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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조 조합원들이 2월 17일 명동에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2월 17일 명동에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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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 코로나로 영업제한이 걸리면서 모든 직원의 노동시간이 대폭 줄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주 5일 40시간 일하던 A씨는 30시간으로 줄었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주 20시간 일했던 B는 6시간만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업무 중요도에 따라 매장에서 얼마나 시간을 줄일지 결정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차이는 극심하다. 시간이 깎인 만큼 임금이 깎이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A씨는 40시간에서 30시간이 되었으니, 평소의 75% 임금이나마 쥐게 될 것이다.

그러나 B씨의 사정은 다르다. 70% 소득감소에 더해 한 주 노동시간이 15시간이 넘지 못하기 때문에 주휴수당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달 60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되어 4대보험도 잃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어도 시간이 맞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며 모아둔 돈으로 하루하루 버틴다. 시간이 반 토막 난 라이더 하나는 운 좋게도 다른 매장으로 옮길 수 있었지만, 그런 행운을 모두가 기대할 수는 없다. 

자영업자에게만 집중된 손실보상 논의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조명되면서 국회에서 손실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시간제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언급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소상공인을 다루는 보도에서 가끔 곁들이로 "소상공인과 취약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정도로 한 문장 나오는 게 전부다. 이런 언론의 조명 방식 탓인지, 최근 발의된 이른바 '코로나 손실보상' 법안에는 자영업자들만 언급되어 있을 뿐, 이들의 피고용인들에 대한 대책은 언급조차 없거나 매우 미흡하다.

이를테면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이동주 의원안에는 언급조차 없다. 가장 중요한 방향타인 정부안은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도 미온적인 수준이라 논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정의당 심상정 의원안이 나름 피고용인들을 비롯하여 취약계층의 손실보상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해외의 손실보상 문제가 애초부터 임대료 같은 고정비용과 고용유지 지원금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과 비교하면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보상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K-손실보상'은 이미 출발점부터 피고용인들을 시야에서 놓치고 있다.

한국에는 고용보험이나 재난지원금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570만 명에 달하는 고용보험 적용제외/미가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한국의 사회동향-취약 노동자는 누구인가, 2017, 통계청) 임금이 1/3 토막 나고 사회보험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 B씨 입장에서 고용보험은 무슨 쓸모이며, 충분하지 않은 선별적 재난지원금은 위로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맥도날드의 경우를 보자. 정부의 강도 높은 영업제한 지침에도 배달주문 증가로 매장매출 감소분을 상당량 축소시켰다. 한국맥도날드가 2020년 전체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영업제한과 거리두기에 시달렸음에도 지난해 1~4월 맥도날드 매출은 오히려 9% 상승했다. 이를 감안했을 때 심각한 매출 손실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련 기사: McDonald's sales rise in South Korea, despite pandemic https://bit.ly/3qwRKbY)

그럼에도 영업제한 동안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감소와 주휴수당 삭감, 4대보험 미가입 증가로 상당한 비용을 덜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영업이익만 보상하고, 피해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알바노동자, 시간제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손실보상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불균형한 손실 보상 논의는 앞으로 반복될 경제 위기 국면의 대처에서 나쁜 신호를 준다. 과거 사례를 보면 앞으로 이런 전염병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자연계에서 변태하고 진화하며, 연결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집단면역이 형성되기 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은 일정 기간 필연적인데, 여기서 고용주의 영업이익만을 사후 보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이 잡힌다면, 자영업자들은 손실보상의 혜택을 기대하면서도 시간제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비용을 축소하는 전략을 병행할 것이다.

정부가 얼마나 손해를 보전해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고용을 줄여 손실을 노동자들이나 고용보험 재정에 전가하는 것이 고용주들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언제까지 아무 정보 없이 보상을 논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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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보상을 논의하는 사회적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손실 규모 자체를 정확하게 추산하지 못한 채, 이익집단의 상대적 파워와 언론의 성향에 따라 논의가 지나치게 정치화된다는 점이다. 영업제한 기간 동안 전체적인 손실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집단에 손실이 집중되고 있는지, 어떤 집단은 도리어 이익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계산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4대보험에 가입했거나 소득세 원천징수 신고를 매달 하는 노동자들의 소득은 추산이 가능하지만, 6개월마다 원천세를 신고해도 되는 20인 이하 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있거나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시간제, 임시직 등 불안정노동자들의 객관적인 소득변화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들 역시 6개월마다 한 번 하는 부가세 신고나 1년에 한 번 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통해 소득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지원이 필요한 이들의 소득이 '가장' 잘 파악되지 않는 셈이다. 

이들의 지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큰 집단은 과대 대표되고, 목소리가 작은 집단은 논의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필자는 지금 시간제노동자들의 피해 역시 돌아봐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이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집단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의 손실 또한 긴급히 보상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의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단지 당사자의 목소리와 정치적 파워에 기댈 것인가?

