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망중한(忙中閑: 바쁜 와중의 한가로운 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 바쁘실 테니 오늘은 저와 좀 편히 얘기하시지요. 며칠 전 아내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더 포스트(The Post)>. 2017년 작품인데 보셨나요?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힙니다. 전직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발주한 4천 장의 연구보고서지요.

이로 인해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졌습니다. 전쟁 상황이 불리한데도 미국 정부는 승전(勝戰)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날리며 파병을 계속했다는 사실이지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나오자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뉴욕타임스를 법원에 기소했지요.

당시 뉴욕타임스를 부러워하던 '지역 신문'이었던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은 뉴욕타임스와 동일한 제보자로부터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합니다. 벤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조작한 사실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최초의 여성 신문발행인이던 캐서린(영화 속 메릴 스트립 역할)은 회사와 자신,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을 바꿀 결정을 내려야만 했어요.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유능한 기자를 영입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주식 상장을 고려하던 중이었습니다. 은행·주주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캐서린을 설득했습니다. 보도하면 안 된다고. 식자공(植字工)이 활자를 찾아 넣는 과정과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는, 언론의 자격을 묻는 장치로 등장합니다. 한국 영화 <1987>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했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1987>도 한 번 보십시오.
 
영화 <더 포스트>(2017) 포스터
 영화 <더 포스트>(2017)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하나만 확인하겠습니다. 미국 역사니까 대통령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서로 사실 이해가 다르면 안 되니까 팩트체크 차원에서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하워드 진(Howard Zinn), 리영희(1929~2010) 선생님 등으로부터 배운 내용입니다. 아시지요? 하워드 진? 아마 역사학도였으니 아실 겁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모르시지요? 한 번 찾아 읽어보세요. 오늘 주제와도 깊이 연관된 분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제가 알고 있던 미국 언론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보도 태도 등과 꽤 거리가 있습니다. 1946년부터 8년간 미국은 베트남의 대(對) 프랑스 독립전쟁에서 프랑스의 전쟁 비용 80%를 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1954년 싸움에서 지고 물러갔지요. 미국은 1954년 응오딘디엠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1964년 통킹만 사건의 조작을 시작으로 700만 톤 폭탄을 베트남에 투하했습니다. 베트남 국민 한 사람당 거의 200㎏ 폭탄을 하나씩 안긴 셈입니다. 

그 와중에 1968년 미군 중대 하나가 꽝응아이 성 미라이4 마을에서 450~50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합니다(이런 일은 여단 규모 군대에서는 다 있었다는 미군 장교의 증언이 있었어요). 뉴욕타임스에 그 중대 소속 군인의 인터뷰가 실렸어요.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서 간행된 미라이 학살 기사는, 미국 언론에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에 이미 52만 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키고도, 20만 명을 추가로 파병하려고 했습니다(영화에선 10만 명 더 파병했다고 합니다). 1971년 미국은 호찌민 루트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라오스, 캄보디아에도 대규모로 폭격했어요.

공산주의 저지를 빌미로 한 이 침략전쟁은 처음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민권운동은 물론, 징병 대상인 젊은이들은 이 전쟁을 피하고자 했어요. 무하마드 알리는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했습니다. 대학의 반전 운동도 계속되었고, 심지어 학생들은 학군단 ROTC도 거부했습니다. 가톨릭 수녀와 신부도 행동에 나섰고, 참전 군인들도 반전 시위에 나섰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께서 당시 나이 20대일 때이니 남의 일이 아니셨을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나는 어떤 반전 운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고, 그 해에 바이든 현 대통령께서는 30세 젊은 나이에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셨지요? 닉슨은 2년 뒤 탄핵되어 쫓겨났구요(※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 재선을 위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사건. 이로 인해 닉슨 정권의 선거방해와 권리남용 등이 드러났고, 결국 대통령은 1974년 8월 사임했다-편집자 주).

