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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있는 일터에 사고,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기 위해 출근하는 곳에서 죽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일터 괴롭힘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며 바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알려내기도 한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부터 병원의 청소노동자, 10년 넘게 노조파괴와 동료의 죽음을 안고 견뎌 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심리적 상흔을 입은 노동자들의 심리치유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까지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 기자말


일터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만성적 괴롭힘을 당했을 때, 과로에 내몰릴 때 등 여러 위기상황에서 이를 겪거나 목격한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위기요인들에 대한 주목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개입해야 할지 혹은 유념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까지 당위를 넘어 정말 개입이 필요한지 등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

유성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일터에서 위기대응 활동을 해온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아래 두리공감)의 허윤제, 장경희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지난 2월 2일 두리공감 사무실에서 진행하였다.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의 허윤제(왼쪽), 장경희(오른쪽) 활동가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의 허윤제(왼쪽), 장경희(오른쪽) 활동가
ⓒ 두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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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을 서로 이해하기 & 본인이 선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심리적 위기는 현재 개인이 갖고 있는 자원이나 대처 기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 상황을 지각하거나 경험할 때, 그에 압도당하거나 심리적 불균형을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의 특징은 몇 가지가 있다.(산재트라우마 극복 토론회 자료집 참조) '현장 노동자들은 매일 출근하며 재노출, 재경험한다.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사건/상황의 책임주체가 명확하며, 동일한 유발요인을 겪었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나 대처방법, 회복기간 등에 대한 차이가 존재하기에' 개별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고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여러 번 "피해 및 생존자들이 향후 전개될 일련의 계획들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 자신의 능력, 독립심, 자기존중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다.
 
"제일 먼저 하는 건 우리가 왜 들어갔고, 본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어떤지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당사자나 저희가 공유된 지반에서 시작해야 이후 관리가 잘 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지원이 무엇이다, 어떻게 상담을 진행하고 무슨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본인들이 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재해 현장에서 제일 문제가 본인의 자율성이나 통제권이 뺏긴다는 거잖아요. 제일 궁극의 목표는 당사자들에게 통제권과 자율성을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심리적 지원의 과정 또한 통제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 거죠." (장경희)
 
"중대재해사업장이니까 이 사람들은 이럴 거야, 하는 저의 선입견 있잖아요, 먼저 예측하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위험한 거 같아요. (중략) 당장 기간을 짧게 두고 뭘 해야 해, 보다는 언제나 그 사람 옆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내가 힘들 때 노동조합에 얘기하면 두리공감에 얘기해 줄 거야, 두리공감의 허윤제한테, 장경희한테 전화하면 돼' 이런 것들을 하던 안 하던 간에. 그것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허윤제)

 
심리적 위기 개입을 방해하는 요인들
 
심리적 위기개입은 후순위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현장의 경우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원인 제거나 현장조사, 작업 중지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리적 지원을 병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정신과적 질환/증상에 대한 낙인과 함께, 구체적인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상담에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회사의 이해관계도 크게 작용한다.
 
"사업주나 노조나 뭔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설명하고 동의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트라우마 대응이 단순하게 한두 명이 하는 게 아니라 범위를 설정하고 대상자 확정하고 장소, 공간, 기간까지 다 확정해야 해요. '1~2개월이면 작업 중지도 다 풀리고 회사 정상화해야 하는데 못 기다려준다.' 이런 것들이 이해관계로 대립되고 밀리고. 노동자들 개인적으로도 교육,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거부감이 있어요. 내가 정신적으로 이상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닌데, 그건 맞잖아요. 내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사태가 발생한 건데. 왜 내가 치유를 받아야 돼? 이런 게 있죠." (장경희)
 
"산재가 발생하면 내부 위험요소 파악하고 작업측정 하잖아요, 그런 것의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게 급하고 중요한 문제인 건 분명하기 때문예요. 원인조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면 크게 거기에 힘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몰빵 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이게 잘 안 되니까요. 노동자들도 참여하고 같이 조사를 하고 진행되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는데. 노동자 참여를 거부하거나 회사가 별도로 빨리 조사해버린다거나 그런 게 있죠." (허윤제)

 
유성기업과 두리공감

허윤제, 장경희 활동가는 10년 동안 자행된 사측의 탄압을 받는 유성기업 조합원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을 거부한 조합원들을 설득했던 시간, 위기대응팀을 만들어 서로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시도했던 시간,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던 매해의 시간, 임시건강진단명령을 요구하며 싸웠던 시간, 지원 사업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갈등했던 수많은 순간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들을 헤쳐 왔다. 사실 심리치유 사업을 시작하는 것 자체에 모든 힘이 든다.
 
"처음에 심리치유 사업을 해야 한다 설명할 때 벽에 부딪혔죠. 왜 우리를 정신병자 취급 하냐,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회사라는 인식이 있었고요. 설득하는 과정이 1년이 있었어요. 2012~2014년까지는 쭉 상담하고 실태조사도 지속적으로 해왔거든요. 깜짝 놀란 건 이렇게 고위험군이 많이 나올 수 있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고위험군도 50% 가까이 되고. 멘붕이 온 건 3년 동안 치유사업을 계속 했는데 고위험군이 계속 증가하는 거예요. '왜 증가하냐 원인을 밝혀라' 국회, 시청 쫓아다니며 사태가 중단되어야 하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이후 '위기대응팀을 만들자, 언제 어느 때 누가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 있다, 좀 더 촘촘하게 체크하고 망을 만들자' 했죠. 5~6명씩 서로가 서로를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전문가들이 바로 투입될 수 있게끔 하는 시도를 2015년부터 했고요.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걸 계기로 이런 체계들이 만들어진 거죠. 이후 뇌심질환 문제에 대해, 돌연사는 뇌심질환과 연관이 있으니까, 장기적으로 심리적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람들의 뇌심질환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총체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장경희)
 
회사는 성과급 및 승진, 근태관리에서의 차별이나 일상적 감시, 임금삭감,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나 징계 및 경고장 남발, 고소고발(사법수단 활용), 폭언 및 폭행(성희롱) 등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질기게 투쟁했다. 유시영 전 회장을 2번 감옥으로 보냈고, "밤에는 잠 좀 자자", 노조파괴와 국가폭력 등을 이슈화시켰다.

