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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홍수로 침수돼 파손된 곡성수재민 보상대책 위원회 상임위원장 고병렬씨의 가옥 모습.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을 만큼 파손됐지만 주택침수 시 지원되는 200만 원만 지원받았다. 전파에 해당된 수재민은 본인비용으로 개축해 담당부서에 통보하면 심사 후 나머지 부분인 14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2020년 8월 홍수로 침수돼 파손된 곡성수재민 보상대책 위원회 상임위원장 고병렬씨의 가옥 모습.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을 만큼 파손됐지만 주택침수 시 지원되는 200만 원만 지원받았다. 전파에 해당된 수재민은 본인비용으로 개축해 담당부서에 통보하면 심사 후 나머지 부분인 14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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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8일 오전 6시 반 고향마을인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마을이 생긴이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물난리로 상당수의 가옥이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어릴적부터 살았던 집에도 섬진강 물이 역류해 모든 가재도구가 물에 잠겼고 대문간 옆에 설치했던 저온저장고가 물에 둥둥 떠다녀 안방으로 통하는 현관문 앞을 가로막았다.

홍수가 휩쓸고 간 집안을 치우기 위해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모여 안방 장판을 뜯어 버리고 창고에 쌓아두었던 곡식과 부패가 우려됐던 가재도구는 모두 버렸다. 집 앞 공터에는 이웃집에서 버린 가재도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디 그뿐인가? 건강이 좋지 않았던 큰 형님 내외는 집을 떠나 요양원에 계신다. 가끔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옛날 고향집을 찾으면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어 버렸다.

섬진강 수해 참사 후 200여 일... 수해원인 규명과 피해보상은 언제?
      
태어나 동고동락했던 가족과 이웃들의 슬픈 사연에 가슴 아팠던 당시로 시계를 되돌려 본다. 2020년 8월 7~8일 이틀동안 내린 폭우로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비롯한 주변 댐들이 일제히 긴급방류하면서 섬진강 본류인 남원 금곡교 제방이 무너지고 곡성천, 고달천 등 지천이 범람해 곡성읍, 고달면, 오곡면 등 섬진강을 지척에 둔 마을과 농경지, 축사 등이 물에 잠겼다.

그 당시 홍수는 충분히 예견된 비 예보에도 불구하고 유입량에 대한 고려없이 수문을 닫아놓고 있다가 경계수위를 넘기고서야 부랴부랴 방류함으로써 발생한 인재였다. 특히 방류에 앞서 섬진강 유역에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에 3시간 전에 방류계획을 통보하고 협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지침을 지키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침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홍수로 섬진강 유역에 기반을 둔 곡성에서만 약 1000억 원 가까운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섬진강변 제방이 무너져 엄청난 피해를 당한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일대 도로변에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섬진강변 제방이 무너져 엄청난 피해를 당한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일대 도로변에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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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로 완전히 침수되어 폐허가 돼버린 집 앞 임시 가건물에 '곡성수재민 보상대책사무실'을 설치해 수재민들과 함께 현실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고병렬 상임위원장의 말이다.

"제가 이번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 집이 물에 잠겨서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시작했습니다. 물만 생각해도 불안하고, 물만 보아도 곧 홍수가 날 것 같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고없이 온 수재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기상청이 전북지방에 200mm의 호우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지만 전북 평균 341mm가 내렸어요. 호우가 내린 후 불과 7분 뒤에 초당 1000입방미터의 물을 급히 방류하겠다고 통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댐 하류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모든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잘 관리하기 위해 홍수통제소와 수자원공사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재난복구비용으로는 어림없는 수재민들의 현실

중앙안전대책본부에서는 전례없는 수해를 당한 섬진강 유역 3개 시군에 피해복구비를 지원했다(2020.9.16). 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긴 구례는 3420억 원, 남원은 1611억 원, 곡성은 1140억 원의 피해복구비를 지원해 공공시설물 복구에 사용했다. 주민들에게 지급된 보상비는 구례 63억, 남원 99억, 곡성 51억이다.