닉슨은 물론 이전의 케네디, 존슨도 미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이 영화 <더 포스트>에선 이를 마치 닉슨 대통령 독단인 것처럼 끌고 갔는데, 아닙니다. 미국 의회는 대외 침략, 간섭에서 말하자면 언제나 정부 편이었습니다. 멕시코, 필리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이라크 어디서나 말이지요. 닉슨 하나를 꼬리 자르고, 미국 대외정책 시스템은 이후에도 여전히 같았습니다.

결국, 미 정부에 불리한 보고서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죄송합니다. 제가 좀 아는 척해서 머리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갈게요. 영화는 예상대로 전개됩니다. 정부의 뉴욕타임스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는 맥나마라 보고서를 보도했습니다.

그 결정은 언론사 사주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했어요. 캐서린은 돌아가는 윤전기를 보며 편집장 벤에게 말합니다. "남편은 기사야말로 역사의 초고라고 했어요!" 역사학도인 저로서는 이런 말은 듣기 좋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은,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와 오랜 친구로 영화에 나옵니다(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의 결과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베트남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전쟁 중지나 철군이 아니라 단계적 감축을 존슨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해임되었는지 모르지만 1968년에는 세계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겼어요).

저는 당시 캐서린이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맥나마라와 나눈 다음 대화에 있다고 봅니다(영화 속 대사). 
맥나마라 : 뉴욕타임스 보도 기사를 다 읽은 모양이군.

캐서린 : 그래. 다 읽었어. 네가 많이 힘들 거란 건 알아. 하지만 그 일을 왜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맥나마라 : 언론은 쉽게 우리를 그저 거짓말쟁이라고 쓰지. 

캐서린 : 너는 상황을 계속 내버려 두었잖아? 내 아들은 고맙게도 전쟁터에서 돌아왔지만 …… 넌 내 아들이 전쟁터로 가는 것도 봤잖아? 우리가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너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많은 우리 친구들이 자식들을 보내는 걸 두고 봤어.

결국, 캐서린의 결정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자각보다 앞서는 훨씬 보편적인 동력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 가진 부모였던 캐서린의 분노 말입니다. 여기서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다면 전쟁터로 내 자식, 우리 자식을 보내도 되나요? 그런 전쟁이 있을까요? 이 대사가 한편으론 아주 불길합니다.

저는 자식이 둘입니다. 한 아이가 입대하던 날, 훈련소까지 함께 갔습니다. 거기엔 얼굴에 솜털이 가시지 않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어요. 문득 전쟁이 난다는 건 저것들이 다치고 죽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저 꽃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저는 내년에 또 한 아이를 군대에 보내야 합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왼쪽)이 17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이동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왼쪽)이 17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여전히 모병제 아닌 징병제의 나라, 한국 

제가 있는 전주대학교 캠퍼스에도 봄이 왔습니다. 오고가며 복작거리는 젊은 생명들 덕에 저도 들뜹니다. 올해도 쑥스럽게 교실 뒤편에 자리 잡은 복학생들이 있어요. 아시지요? 한국은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입니다. 저는 봄이면 군대 갔던 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실로 돌아오는 세상이 계속되도록, 아니, 군대에 가든 안 가든 사는 데 별 상관없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늘 기원합니다.

영화 얘기만 하려고 했는데, 자식 키우는 부모다 보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한반도의 부모들은 베트남에 자식을 보냈던 미국 부모들 마음으로 벌써 7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이 땅의 평화를 지킬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께서도 자식 키워 보셨으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코로나 극복하고 곧 뵈었으면 합니다. 늘 건강히 지내십시오.
                                                                                  
-2021년 3월 초, 오항녕 드림.

* 이 편지를 쓰고 난 뒤, 바이든 행정부의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한국을 다녀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항녕 님은 전주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바이든, #베트남 전쟁, #더 포스트, #펜타곤 페이퍼, #전쟁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