회사의 탄압은 피해로서 노동자들의 몸과 정신건강을 헤쳤지만, 동시에 조합원들은 '투사'로서 활동했다. 피해자와 투사는 상반되는 단어가 아니며, 노동자들은 어떤 시점과 상황에선 여러 역할의 활동해왔다. 하지만 이 다층성을 받아들이지 않은 혹은 못한 '전문가'들의 "다른 지원이 필요해?"라는 인식은 위기개입 지원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노동자들이 괴롭힘 때문에 상태도 안 좋아지고 그랬는데 이분들이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지는 않았거든요. 싸우고 저항했던 사람인 거죠. 그러다보니까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는 이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힘들어진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모습만 보고 '저 사람들 사측한테 대들고 하는데 다른 지원이 필요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손을 뻗치기 힘들었던 것들도 있었죠. 전문가들 구한다는 게요."(장경희)
 
산재 트라우마 관리 매뉴얼 비판 및 필요한 변화
 
2017년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 운영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발생했던 중대재해와 괴롭힘 등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는 것을 드러내고 싸웠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매뉴얼은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에 집중되어, 괴롭힘이나 해고를 빌미로 한 협박과 인사이동 등에 대한 개입이 부족하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한계가 여기저기 드러나는 거죠. 평가 중심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아픈 사람이니까 체크해봐, 내가 가려줄게.' 이러는 거라 서요. 명령을 내려야 지원을 할 수 있고 회사가 그것을 시행하는 기관이 되는 건데, 권고 하는 거지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없고요. 회사가 기관, 기간을 정하고. 회사는 사내 산재 상담실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빼고 가고. 매뉴얼 자체가 문제고, 직업성 트라우마 센터의 위상과 역할과 매뉴얼 전반적 문제이죠." (장경희)
 
매뉴얼에는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참여에 대한 언급은 없다. 따라서 재해 발생 직후부터 노동조합, 피해 및 생존자들이 진상규명에서 복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를 보장받고 발언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주된 과제이다. 더하여 신체·정신건강을 유기적으로 돌볼 수 있는 시스템, 예방적 차원에서의 접근, 현장에서 대응을 할 수 있는 내부주체 형성도 필요하다.
 
"'예방적 활동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노조에서든 사용자 의무사항이든 근로자건강센터에서든, 저희는 현장에서 주체가 나와야한다 생각을 많이 해요. 정신건강지원이 필요하고 트라우마 발생하면 무얼 해야 하고, 이런 걸 갖고 있는 한 사람씩만 있어도 예방적 차원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생각하거든요. 내부주체가 없으면 별로 의미가 없어요. 외부 유입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내부주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교류할거냐가 핵심일 거 같아요." (장경희)
 
두리공감의 새로운 출발

개입의 효과에 대한 고민, 함께 투쟁한 조합원에 대한 미안함, 활동을 안 했다면 몰라도 되는 아픔을 알게 된 상황, 감정의 전이 등. 심리적 위기 개입활동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옆의 얘 때문에 못 그만둔다"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이야기하던 걸, '10년을 하면서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는 걸, 듣고 함께할 수 있었다.
 
"정말 매일매일 고민 되었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사람이 더 안 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필요한 일이야, 이런 생각으로 시작 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다는 느낌이 안 드니까. 내가 이걸 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되는 사람들, 그러면 일상을 편하게 지냈을 텐데 싶었죠. 꼭 그게 '두리공감'이 아니어도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안전하지 않은 괴롭힘, 차별 무수히 많은 걸 들여다봐주고 문제제기하고. 잠 못 자고 우울증이나 자괴감에 빠지고,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얘기해줘야 하고요. 세 달 상담한다고, 투쟁 때문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공동체 프로그램 1박 2일 한다 해서 갑자기 건강해지지 않고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통을 트이게 해줄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잠깐이라도 내가 나를 들여다봤네, 할 수 있는 시간을 누군가는 줘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생각이 들고요." (허윤제)
 
"그냥 10년을 하면서 알아버렸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이런 상황을 당하면 누구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거, 10년 동안 그분들이 해준 얘기가 있기 때문에 그 얘기들을 들은 자로서, 함께 해왔던 사람으로서 접을 수는 없는 일인 거 같아요." (장경희)

 
두리공감은 올해 활동 10주년이 되었다. 올해 두리공감은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으로 새로이 활동하려 한다. 지난 3월 12일 출범식을 마쳤다. 
 
"올해는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독립을 하고,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인데요. 그렇게 별도로 출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마 했던 일들을 하겠지만 이후에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아나갈 것인가 이런 것들을 잡는 시간? 이런 한 해가 될 거 같아요." (허윤제)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를 작성한 조건희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며, 보건의료학생단체 매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태그:#노동자정신건강, #건강권, #트라우마, #산업재해, #심리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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