객관적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축적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사회집단 간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것이며, 객관적 증거가 없으니 지원도 불가하다는 '소급보상 불가론' 같은 무책임한 논법이 반복될 것이다. 설령 보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지원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불투명한 근거에 기반한 손실보상에 내 세금이 쓰인다는 불만을 가질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불성실한 신고로 소득세를 탈루하고 있다는 통념과 겹쳐(이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신고액과 추정된 금액과의 간극으로 추산해 볼 때 어느 정도 사실이다) 사회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축적되지 못한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당사자들의 신고와 제시한 증빙자료에 기반하여 피해액을 긴급하게 보상하고 차후 소득신고액과 비교하는 작업을 거쳐 정산하도록 하자. 지금은 신중함보다는 과단성이 더 요구되는 덕목이다. 물론 크고 작은 형평성 논란과 행정적 착오가 드러날 것이며 이는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영국의 실시간 소득파악 시스템 (RTI: Real Time Information)과 같이 최소 월 단위로 국가가 전 국민 소득을 객관적으로 추적하여 과세하고, 개별 노동계약을 파악하여 사회보험 가입과 노동법 준수를 국가가 보장하며, 데이터에 기반해 소득에 따른 복지제도를 설계하여 신고에 앞서 개별 안내하고, 재난 시 손실보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메르스 방역 실패 교훈을 바탕으로 코로나 방역의 주춧돌을 놓았듯 말이다. 

보편과 선별의 이분법을 넘어
 
코로나19 부산형 재난지원금에서 제외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2일 부산시청 앞에 모였다.
▲ "특수고용노동자 다 죽는다" 코로나19 부산형 재난지원금에서 제외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2일 부산시청 앞에 모였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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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당은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시한 선별적 지원을 우선하고 차후 보편적 지원을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낙연 대표가 선별+보편을 공언했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관련기사 : 3월 선별 지급·추후 전 국민 검토…4차 지원금 가닥 http://omn.kr/1s24p / 홍남기 반발에도 이낙연 "전국민·맞춤형 지원 함께 논의" http://omn.kr/1rydn)

지금까지 손실보상이라는 선별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긴 했지만, 보편적 지원 역시 다른 차원에서 중요하다. 신고를 기반으로 하는 선별적 지원은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일단 피해를 입은 이들의 선별지원을 하되, 보편적 지원을 통해 사각지대를 메워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상호보완적으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따로따로 추진할 이유가 없다. 이 둘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보편과 선별지원의 조화를 통해 경제주체를 회생시키고, 소비와 투자를 유지해야 파국적 실물위기와 K자형 양극화를 막을 수 있다.

여당과 정부의 입장을 종합해 보면, 선별과 보편을 조합한 제도설계에 시간이 걸리고 예산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선별지원만 한다는 것이다. 우선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는 변명이다. 이미 작년에 보편지원을 시행한 적이 있고, 그걸 다시 하는 것이 그렇게 행정적으로 어렵고 부담이 가는 일일까? 선별지원과 특별히 엮어서 복잡하게 설계할 이유도 없다. 선별은 선별대로 설계하고, 보편은 1차 재난지원금 시스템을 다시 돌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예산제약의 문제다. 나랏돈을 막 쓸 수는 없으니 손실보상에만 집중하자는 논리다. 맞다. 당연히 나랏돈을 '막'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정도가 나랏돈을 '막' 쓰는 것일까? 정부가 말하는 10~15조 원 정도는 적당하고 50~60조는 방만하게 쓰는 것인가? 2천 조에 달하는 바이든 정부의 코로나 재정부양책은 어떤가? 아니면 작년에 300조를 쓰고, 올해는 170조를 더 쓰겠다는 독일의 씀씀이는 그저 '저세상 텐션'인 것인가? (관련기사: "1인당 150만원 지급"... 바이든, 2천조원대 경기부양책 공개 http://omn.kr/1rpx0)

예를 들어 가족이 암에 걸리면 집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구해내려고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빚을 질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왜 나라가 빚을 져서 국민을 구하려 하는 것을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설령 빚을 져서 신용점수가 800점에서 600점으로 떨어진다 해도 이걸 나쁜 지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의 한 해 소득이 5천만 원이라면 긴급상황에서 500만 원 정도 빚을 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때로는 5천만 원, 어떤 사람은 5억 원 채무도 불사한다. 그런데 한 해 예산이 500조인 나라가 재난 상황에서, 그것도 역사상 조달금리가 가장 낮은 시대에서, 50조 더 빚지는 것조차 벌벌 떤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돈을 써 본 사례가 없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은 사례가 없지 않다. IMF 때 168조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살렸고, 지금까지 회수된 돈은 117조 원에 불과하다. 회수 추이를 보면 이자까지 최소 50조 원은 못 받을 돈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 그때는 그렇게 단호하게 결단했으면서, 왜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정리하자면, 선별+보편지원에 필요한 예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50~70조 정도로 추정되는 금액(민병덕 의원 안에서 1차 재난지원금과 피고용자 지원금을 합산해 추정)을 빚으로 충당할 때, 그것이 국가 경제에 불가역적 타격을 입히거나, 지원에 따른 편익 이상의 손실이 재정지출의 부작용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선별지원을 고수하며 예산제약선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그어준 예산제약선에서 선별이냐 보편이냐를 논의하는 건 순서가 틀렸다. 지금은 지원에 필요한 돈을 먼저 추산하고 이것이 필요하다면 국채를 통해서라도 신속히 지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태그:#재난지원금,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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