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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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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몇 사람 역사 인물에 대해 '인물론'을 쓴 데 이어 자신과 관련되거나 더러 알려진 당대 인물 다섯 명의 전(傳)을 지었다. 전기 또는 평전에 속하는 글이다. 생애와 사상을 전체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기록이다. 『홍길동전』의 경우 픽션이 크게 기획된 것이라면 여기 소개하는 사람은 실존인물들이다. 

그가 너무 일찍 처형당함으로써 다섯 명에 그쳤지만, 그가 그린 인물의 전기는 「엄처사전」, 「손곡산인전」, 「장산인전」, 「남궁선생전」, 「장생전」은 모두 『홍길동전』의 주제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위의 다섯 편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주인공 모두가 불우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불우하면서도 모두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조정의 버림을 받거나 시속을 한탄하고 숨어살거나 떠돌아다니며 살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엄처사전」, 「손곡산인전」을 뺀 나머지 세 편은 모두 기괴한 행적을 하거나 도술을 부린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작자 자신이 직접 만나본 사람이나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사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다." (주석 2)

격동기에 살면서 사귀거나 지켜보았던 다양한 군상 중에서 그가 취택한 인물은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허균이 관심을 기울이고 작품화했던 인물들은 거의가 실존인물들로서 특이한 인물유형들이다. 「손곡산인전」의이달(李達)은 허균의 시사(時師)였으며, 「남궁선생전」의남궁두(南宮斗)는 허균이 부안에 거처할 때 실제로 만났던 인물이고, 「장생전」의 장생(蔣生) 역시 허균이 직접 만나서 담화하고 그의 이술(異術)까지 구경했던 인물이다. 「엄처사전」의 엄충정(嚴忠貞)은 강릉 사람으로 허균이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인 듯하며, 「장산인전」의 장한웅(張漢雄)도 불확실하나 허균 당대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이처럼 허균은 당대의 실존인물들을 형상화하여 「전」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주석 3)

그가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스승 손곡 이달에 대한 「손곡산인전」의 한 대목이다. 

그의 마음은 가운데가 텅 비어서 아무런 한계가 없었으며, 살림살이를 돌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품 때문에 그를 사랑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생토록 몸 붙일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방에 비렁뱅이 노릇을 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가난과 곤액 속에서 늙었으니, 이는 참으로 그의 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곤궁했지만 그의 시는 썩지 않을 것이다. 어찌 한때의 부귀로써 그 이름을 바꿀 수 있으리요. 그가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져 버렸기에, 내가 모아서 네 권으로 엮어 뒷세상에 전하려 한다.(주석 4)       


주석
2> 이이화, 앞의 책, 286쪽.
3> 이문규, 앞의 책, 72쪽.
4> 이문규, 앞의 책, 7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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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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