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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다입니다>. 2019.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교양인.
 <우리는 코다입니다>. 2019.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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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는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다."(p.16)

#1 한 사내가 육중한 가구를 들고 대문을 나선다. 그런데 대문 앞 계단에 누군가 앉아 있다. 비켜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묵묵부답이다. 내 말을 무시하나 싶지만, 못 들었을까 소리 높여 말한다. 한치의 미동도 없다. 몇 번 더 크게 소리친다. 이내 욕이 나온다. 결국, 뒤에서 그를 밀친다. 다툼이 벌어진다. 경찰서까지 간 뒤에야, 내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 어느 결혼식장, 혼인을 올리는 두 부부가 주례 앞에 서서 백년해로를 언약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지켜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곳에는 박수 소리도, 축하한다는 말도 없다. 결혼식장에서 흔히 마주하는 왁자지껄함은 온데간데없다.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첫 번째 장면은 필자 이현화님이 겪은 이야기를 청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청인은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당연하게 말로 자신의 의사를 건넨다. 의사전달이 안 되자, 그는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한다. 내 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거나, 내 말을 무시하거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건 고려되지 않는다. 청인의 세계에 농인의 자리는 없다.

두 번째 장면은 또 다른 필자 이길보라님이 연출한 (2015)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씬을 묘사한 것이다. 영화 초입에서 관객은 낯선 세계를 마주한다. 바로 침묵의 세계다. 어떤 상황에는 그에 맞는 행위가 있다. 생일이나 결혼 등의 자리라면, 축하해라는 말과 축하의 의미를 담은 박수 소리를 떠올린다.

우리의 삶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 연극을 수행하는 행위들에는 언제나 특정한 소리들이 수반된다. 아니, 소리 자체가 연극의 본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소리 없이도 연극은 상연될 수 있다. 우리는 소리가 아닌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다. 보이지 않기에 손과 소리로 세상을 보는 맹인들이 있듯이, 침묵의 세계를 살아가는 농인들이 있다. 손과 몸짓으로 대화하는 세계가 있다.

여기서 흔히 놓치는 건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인 자녀, 바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라 불리는 이들이다. 청인과 농인의 경계,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의 경계다. <우리는 코다입니다>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은 코다를 단 하나의 무엇으로 설명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다. '저도 코다인가요?', '코다는 뭔데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코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은 경험을, 삶의 단면과 궤적을 펼쳐보인다. 코다의 세계는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책을 덮고서도 계속 붙잡고 고민하게 된 문구가 있다. '경계를 횡단하기.' 청인과 농인의 세계는 단지 소리내어 대화하느냐 손으로 대화 하느냐의 의사소통 수단의 차이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한쪽은 소리에 기반한 사고를 하며, 다른 한쪽은 시각에 기반한 사고를 하기에 사고 방식 자체도 다르며, 어떤 상황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다르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에 대한 예시가 인상적이다. 청인은 울음소리로 아이의 상태를 인지하지만, 농인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소리가 나면 집안의 빛이 번쩍이도록 장치를 해두거나,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봐 아이의 발목과 자신의 손목을 끈으로 이어 둔다. 이렇듯 삶을 살아내는 모양새도 다르다.

다름 사이에 껴있는 이들은 자주 혼란을 느낀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자 신에게 되묻게 된다.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 것"이라고 위 영화에 나온 독백처럼, 경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코다는 청인인지, 농인인지 자꾸만 시험에 들곤 한다.

때론 청인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온갖 행정을 농인 부모를 대신해 처리하거나 청인의 말을 통역하다 지치기도 하고 심지어 부모에 대한 미움이 치밀 때도 있다. 코다라는 이유로 청인들에게 슬픔을 강요받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농인이 아니기에 농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다. 다른 세계 사이를 횡단하는 일은 그만큼 힘들고 치열한 것일 테다.

사이의 세계에서 완전한 '나'로 바로 설 수 있는 힘은 코다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된다.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여정의 동력은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고 역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소통들이었다. 이처럼 '경계를 횡단하기'는 세계들의 부단한 마주침,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환대의 몸짓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공통되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건 자신과 같은 자리에 서있는 이들과의 만남이다. "너 코다야? 나도 코다야!" 이때부터 우리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타인에게 코다로서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세계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보일 수 있다.

코다가 전하는 낯선 삶의 이야기 끝에 함께 간직했으면 하는 물음으로 글을 끝맺으려 한다. 장애와 비장애, 장애 안에서도 다양한 장애들, 나아가 여성과 성소수자 등 온갖 차이들을 가로질러, 다양한 삶의 모양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몸짓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박기형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4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우리는 코다입니다, #농인, #코다, #경계를 횡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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