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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셋째 아이를 낳았다. 이제 만 7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모유를 먹고 있어서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심심할 때면, 그러니까 아무 때나 나의 젖을 찾는다. 코로나로 온라인 학습을 하고, 딱히 갈 곳이 없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12살 첫째와 9살 둘째 아이 밥을 챙길 때나 집안일을 할 때는 내 등에 업혀 있으니, 온종일 나와 붙어 지내는 셈이다.

젖을 물려 재울 때가 유일하게 누워 쉬는 시간인데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던 중, 한 여자 연예인이 출산 후 한 달 만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있다. 마른 몸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머리와 화장을 하고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는 사진. 출산 후 '철저한 자기관리로 출산 전과 차이가 없는 아름다운 몸을 회복했다'는 게 기사 내용이었다.

잘 '회복'했다니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인 것을, 괜히 '철저한 자기관리'에 걸려 그렇지 못한 내 처지가 엎어지고 말았다.

'철저한 자기관리'에 걸려 엎어진 나
 
일상에 지친 내가 '아름다운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관리'는 굶기였다.
 일상에 지친 내가 "아름다운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관리"는 굶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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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돌보면서 운동을 하거나, 아픈 골반을 위해 마사지를 받을 시간을 내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첫째와 둘째 아이의 밥을 챙기고, 온라인 학습을 봐준 후에 설거지를 하고, 셋째를 먹이고 씻겨 등에 업은 채 내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잠에서 깬 아기 기저귀를 갈고, 또 젖을 물리고...

매일 정신이 없는데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나 식단 관리라니. 그들은 대중에게 보이는 게 직업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아름다운 몸'이란 말에 자기관리를 못 해 임신 중 찐 살이 그대로 남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언짢아졌다.

일상에 지친 내가 '아름다운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관리'는 굶기였다. 산후 조리원에서 셋째 임신으로 찐 살은, 마치 여러 번 바람을 불었다 빼 늘어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어 잘 안 빠질 거라고 했다. 출산 후 마사지를 받아야 얼른 돌아갈 거라고 90분씩 5회에 200만 원이 넘는 산후 마사지를 추천했다(그것도 셋째 엄마니까 서비스로 30분을 더 해준 거라면서).

세 번의 임신 경험이 다 달랐듯 출산 후 회복도 다를 거라니 덜컥 겁이 났지만, 제왕절개 흉터가 아물지 않아 마사지를 받을 수 없었다. 골반이 계속 아파 운동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으니, 출산 후 4개월이 지나도록 내 몸을 거울로 볼 때마다 속상했다.

내 배에는 아기가 없는데 아기가 있는 것처럼 불룩 나와 있고, 엉덩이와 허벅지의 살들도 그대로라 임신 했을 때 입었던 옷들을 입고 있었다. 어차피 집에 있는 큰 아이들 밥을 챙기고, 아기를 돌보느라 지치면 입으로 무언가를 씹는 것도 귀찮던 참이었다. 먹지 않으니 몸무게가 확 줄어 한 달 만에 5Kg이 빠졌다.

출산 전의 몸을 회복했다 싶은 순간, 병도 같이 얻었다. 호되게 식도염과 위염을 앓고 난 후에야 출산 후 회복을 위한 자기 관리가 아니라, 병을 얻기 위한 자기 파괴의 과정이었음을 알았다.

알았으니 멈추면 되는데, '자기 관리'란 말이 계속 부대꼈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는데 "회복으로 가는 먼 길에 대하여"(129쪽)와 "자기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법"(177쪽)이 눈에 들어왔다. 회복은 나를 너그럽게 대하는 과정에 따라오는 결과라는 뜻일까.

사실 나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 동안, 두려웠고, 아팠다. 세 번째 경험이었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제왕절개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할까봐 주변을 정리했다. 입원하러 가는 날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땀과 뒤범벅이 되었다. 이미 있는 두 아들도 버거워 매일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데, 하나를 더 낳아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수시로 불안했지만 챙겨야 할 두 아이와 태교를 핑계로 모르는 척했다.

30대 후반의 내 몸이 겪는 임신과 출산은 20대 후반에 경험한 그것과 또 달랐다. 매일 배 뭉침이 있었고, 골반과 다리에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에 걷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고, 누워 있어도 불편했다. '임신하면 다 그래' 혹은 '엄마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라며 외면했다.

나의 언어로 재정의한 '자기 관리'
 
아기가 잠깐 낮잠을 자거나 혼자 잘 놀아 여유가 생기면 밥을 먹고 커피를 내려 아기 옆에서 책을 본다.
 아기가 잠깐 낮잠을 자거나 혼자 잘 놀아 여유가 생기면 밥을 먹고 커피를 내려 아기 옆에서 책을 본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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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임신 중의 내 몸과 마음은,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을 경험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에게 출산 후 '회복'을 위한 '자기 관리'라면 두려웠던 감정을 잘 보살피고, 아팠던 몸이 제자리를 찾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기 관리를 나의 언어로 재정의 하고 보니, 이미 내 방식대로 자기 관리를 잘 하려 노력하는 내가 보였다. 아프고 난 이후부터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으려고 신경을 쓰고, 하루에 한 끼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아기가 잠깐 낮잠을 자거나 혼자 잘 놀아 여유가 생기면 밥을 먹고 커피를 내려 아기 옆에서 책을 본다. 날씨가 좋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엔 잠깐씩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사러 다녀오기도 한다.

내가 여유 시간이 나면 밥과 커피와 책을 찾는 것처럼, 여자 연예인들은 운동을 찾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내면을 돌볼 때 에너지가 차오르는 사람이듯, 그녀들은 운동을 할 때 에너지가 차오를 수 있다. 자기 관리의 방법은 다양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니까.

출산 후 여자연예인을 보여주는 기사에서, 누가누가 빨리 예전의 몸으로 회복하는 지에만 집중하는 출산 후 결과보다, 그 과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회복은 작가가 썼듯 "점진적인 약간의 변화. 이 보 전진했다가 일 보 후퇴하는 것. 한 번에 1그램씩 작디작은 변화"(178쪽)이니 말이다.

태그:#명랑한 은둔자, #임신출산, #자기관리,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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