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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메신저 카톡 친구가 있습니다.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삽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만나지 못했으니, 얼굴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는 예전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듯 아침마다 좋은 글과 영상을 퍼나릅니다. 보내온 메시지에는 삶의 지혜가 실리고, 즐거움이 묻어있습니다.

매일매일 소재가 다른데, 오늘도 어디서 글 한 쪽지를 퍼왔습니다. '백 년 친구'라는 제목이 붙었네요. 글 중 맨 마지막 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친구 여러분!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는 귀중한 자산이요, 인생의 삶에 활력을 주는 '원기소'랍니다.

눈에 띄는 단어 하나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냅니다. '원기소'가 그것입니다. '원기소'가 뭐냐구요? 요즘 세대는 그게 뭔가 할 것 같습니다. '원기소'는 1960, 70년대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 알 먹으면 금방 힘이라도 솟을 것 같았던 영양제 이름입니다.

'원기소'의 아련한 추억
  
1972년 3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원기소 광고
 1972년 3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원기소 광고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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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친구가 생각납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면장집 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리 반에서 가장 부잣집 아들이었던 친구로 기억납니다. 우리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한쪽 어깨에서 반대편 겨드랑이까지 대각선으로 책보자기를 메고 다녔는데, 그는 달랐습니다. 흰 운동화에다 멜빵 책가방을 짊어지고 다녔지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맛있는 점심시간. 그의 도시락은 쌀밥에 늘 맛난 반찬이었습니다. 멸치볶음이며 고기장조림도 심심찮게 싸 왔습니다. 계란후라이, 김치맛도 맛있었습니다. 그는 책가방을 메고 다녀 병에 담긴 김치를 세워 가져오기 때문에 김칫국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까만 보리밥에 반찬으로는 다꽝(일본식 단무지)과 장아찌가 단골손님인 내 도시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러움을 산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습니다. 도시락을 다 먹은 후 녀석이 먹는 영양제 '원기소'였습니다.

"야, 이것 먹으면 튼튼해지고, 밥맛도 좋아지고 힘이 막 솟아난다!"

그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영양제를 보란 듯이 몇 알씩 꺼내 먹었습니다. 씹어먹을 때,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고소한 맛에 침이 고였습니다. 녀석 말마따나 힘이 절로 솟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1973년 1월 31일자 경향신문 원기소 광고
 1973년 1월 31일자 경향신문 원기소 광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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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는 부잣집 아들이 먹는 영양제에 대한 부러움이 대단했습니다.

"야, 그게 그렇게 맛나?"
"그럼! 이렇게 씹어먹으면 얼마나 고소한데!"

  
그래서일까요? 녀석 주위에는 영양제 한 알 얻어먹으려고 뽀짝거리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등하굣길에 책가방을 대신 메주고, 숙제까지 해주며 아양을 떨었습니다. 녀석은 영양제를 먹어서 그런지 얼굴이 늘 발그레했습니다.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의 골목 안. 초등학교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의 골목 안. 초등학교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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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우리 반 반장과 그 녀석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반장에게 숙제검사를 시켰는데, 반장이 숙제를 안 한 그 녀석을 눈감아주지 않은 게 싸움의 발단이었습니다. 녀석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교 뒷산으로 반장을 불러냈습니다.

"야, 인마, 오늘 너, 나한테 혼 한번 나봐!"
"좋다! 그래! 자기 잘못도 모르는 놈이 힘자랑하려고?"


반장은 의협심이 강한 친구였습니다. 녀석을 따르는 애들도 많았지만, 반장 친구도 많았습니다. 여자애들만 빼고 죄다 모인 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 전, 녀석은 느닷없이 '원기소' 몇 알을 입에 넣고 씹어먹었습니다. 마치 나 이거 먹었으니 너 따위 때려눕히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녀석은 반장이 날린 펀치 한 방에 그만 코피가 터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들 싸움에서는 코피가 나면 싸움은 끝이었습니다. 코피가 먼저 터진 쪽이 그냥 꼬리를 내립니다. 흘러내린 코피 때문에 녀석의 호기는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1965년 중앙광고대상 우수상을 차지한 원기소
 1965년 중앙광고대상 우수상을 차지한 원기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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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나서, 녀석은 반장 말에 고분고분하고 영양제 가지고 뽐내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그의 아버지께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친구도 전학을 갔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그가 먹었던 영양제의 고소함을 잊고 지냈습니다.

'원기소'의 힘이었을까?

내 초등학교 시절은 중학교에 진학할 때,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나는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가 아닌 도회지 큰 학교로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호롱불 밑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공부하느라 피곤하던 어느 날, 나는 코피를 쏟았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문득 면장 아들 녀석이 먹었던 영양제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 장날이 언제야?'
"장날은 왜? 뭐 학용품 떨어진 거 있어?"
"그게 아니고. 나도 '원기소' 한번 먹어봤으면…."
"영양제 말이야? 너 공부하느라 힘들구나?"
"응!"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에 있는 아주 오래된 약방. 이 약방에서도 예전 원기소를 많이 팔았다고 합니다.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에 있는 아주 오래된 약방. 이 약방에서도 예전 원기소를 많이 팔았다고 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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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일 장날, 며칠 동안 부지런히 왕골돗자리를 짜서 판 돈으로 큰맘 먹고 '원기소'를 사 왔습니다. 면장 아들 친구가 먹던 거랑 똑같았습니다.

"지금부턴 코피 쏟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중학교에 합격할 자신 있지?"

어머니께서 큰돈 들여 사주신 영양제와 등을 두들기며 하신 말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나는 밥도 잘 먹고, 건강한 몸으로 원하는 중학교에 합격하였습니다.

'원기소'는 비타민과 미네랄 제제 같은 거였습니다. 당시에는 그걸 먹으면 힘이 솟고 밥맛도 좋아지는 어떤 신화 같은 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낱 종합영양제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우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운이 샘솟게 하는 기적 같은 '원기소'는 없을까요?

태그:#'원기소', #초등학교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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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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