구 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3% 정도를 차지한다. 정치·경제·행정·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강원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했고, 철원역은 서울역과 크기가 비슷했다. 물류·관광의 요지였는데, 분단이 되면서 졸지에 변방이 됐다.

북강원도 150만, 남강원도 150만, 먹고 살기 힘드니까 밖으로 떠난 사람이 150만, 원래의 인구는 500만 정도였다. 당장 인구 3%의 벽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유일하게 남과 북 모두 똑같은 명칭을 쓰는 도(道)가 강원도다. 남북 강원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존재감과 중요성이 더 부각될 거라고 본다.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강원평화특별자치도가 돼야 한다. 남북이 군사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율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끔. 법안도 추진 중이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과 북의 행정 명칭이 같은 게 고성이다. 고성의 땅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다. 남북의 공통된 '강원도' 안에 있는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기자 주 - 21대 국회에는 3건의 평화경제특구법안이 상정돼 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심사 계류 중이다.)

강원도, '인구 3%의 벽'을 넘어서려면...

- 강원도 홍천에 추진 중인 '한중문화타운'을 둘러싸고 차이나타운 건립 반대 여론이 거선데.

"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하다. 이건 2009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일이다. 부지가 민간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다 짓고 땅이 남으니까 거기에 호텔과 콘도, 공연장 등을 지으려고 한 거다. 그러다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반중(反中) 정서 영향으로 갑자기 문제가 불거졌다. 사실이 아닌 게 사실인 것처럼 퍼지는 얘기도 많다. 그래서 걱정이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65만 명가량이 청원동의를 했다. 공식 답변은 어떻게 하게 되나.

"강원도 차원에서 답변 내용을 정리해 청와대에 전달하면, 청와대가 검토한 뒤 절차에 따라 공식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업의 주체는 민간기업이고, 강원도는 인·허가 주체다. 공공 프로젝트가 아니다. 해당 기업이 중국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어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 춘천 중도에 짓고 있는 레고랜드 테마파크는 내년 초에 개장할 예정이다. 선사유적지가 발굴된 터여서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서울에서도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화재위원회에 물어보고 그 결정에 따른다. 강원도도 똑같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세 가지를 결정했다. 첫째, 이걸 더 발굴하는 건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그대로 덮어놓아라. 둘째, 노출된 유적은 그 상태로 공원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해라. 셋째, (옮길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은) 박물관을 만들어서 전시해라. 강원도는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할 때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은 사람을 보고 한다. (평창올림픽 등) 북한과의 신뢰를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할 때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은 사람을 보고 한다. (평창올림픽 등) 북한과의 신뢰를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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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는데, 올해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는 큰 격차로 패배했다. 더욱이 20대는 철저하게 민주당을 외면했다. 1년 사이에 민심이 급격하게 변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민들은 진보·개혁 정권이 빈부격차,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다. 언론·검찰 개혁보다 더 밑바탕에는 이런 요구가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이고, 코로나 여파로 (경제적인 상황이) 더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더 치열하게 (민생을) 고민했어야 한다.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부동산 문제도 기본적인 철학과 토대가 단단하지 않았다.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니...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도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가 아니라 채용 문제 등 고용에 대한 노력을 더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

-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남북관계에 있어서 군사 대치를 현저하게 완화돼서 더 이상 그 전 단계로 돌아가지 않게 한 것이 가장 큰 공이다. 코로나 방역도 일부 비판이 있긴 하지만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게 분명한 공이다. 이에 반해 빈부격차와 청년들의 빈곤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기저질환이 더 심화한 건 과라고 본다. 남은 임기 동안에라도 '고용국가'가 될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코로나 잘 대처했고 일자리는 안타까워"

- 문재인 정부도 일자리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관료들에게 그냥 맡겨둔다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경제, 문재인 정부 때는 일자리 경제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을 붙인다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강원도에서는 도비로 월급을 지원하는 '취직사회책임제'를 추진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취업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더 파격적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

- 연달아 세 번 강원도지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내년 지자체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다. 임기를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할 때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은 사람을 보고 한다. (평창올림픽 등) 북한과의 신뢰를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북관계 일은 느슨하면 다시 뒤로 돌아가고 진전이 안 되기 때문에 온몸을 바쳐서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 위에서 빈부격차, 기후변화, 청년실업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적인 색깔을 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 위에서 빈부격차, 기후변화, 청년실업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적인 색깔을 내야 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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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후반에 MBC 사장을 했고, 이후에는 국회의원(비례대표)과 광역 단체장을 세 차례나 맡았다. 이러한 이력은 매우 드물다. 필요조건(스펙)은 갖췄다고 볼 수 있는데 대권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그런 질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제가 그런 역량을 갖췄다고 보지는 않는다. 강원도지사도 겨우 하고 있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남북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게 더 급하고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잇달아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의 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의 도정 철학이 '인간의 존엄'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헌법 철학이기도 하다. 독일 헌법 1조 1항에는 인간의 존엄이 명시돼 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에 따라서 나라의 틀을 짜는 거다.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도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점에 따라서 다시 틀을 짜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 위에서 빈부격차, 기후변화, 청년실업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적인 색깔을 내야 한다."

태그:#최문순, #강원도지사, #평창동계올림픽,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도루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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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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