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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의료현장 실태에 대한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 토론회에서 경북 경산시에서 코로나19 환자로 오인되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고 정유엽 군의 아버지 정성제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어머니 이지연씨.
 2020년 5월 21일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어머니 이지연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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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길을 나섰다. 23일 오전 8시, 이틀째 도보행진을 하며 아버지는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전날(22일), 신었던 새 운동화가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20km를 걸으며 발에 물집이 잡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25일 동안 380km를 걷기로 했다. 일주일에 이틀 휴식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걸을 예정이다. 경북 경산에서 매일 15~20km를 걸어 도착할 곳은 청와대다. 3월 18일, 아들 정유엽군의 사망 1주기에 맞춘 계획이다.

정군의 아버지 정성재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 코로나를 의심하며 아들을 거부했던 병원(경산중앙병원)에서 아들의 장례를 치른 병원(영남대병원)까지 걸었다"라면서 "아들 유엽이를 위해 제2의 유엽이가 나오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엽군은 지난해(2020년) 3월 18일, 영남대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정군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 증세를 보여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면서 민간병원에서의 입원과 치료가 늦어졌다. 이후 코로나 검사만 13번 받으며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다.

정씨는 아들의 죽음이 '의료 공백'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봤다. 인권·노동·법률·의료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이번 도보행진의 주제를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 걸음 더'로 내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씨와 25일 내내 함께 걷는 최기석 민주노총 경산지부 조직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유엽군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정군처럼 일반응급환자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지난 10월까지도 대구·경북에 딱 한 곳뿐이었다"라면서 "코로나 혹은 또 다른 감염병에 일반환자와 코로나 환자가 안정적으로 치료받으려면 공공의료 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2의 정유엽' 없어야"
   
 지난해 3월 코로나19 오진으로 숨진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와 정유엽사망진상규명위 관계자들은 22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2020년) 3월 코로나19 오진으로 숨진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와 정유엽사망진상규명위 관계자들은 22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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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왜 도보행진일까. 정씨는 "청와대도 찾아가고 경산시에도 매달려봤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라면서 "몸으로 무언가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지난 1년여간 수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방문하고, 거리서명을 받고, 국무총리에 면담을 요구했다. 지난해(2020년) 10월에는 정군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국가인권위에 진정도 넣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8월 대책위와 경산시가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대책위는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봤다. 최기석 부장은 "형식적인 공동조사일 뿐이었다, 진상파악에 한계를 느꼈다"라면서 "정군의 죽음을 접하고도 당시 경산시의 보건의료 담당자는 의료공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라고 지적했다.

"수십 곳의 토론회에 참석해 아들의 죽음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긴급상황에서 일반응급환자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정부관계자는 늘 유엽이의 사망을 개인의 안타까운 일로 치부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이 박힌 노란 조끼를 꺼내입었다. 직장암 3기, 세 번의 수술과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로 종종 손발이 저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애초 단식하며 도보행진에 나설 생각이었다.

정씨는 "지난 1년 동안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뀌는 게 없는 걸 보고 곡기를 끊어야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위의 만류로 단식은 하지 않고 도보행진을 이어가지만, 나는 이미 목숨을 걸었다"라고 재차 힘을 줬다.

대책위의 또 다른 목표는 정군처럼 코로나로 인한 의료공백의 사례를 찾는 것이다.  권정훈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장애인, 이주민 등 취약계층 누구나 정군처럼 의료공백·의료 불평등을 겪었을 것"이라며 "이런 사례들을 모아 우리 사회 의료공백 전반의 문제를 지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도보행진 첫날, 대책위를 비롯해 정군의 죽음과 의료공백의 문제에 공감한 시민 100여 명이 정씨의 아버지와 첫걸음을 뗐다. 이날 역시 30여 명이 영남대병원에서 경북 칠곡의 지천역을 향해 길을 나섰다.

대책위의 요구는 정군 사망과 관련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비롯해 ▲ 정부·시민·전문가가 참여하는 코로나19 의료공백 전반에 대한 사회적 조사 ▲ 응급의료 시스템·의료를 방역으로만 보는 감염병 대응지침 개선 등 의료공백 재발방지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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