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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문외한이다. 게임답게 한 마지막 게임이 민속놀이라 불리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1998)'와 야구 게임 '슬러거(2007)' 정도다. 벌써 14년 전 이야기다.

얼마 전 평소 유튜브 알고리즘상 익숙하지 않은 영상과 마주했다.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계정(김성회의 G식백과)의 <메이플 큐브는 과연? K-게임 확률 공개를 목숨 걸고 막는 이유>란 제목의 영상이었다. '이게 왜 나한테 보이지?'란 생각에 무심코 누른 순간 '10분 순삭'을 경험했다.

검색을 이어갔다. '내가 잘 모르는 이렇게 시끄러운 세계가 있구나.'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사 규탄 문구가 적힌 트럭을 게임사는 물론 국회를 향해 몰았고, 국회에선 법 개정까지 논의 중이었다.

오매불망 아이템, 사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 이게 문제였다. 쉽게 말해 뽑기 아이템 말이다. 이용자들은 확률 공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긴 시간 잠재돼 있던 문제가 크게 폭발한 모양새였다. 불확실성을 매력으로 하는 게임의 세계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어쩌다 법까지 손대야 할 비판의 대상이 된 걸까.
    
국회에 '게임특화' 비서관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이도경 비서관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국회에서 이 비서관을 만났다. 이 비서관의 책상엔 '와우(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라그나로스'와 '바리안 린'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게임 문외한인 기자에게 '파친코'를 예로 들며 설명을 시작했다.

"파친코에서 '777'이 나올 확률을 아예 막아놓고 이를 알리는 셈이다. '메이플스토리'란 게임에서 '보보보'란 아이템의 확률이 제로(0)로 드러났는데 이게 미리 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는 높은 등급의 결과를 얻기 위해 계속 돈을 썼다. 쉽게 넘겨선 안 되는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소속 이도경 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헌 의원이 지난 12월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전반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소속 이도경 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헌 의원이 지난 12월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전반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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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중 하나인 '큐브'의 확률을 공개했다. 그동안 이용자들의 강한 항의가 이어지자 일부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한 것이다. 이 비서관이 말한 '보보보'는 이용자들에겐 꿈의 아이템이었다. 큐브는 3개 능력을 지니는데 이용자들은 선호 능력인 '보스 몬스터 공격 데미지 증가'로 3개를 모두 채우는 걸 '보보보'라 불렀다.

'보○○'을 뽑은 이용자는 '보보○'을 향해, '보보○'을 뽑은 이용자는 '보보보'를 향해 계속 돈과 시간을 들여왔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확률표엔 '보보보'는 아예 없는 아이템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알고 보니 이 세계에 그런 산은 없었던 것이다.

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여러 게임의 이용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던 와중에 맨얼굴의 턱 여드름 하나 정도만 드러난 셈이다. 이상헌 의원은 지난 12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며 확률형 아이템 전반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에서 이 법안의 타당성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 업계는 영업비밀, 게임 산업 위축을 이유로 기존 자율규제 제도가 적합하다고 말한다. 업계의 이 같은 주장을 비롯해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대한 이 비서관과의 인터뷰를 아래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게임특화 비서관의 국회 스토리까지 두 편에 걸쳐 기사로 소개한다.

"쉽게 넘길 문제 아냐"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국회 특성상 비서관이 직접 인터뷰하기 어렵다. 의원 반응이 궁금하다. 
"오히려 지지해주셨다. 게임 관련 이슈는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라는 입장이시다."

- 우선 지난 5일 '메이플스토리'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일부 공개한 것에 대해 묻겠다. 이른바 '큐브' 아이템의 '보보보'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소비자를 기만한 대표 사례다. 파친코에서 '777'이 나올 확률을 아예 막아놓고 이를 알리지 않은 셈이다. '보보보'란 아이템의 확률이 제로(0)로 드러났는데 이게 미리 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는 높은 등급의 결과를 얻기 위해 계속 돈을 썼다. 쉽게 넘겨선 안 되는 문제다."

-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국회 앞 '트럭시위'가 이슈가 되기도 했고, 이런 와중에 넥슨의 확률 공개 조치도 있었다.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19대 국회에서 정우택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을 제재하는 법안을 냈고,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 3건이 발의됐다. 하지만 모두 폐기됐다. 당시 게임 이용자들은 '확률 공개만으론 달라지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1대 국회에선 저희가 법안을 냈다. 지난해 12월 15일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는데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선 이전과 비슷한 내용임에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간 불만이 누적됐던 거다.

게임 이용자들이 처음 집단화된 움직임을 보였던 사례는 넷마블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란 게임 때문이었다. 이 게임의 이용자들이 1~2월 처음 트럭시위를 시작했고 이후 넥슨, NC 등의 게임 이용자들이 동시다발로 트럭시위를 이어갔다. 이후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저희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는데 게임 이용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담겼다. 저희가 다시 반박 입장문을 냈고 큰 호응이 일면서 불이 붙었다."
  
