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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후보의 용산참사 본질 왜곡, 막말에 대한 유가족 긴급기자회견'이 1일 오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역앞 옛 남일당 건물자리에서 열렸다.
 "오세훈 후보의 용산참사 본질 왜곡, 막말에 대한 유가족 긴급기자회견"이 1일 오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역앞 옛 남일당 건물자리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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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자리에 다시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없는 게 죄입니까. 서울에 사는 게 죄입니까."


마이크를 잡은 아내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내 전재숙씨는 "돈에 눈이 어두웠던 뉴타운 개발로 말미암아, 저희는 하루아침에 쫓겨났고 학살을 당했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런 오세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서울시장으로 돌아오겠다고 한다"며 "스스로 땅투기 의혹에 휘말린 사람이 서울시장이 된다면 무슨 짓을 하겠나"라고 비판했다.

망루에 올랐다 옥살이를 했던 아들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아들 이충연씨는 "돈을 가진 이들만 위하던 자가 지지율 1위란 현실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힘들다"라고 호소했다.

"지금 제 뒤 건물, 이 높은 빌딩은 제가 이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결혼할 때까지도 없던 빌딩이었습니다. 지금 이곳 40평 남짓 아파트가 28억 원이라고 합니다. 당시 여기에 살던 저의 이웃들은 아무도 이곳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28억 원짜리 집에 살지 못하면 서울시민의 자격이 없어 외곽으로 쫓겨나는 게 개발정책의 민낯입니다."
 
2009년 1월 용산철거민참사가 벌어졌던 옛 남일당 건물 자리에는 지금 고층빌딩이 세워져 있다.
 2009년 1월 용산철거민참사가 벌어졌던 옛 남일당 건물 자리에는 지금 고층빌딩이 세워져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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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숙씨의 남편이자 이충연씨의 아버지인 고 이상림씨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남일당' 뒤편에서 27년 간 고깃집을 운영했다. 그리고 용산 재개발 1년 반 전부턴 '레아호프'로 업종을 변경해 아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인근 지역 재개발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대화를 원한다"며 망루에 올랐다. 72세였던 그는 그날 목숨을 잃고 말았다.

레아호프, 삼호복집, 무교동낙지, 공화춘, 153당구장, 진보당 시계수리점, 한강지물포... 용산에서 '쫓겨났던' 이들이, 그리고 목숨을 잃었던 이들의 유족이 다시 '그 현장'에 모였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그리고 지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오세훈 후보의 발언 때문이었다.

"오세훈이 사과? 새빨간 거짓말"

용산참사 유족, 생존 철거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일 오후 2시 용산참사가 벌어진 옛 남일당 터에서 "용산참사 책임자 오세훈은 사죄하라, 서울시장 자격없다, 오세훈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철거민을 더는 모욕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며 "오 후보는 지금이라도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철거민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오 후보는 지난 3월 3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임차인이 중심이 되고, 시민단체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이 가세해 폭력적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며 "거기에 경찰이 진입하다가 생긴 참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고는 과도한, 부주의한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 투입으로 생겼다. 그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법원에 제출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의견서와 완전히 배치되는 의견이다. 용산참사 1년 후 인권위는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중략) 당시의 경찰권 행사는 경찰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경찰비례의 원칙에 어긋난 과잉조치였다"라고 판단했다.  (관련기사: 
'오세훈 망언'과 전혀 다른 11년 전 인권위 의견서
 http://omn.kr/1sofw )

이날 기자회견엔 이씨 유족을 비롯해 고 양회성씨의 아내 김영덕씨와 상도4동 철거민으로서 용산 철거민에 연대한 천주석씨,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김영덕씨는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용산에 또 다시 이렇게 서게 됐다. 우리는 대화가 하고 싶었고 협상이 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생계대책을 마련해달라며 망루에 올랐다"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경찰을 투입해 학살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씨는 당시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는 취지의 오 후보 해명과 발언이 논란이 된 후 내놓은 사과 표명에 대해서도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저희에게 사과했다고요? 1년 내내 저희는 이 현장에서 싸웠습니다. 막판에 협상이 끝나고 오 시장은 그날 분향소에서 분향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오세훈이 유족에게 사과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도 "오 후보는 마치 용산참사 사건 해결을 위해 애쓴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며 "당시 서울시의 일관된 입장은 '사인간의 문제'라며 외면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2009년) 1월 20일 참사 발생 후 한 달이 조금 지나서 3월 10일 다시 공사를 재개했다"며 "유족들이 장례를 치를 때까지만 공사를 멈춰달라며 시장 면담을 요청했는데 거부당하고 힘들게 부시장을 만났지만 그는 '시간이 돈이다'라며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마치 우리에게 사과한 것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쓴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오세훈 후보가 다시 시장이 되면... " 

