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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 사람이 몰리다보니 기업이나 병원 등 사회경제 시설도 서울에 집중되기 마련. 중병에 걸리면 일단 서울 큰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 말이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지난 2020년 12월 경기도에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을 때 환자 중 19명이 전남 목포로 보내졌다. 전남 목포에 코로나19 치료를 잘 한다는 명의(名醫)가 있었던가? 

서울에 큰 병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병원들을 지척에 두고 왜 300km나 떨어진 전남 목포의료원으로 환자를 보냈을까? 코로나19 치료에 좋다는 특급 처방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공공병원인 목포의료원에 도대체 왜?

경기도 환자가 전남 목포로 이송된 이유

지난 겨울,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수도권 지역은 하루하루 병상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도권 일일 확진자가 600~700명대에 이르렀던 12월 중순, 경기도는 확보 가능한 병상수가 1개도 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확진자 다수가 자택에 대기하거나 병원이 아닌 생활치료센터에 머물러야 했다. 증상이 발현되고도 병상이 부족해 바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병원 밖 사망자도 늘어났다. 그 많던 병원이 이처럼 금세 동이 날 수가 있던가? 

정부는 '성공적 K방역'에 기대어 코로나 3차 유행이 한 달가량 이어질 때까지 병상 확보에 나서지 않았다. 자율신고를 통해 병상을 확보하겠다며 민간병원 눈치를 보는데 급급했을뿐 국민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민간대형병원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몇 개 있지도 않은 공공병원 병상에만 의존하다보니 확진자가 연일 1천 명씩 나오자 병상수 부족은 금방 현실이 됐다. 

정유엽 학생을 기억하시나요?

이미 2020년 3월 대구의 의료 마비에 가까운 상황은 민간병원 중심의 우리 의료체계가 감염병 대처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병상은 턱없이 부족했고 의료공백으로 결국 희생자까지 발생했다. 코로나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40도가 넘는 고열에도 치료를 거절당하던 한 고등학생이 결국 제대로 치료 한 번 못받고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가 바로 정유엽이다.

정유엽 학생의 죽음은 그저 한 소년의 죽음이 아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의료체계가 만들어낸 사회적 죽음이다. 코로나 환자를 돌볼 공공병원이 충분했다면, 그래서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이다. 그러나 정부는 일년 가까이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 요구에 이렇다할 답을 내놓지 않았다. 2021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공공의료 확충예산을 사실상 0원으로 책정했을 뿐이다.

정유엽과 함께 하는 사람들
 
도보행진 13일차 세종시를 향해 걷는 정유엽 아버지와 시민들.
 도보행진 13일차 세종시를 향해 걷는 정유엽 아버지와 시민들.
ⓒ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더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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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정유엽 학생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행보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정유엽 아버지가 의료공백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 걸음더' 도보행진이 바로 그것. 경산을 출발해 서울 청와대까지 368.3km을 걷는 코스이다. 주요 도시들과 지역 의료원들을 거치며 이어온 도보행진단이 곧 서울에 도착한다. 

2월 22일에 시작한 행진이 어느덧 4주차를 맞았다. 어느 날은 비가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껴입은 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따뜻한 날도 있었다. 10명 남짓의 시민들과 걷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수십명의 시민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정유엽 학생과 동갑인 아들이 있다는 시민부터 암투병 중인 정유엽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었다는 분도 있었다. 공공병원이 없는 광역도시 중 하나인 대전에서는 대전의료원 설립 운동을 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의사는 코로나 상황에서 의료공백으로 정유엽군이 희생된 것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직접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자원활동에 시민들이 함께 했다.
 직접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자원활동에 시민들이 함께 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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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엽 아버지의 행진이 수도권에 가까워오는 동안 서울에서도 정유엽 아버지의 발걸음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전국에 공공병원이 세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공공병원 종이모형 만들기'에 여러 시민분들이 함께 해 준 것이다. '정유엽 공공병원', '누구나 원하는 공공병원', '모두의 공공병원' 등 현실에 있었으면 싶은 공공병원 이름도 다양하게 지어주었다. 시민들이 만든 공공병원 종이모형은 3월 18일 정유엽 학생 1주기, 마지막 도보행진에 함께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 공공병원이 더욱 세워져야 하고 정유엽군과 같은 일이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병원 전개도를 오리고 붙이며 이름을 짓는 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더욱 더해지고 합쳐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제가 공공병원 모형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것처럼 누군가의 어느 공공병원들이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자원활동가 이소연 님

공공병원도 소방서, 경찰서처럼

코로나 위기에 닥쳐서야 2013년 폐쇄된 진주의료원의 부재가 얼마나 큰 손실인지 확인했다는 말이 나온다. 공공병원인 지역의료원은 감염병과 같은 재난 시기에 중추 의료시설로 역할한다. 물론 취약계층에게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다. 경제성을 이유로 폐쇄해서는 안되는 사회 필수시설이란 말이다. 화재가 뜸하다고 범죄가 줄었다고 소방서와 경찰서를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에 닥칠 재난의 피해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진작부터 공공병원 확충을 호소해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병상부족과 의료공백이라는 코로나 위기를 치유할 특급 처방전은 결국 공공의료 확대다. 코로나19의 명의, 공공병원은 목포만이 아니라 대전에도, 광주에도, 울산에도 있어야 한다. 종이모형처럼 뚝딱 만들 수야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박차를 가해야하는 이유다. 
 
시민들이 만든 공공병원 종이모형.
 시민들이 만든 공공병원 종이모형.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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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로나19, #공공병원, #의료공백, #정유엽, #진주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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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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