'게임특화' 비서관으로 불리는 이도경 비서관(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책상. 각종 게임 캐릭터 피규어가 놓여 있다.
 "게임특화" 비서관으로 불리는 이도경 비서관(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책상. 각종 게임 캐릭터 피규어가 놓여 있다.
ⓒ 이도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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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게임법 전부개정안은 말 그대로 기존 게임법을 갈아엎는 수준이라 여러 내용이 담겨 있다. 주된 내용은 무엇인가.
"확률형 아이템 제재가 뜨거운 이슈라 게임 진흥을 위한 다른 내용들이 묻히는 것 같아 아쉽다. 중소 인디게임 지원, 등급분류 간소화, 해외 게임사 국내 대리인 지정제, 경미한 게임 내용 수정신고 면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용자의 정당한 불만 사항에 대해 게임사가 즉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동안 게임사가 이용자들의 집단항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해당 내용을 담았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선 현재 자율규제 대상인 '유료 캡슐형 아이템' 외에 '인챈트'라고 하는 유·무료 혼합 아이템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금 나와 있는 확률형 아이템 전반을 다 포함하도록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하여 조문을 정리했다."

"이용자 알권리, 더 우선"

-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확률형 아이템 제재를 비롯해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협회는 그동안 '자율규제'를 강조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자율규제 하에서 그동안 게임사에겐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긴 시간 주어졌다. 하지만 게임사와 이용자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더 멀어졌다. 게임 데이터 내용마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다 보니 법적 규제의 필요성까지 제기된 것이다. 또한 협회 말처럼 그동안 자율규제가 잘 이뤄져 왔다면 게임사들은 그대로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면 된다. 게임사도 스스로 떳떳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의문이다."

- 확률 공개에 대해 업체 측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한다. 
"자율규제에 우리나라 대다수 게임사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미 여러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영업비밀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용자의 알권리와 게임사가 주장하는 영업비밀 중 어떤 것이 더 공익적인지 따져봤을 때 전자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일부 언론에선 게임 사업에 족쇄를 채운다는 보도도 나왔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는 전 세계적 추세다. 최근 독일 연방하원은 확률형 아이템의 청소년 구매를 제재하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통과시켰다(상원까지 통과해야 최종 개정). 한편 우리보다 훨씬 제재가 심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니 비교하는 게 맞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판호(중국의 게임판매 허가증) 발급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게임사들은 중국 시장을 뚫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다. 규제가 훨씬 더 강한 중국으론 진출하려고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선 더 낮은 수위의 규제마저 반대하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소속 이도경 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헌 의원이 지난 12월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전반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소속 이도경 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헌 의원이 지난 12월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전반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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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발의한 게임법 전부개정안과 관련된 논의는 얼마나 진행됐으며 통과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나.
"이제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 상정됐기 때문에 첫 스타트를 끊은 정도다. 일부개정안이 아닌 전부개정안이라 공청회를 거쳐야 하는데 문체위에 올라온 공청회 대상 법안(전부개정안 및 제정법안)이 16건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공청회 이후엔 문체위 법안소위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거쳐야 한다. 그때까지 업계, 학계, 이용자, 개발자 등 게임과 연관된 분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려고 한다. 법 통과 여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반대 의견도 충분히 청취하겠다."

- 의원실의 법 통과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면 되겠나.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게임법은 제정된 지 15년이나 지난 법이다(2006년 4월 제정). 그 동안 일부개정만 있어 왔고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법의 근간은 '바다이야기' 사태다. 진흥법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진흥법의 탈을 쓴 규제법이다. 규제 기반에 진흥과 관련된 내용이 덕지덕지 쌓이다보니 이상한 모양새의 법이 돼버렸다. 하루라도 빨리 갈아엎을 필요가 있다."

"덕업일치, 굉장히 만족"

- 국회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게임 관련 정책에 관심이 많았나.
"'와우'에 미쳐 있다가 서른 살에 인턴으로 국회(현재는 5급 비서관)에 들어왔다. 19대 국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고 그동안 게임핵 처벌법, 대리게임 처벌법,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 등급분류 간소화법 등을 통과시켰다.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게임특화 비서관으로 불리더라.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감사하다. 사실 국회에서 게임은 마이너(minor) 분야다.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고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 국회의원들이 (게임 정책에 반대가 심한) 학부모 쪽 표심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지금껏 일했던 의원실은 게임과 E스포츠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주셔서 제가 과분하게 관심을 받고 있다."

- 이른바 '덕업일치'의 삶인가.
"그렇다.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말 바쁜데도 기분이 좋다(웃음)."

*<인터뷰 하 - "게임계 확률아이템 이대로면... 바다이야기 때 위기의식">로 이어집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한국전통문화대·문화재연구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한국전통문화대·문화재연구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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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도경, #비서관, #확률형 아이템, #게임,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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