 
용산철거민참사 당시 농성 현장 생존자인 천주석씨가 발언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용산철거민참사 당시 농성 현장 생존자인 천주석씨가 발언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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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4동 개발로 쫓겨난 '용산참사 생존자' 천주석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쇠파이프와 칼을 든 용역들에게 우리 집사람이 맞았다. 기절해서 바지에 오줌을 질질 싸는 아내를 경찰이 잡아갔다"며 "그렇게 경찰서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용역들에게 맞기 싫고, 경찰에 잡혀가 벌금내기 싫고, 징역가기 싫어서 용산 철거민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옥살이를 했던 천씨는 "다시 또 제 아내처럼 누군가가 경찰서 의자에 앉아 오줌을 지리며 병원에도 못 가는 걸 보게 될까 무섭다"라며 "오세훈 후보가 다시 시장이 되면 내 동지들이 너무 아파할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회견 후 유족과 철거민 피해자들은 참사 현장 인근(해링턴스퀘어단지 내)에 마련된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을 방문했다. 이날 개관한 전시관에 마련된 용산참사 전시물을 본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철거민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역앞 참사현장 주변에 서울시가 기억과 성찰의 의미로 만든 '용산기억전시관'을 방문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식당, 보석가게 등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주민들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철거민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역앞 참사현장 주변에 서울시가 기억과 성찰의 의미로 만든 "용산기억전시관"을 방문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식당, 보석가게 등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주민들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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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철거민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역앞 참사현장 주변에 서울시가 기억과 성찰의 의미로 만든 '용산기억전시관'을 방문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철거민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역앞 참사현장 주변에 서울시가 기억과 성찰의 의미로 만든 "용산기억전시관"을 방문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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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날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오세훈 공약, 끔찍하다"

 
여섯 명의 시민이 하루아침에 죽었다!
막개발 폭력, 오세훈 후보 용산참사 책임자다!
오세훈은 서울시장 자격없다!

오세훈 후보의 인면수심에 치가 떨립니다. 두렵기까지 합니다. 12년 전 여섯 명의 시민이 하루아침에 사망한 용산참사에 대한 오세훈 후보의 발언에 온몸이 떨려옵니다.

어제(31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용산참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임차인들이 과도한 폭력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참사의 본질이 철거민들의 폭력 저항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가 평범한 우리 가족들과 세입자들을 '도심 테러리스트', '폭도'로 매도했던 끔찍한 시간이 떠오릅니다. 원통함에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던 355일이ㅡ 고통이 후벼 파헤쳐지는 것 같습니다.

용산참사의 본질이 세입자들의 폭력적 저항이라니요? 책임을 떠넘겨도 어떻게 희생자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까? 살고자 올랐던 망루에서 주검이 되어 내려왔습니다.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게 죄스럽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다 10년이 지나서 스스로 목슴을 끊은 생존 철거민까지 있었습니다.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릴 수 있습니까? 얼마나 더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겁니까?

철거민 세입자들은 테러리스트도, 폭도도 아닙니다. 레아호프, 삼호복집, 무교동낙지, 공화춘 중국음식점, 153당구장, 진보당 시계수리점, 한강지물포... 동네에서 수년에서 수십년 장사하던 임차상인들이었고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개발로 대책 없이 쫓겨나는 것이 억울해 버텼더니 돌아온 건 철거 용역 깡패들의 극심한 폭력과 모욕이었습니다. 폭력을 피해 대화하자고 망루에 올랐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줄 줄로만 알았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를 그렇게 잔인하게 진압하고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철거민들의 저항이 '과도한 폭력'이었다고요? 땅 부자, 집 부자, 투기꾼과 건설재벌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가족들과 땀 흘려 일궈온 생계수단을 빼앗으며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잔혹한 개발 폭력만큼 과도하고 잔혹한 대규모 폭력이 또 있습니까? 그 잔혹한 대규모 개발 폭력을 자행한 오세훈 당시 시장이 철거 세입자들의 '과도한 폭력'을 운운할 자격이 있습니까?

용산참사를 부른 뉴타운 재개발 광풍의 시대로 역행하는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을 볼 때도 참담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그 책임자가 다시 '제2의 용산참사'를 촉발할 개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는 현실이 끔찍했습니다.

심지어 참사의 책임자가 본질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용산을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 땅", "100만평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용산 일대의 대규모 개발 공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07년 당시 오세훈 시장은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을 포함해 사업비 수십조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계획으로 용산 부도심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용산의 땅값을 폭등시키고 용산 일대를 대규모 개발 광풍으로 몰아넣어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 비극의 땅 용산을 '대규모로 개발할 기회의 땅,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또 올 것만 같아 두렵고, 두렵습니다. 서울을 갈등과 폭력, 비극과 참사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에 살기까지 느껴집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개발 폭력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모독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조차 없이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장의 자격이 없습니다. 오세훈 후보는 지금이라도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철거민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사퇴해야 합니다.

우리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을 더는 모욕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또 다른 용산참사를 계획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오세훈은 서울시장의 자격이 없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후보에서 사퇴할 것을 촉구합니다.

2021년 4월 1일 용산참사 유가족, 생존 철거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태그:#오세훈,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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