주택복구비용 지원 기준으로는 직접 주거용으로 사용 중이던 주택에 대하여 전파 시 1600만 원, 반파 시 800만 원, 침수 시 200만 원을 지급한다. 침수된 가옥에는 200만 원이 지급됐고 반파일 경우는 기준에 맞는 보상비가 지급되며 완파된 가옥은 수재민이 재건축해 담당부서에 신고하면 심사 후 나머지 부분을 지급한다. 농작물과 시설하우스의 경우 담당부서에서 실사 후 지원한다.

침수로 폐허가 되어버린 고병렬씨의 경우 200만 원을 지원받고 정부에서 지어준 임시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섬진강 제방이 터져 가옥과 농경지가 몽땅 물에 잠겼던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일대에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도로 주변에 내건 현수막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하도리 1281-6번지 비닐하우스에서 수경재배를 하는 최윤식씨를 만나 어려운 사정을 들었다. 그는 은행에서 7000만 원을 대출받아 900평의 논에 수경재배를 위한 '양액재배시설'을 설치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다 2011년 귀농한 그는 아내와 함께 겨울에는 딸기농사, 여름에는 멜론을 재배해 연간 60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필자가 곡성수재민 보상대책위원들과 함께 최윤식씨의 비닐하우스를 방문하자 농로 옆에 수경재배에 필요한 '양액재배시설'물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놓고 있었다. 며칠 전 3명의 인부를 동원해 5일 동안 작업해 쌓아놓은 폐시설물 앞에서 한숨을 쉬던 그가 말했다. 
 
딸기와 멜론을 수경재배하는 최윤식씨의 비닐하우스 모습. 은행에서 7000만 원을 대출받아 지은 비닐하우스가 쑥대밭이 됐다.
 딸기와 멜론을 수경재배하는 최윤식씨의 비닐하우스 모습. 은행에서 7000만 원을 대출받아 지은 비닐하우스가 쑥대밭이 됐다.
ⓒ 최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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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피해로 딸기와 멜론을 수경재배하는 최윤식씨의 '양액재배시설'이 망가져  농로 인근에 쌓아 놓은 곳에서 포즈를 취한 곡성수재민 보상대책위원들. 왼쪽부터 비닐하우스 주인인 최윤식씨, 보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고병렬씨, 강도원씨 모습.
 홍수 피해로 딸기와 멜론을 수경재배하는 최윤식씨의 "양액재배시설"이 망가져 농로 인근에 쌓아 놓은 곳에서 포즈를 취한 곡성수재민 보상대책위원들. 왼쪽부터 비닐하우스 주인인 최윤식씨, 보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고병렬씨, 강도원씨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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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1000평, 비닐하우스 900평 보상비로 450만 원을 받았어요. 아이들은 커가고 대출받은 비닐하우스 시설비도 못 갚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양액재배시설도 새로 해야하는데 살길이 막막합니다."

곡성수재민 보상대책위 상임부위원장인 강도원(66세)씨는 지게차와 그밖의 기계 포함 8000만 원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 필자가 만나지 못한 수재민들의 아픈 사정은 훨씬 많다. 곡성군 재난지원부서 박종원 팀장은 예기치 못한 수해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현재 환경부, 행안부, 국토부에서 섬진강 하류지역 수해원인에 대해 합동 조사 용역 중에 있습니다. 결과가 발표되면 합당한 대안이 나올 것입니다. 작년 수해를 교훈삼아 수해복구사업을 조기완료하기 위해 군 예비비를 활용해 설계 마무리 및 사업조기 발주하고 있습니다. 우수기 이전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곡성수재민 보상 대책위원회 고병렬 상임위원장이 수재민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해줬다.

"피해복구에 어림없는 보상비가 아닌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겁니다. 오지리 동네가 또 다시 침수되지 않기 위해서 우수기인 6월 이전에 가압펌프장을 설치해주세요. 신기리에 설치된 가압펌프장은 물이 들어올 때 자동차단하고 산지에 호우가 내려 동네가 범람하면 양수기로 퍼냅니다."

태그:#수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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